김환영의 영어 이야기

『옥스퍼드 인유법 사전』.
성경·그리스신화가 단골 소재
복잡한 관념을 간결하게 표현
우리 속담 “홍길동이 합천 해인사 털어먹듯”을 이해하려면 홍길동을 알아야 하고 해인사를 알아야 한다. 인유법을 구사하는 작가는 독자가 인유법의 대상(referent)을 안다고 전제한다. 별다른 설명을 안 한다.
영어 인유법에 단골로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우리말에서도 친숙하다. 삼손(Samson), 골리앗(Goliath), 로빈 후드(Robin Hood) 같은 것들이 있다. 좀 ‘고약한’ 작가들도 있다. 존 밀턴(1608~1674),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888~1965)과 제임스 조이스(1882~1941) 같은 작가는 영미권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인유의 소재를 사용했다. 인유법은 영어 초급·중급 수준에서 고급으로 승격하는 데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인유법 소재는 다수가 고유명사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출애굽기 3장 2절에 나오는 ‘burning bush(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가시덤불)’ 같은 게 있다. 인유법은 복잡한 관념을 ‘간결하게(economically)’ 표현한다. “인공지능은 판도라의 상자다(Artificial Intelligence Is a Pandora’s Box.)”라는 문장은 짧지만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판도라의 상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제우스가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어 봉한 채로 판도라를 시켜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냈다는 상자. 판도라가, 열어 보지 말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호기심이 생겨 상자를 여는 바람에 인간의 모든 불행과 재앙이 그 속에서 쏟아져 나왔는데, 당황한 나머지 급히 닫아 ‘희망’만이 그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관련된 재앙·희망·호기심을 판도라의 상자는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인유의 세계에서는 긴말이 필요 없다. ‘홍길동전은 한국판 로빈 후드다.(The Story of Hong Gildong is a Korean version of Robin Hood.)’라고 하면 딱 한 줄로 의미 소통이 된다.
인유의 단골 원천은 『성경』과 그리스 신화다. 리처드 도킨스는 무신론자이지만, "『성경』을 모르고는 문학을 이해할 수 없고 미술, 음악, 그 밖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갈수록 대중문화가 낳은 인유가 주목받고 있다. ‘터미네이터’(1984)에 나오는 "나는 돌아온다(I’ll be back.)”,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1991)에 나오는 "아가야, 다음에 또 보자(Hasta la vista, baby)”가 대표적이다.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