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신홍 정치에디터
험지 출마, 야권 통합 놓고 남탓만
자기희생 없인 민심 얻기 어려워
실제로 요즘 한국당 의원들을 만나 보면 딱 ‘니가 가라 하와이’ 분위기다. 한쪽에선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진들이 먼저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당사자들은 “나만큼 지역구에서 경쟁력 있는 의원이 누가 있느냐”며 꿈쩍도 안한다. 지도부는 속앓이만 할 뿐이다. “여당은 중진도 아니고 초선 의원들이 잇따라 불출마 선언을 하는 판에 보수 텃밭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로 3선 이상 했으면 뭔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게 당원의 도리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당직자도 적잖다.
물론 중진이라고 해서 모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리인을 선택할 권한은 당 지도부나 동료 의원들이 아니라 유권자에게 있다. 국회가 원만히 운영되려면 다선 국회의장도, 정치의 중심을 잡아줄 원로도 필요하다. 하지만 10년 넘게 의원 배지를 달면서도 존재감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여의도의 오랜 정설이다. 3선이면 도합 12년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의 기득권에만 집착하면 설령 당선되더라도 정치 인생은 사실상 그걸로 끝이라는 게 한국 정치의 냉엄한 경험칙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통합 논의도 ‘니가 가라 하와이’의 또 다른 버전이다. 자기 입장은 바꾸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양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다. 결국엔 공천권 다툼인 셈인데, 그렇게 타협한 결과 알짜 지역구는 양당 정치인들이 다 나눠먹기해 놓고 신진들에게는 남은 자리 중에 고르라고 하면 어느 국민이 감동하겠는가. 오죽하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이래서는 보수 야당 빅 텐트는커녕 빈 텐트가 되고 말 것”이라고 일침을 놓겠는가. 사즉생, 생즉사. 이는 정치에서도 진리로 통하는 명제다.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대의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하면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2030세대의 국회 진출은 이미 최대 화두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어느 당이 먼저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면 요즘 유행어처럼 “저 당이 저만큼 했어? 그럼 우리는 그거 묻고 더블로 가!”라며 자기희생 경쟁을 벌여도 민심이 받아줄까 말까 할 텐데 여전히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으니. 시대가 바뀐 줄도 모르고 하와이 타령만 하다가는 방콕(방에 콕 박혀 지내는) 신세 되기 십상이다.
장동건은 영화에서 “니가 가라 하와이” 말고도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여러 명대사를 낳았다. “마이 묵었다 아이가. 고마해라(많이 먹지 않았느냐. 그만해라).” “내가 니 시다바리가(내가 너의 종인 줄 아느냐).” 2019년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그들의 대리인인 국회의원과 직업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18년 전 영화 대사와 어쩜 이리 똑같은지 이 또한 웃픈 아이러니다.
박신홍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