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어수룩하지만 신비한, 또 다른 도깨비를 만나고 싶다

기자
권도영 사진 권도영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46)

벌써 삼 년 전이다. 드라마 '도깨비'가 우리에게 찾아왔던 때가. 2016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한겨울을 도깨비와 함께하면서 울고 웃고 따뜻했었다. 이응복 연출, 김은숙 극본의 16부작 드라마에서 우리는 도깨비, 삼신, 저승사자들의 이야기에 몰입하였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을 인물 설정인데, 시청자들은 판타지라는 점에서 많은 부분들을 그저 덮고 지나가면서, 옛날이야기의 몇 가지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재미있게 그려낸 이야기라는 정도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도깨비, 삼신,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도깨비' 속 한 장면.

도깨비, 삼신,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도깨비' 속 한 장면.

 
어느새 겨울이 되어 버렸다 싶으면서 자연스럽게 몇 년 전 겨울의 기억이 도깨비를 소환하였다. 흔히들 생각하는 뿔 두 개 달고 원시인 복장을 한 채 철퇴같이 생긴 방망이를 든 모습의 도깨비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 드라마에서 선보인 도깨비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현대화된 캐릭터임을 감안하더라도, 일단 지나치게 잘생겼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꽤 재미있는 점들이 있다.
 
잘생긴 것은 일단 그냥 넘어가고, 그 다음 특징은 돈이 많다. 어느 날 작은 에피소드로 지나가는 내용으로 술김에 도깨비방망이를 이용해서 금괴를 만들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본래 도깨비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뭔가 신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전생의 역사를 통해서 불사의 생을 살면서 특이한 힘을 갖게 된 부분을 설명하기도 하였는데, 아무튼 도깨비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삼신이나 저승사자와 힘을 겨루기도 하는 것은 좀 더 확장된 상상력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개연성은 갖는다. 그리고 또한 도깨비는 매우 어수룩하다. 기억력도 좋지 않고, 잘 믿어버려서 사람한테 잘 속기도 한다. 그런 부분이 드라마에서도 재미나게 그려져서 더욱 캐릭터를 친근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갚은 돈 또 갚는 어수룩한 도깨비도 도깨비방망이만 있으면

이런 부분들이 본래 우리 옛이야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도깨비의 속성을 매우 잘 표현했다고 판단하는데, 강원도 영월에서 채록된 자료 한 편 소개한다. 이것은 잘 잊어버리는 도깨비 이야기이다.
 
옛날에 성실한 재간둥이 상인이 하나 있었다. 아침에 제일 먼저 상점 문을 열어놓고 있는데, 키가 구척이나 되는 사람이 상점에 들어서더니 대뜸 돈을 두 냥만 꿔달라고 했다. 상인이 별 생각 없이 두 냥을 주어 보냈는데, 다음날 아침에 상점 문을 열자마자 그 구척 장신이 들어오더니 꿔 갔던 돈 두 냥 받으라며 주고 가버렸다.
 
그런데 그날 이후, 매일 아침마다 와서는 꿔 간 돈 두 냥 받으라며 주고 갔는데 그러길 삼 년을 한 것이었다. 상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주는 대로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벌써 최고 부자가 된 형편인데 상인도 욕심이 나는지라 한 이 년을 더 받아보자 하였다. 그렇게 오 년을 받았는데 이제는 더이상 돈을 어떻게 처치할 도리도 없어서 마을의 잘 아는 노인에게 가서 물었다.
 
“아이고, 이 사람아. 그게 사람이 아닐세. 그놈이 도깨비인데, 도깨비란 놈은 잘못 건드려 놓으면 자네 그 돈 다 뺏기네.”
“그래, 그 돈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땅을 사야지. 물건에 돈 쓰면 그놈이 언제라도 비뚤어져서 갖고 가버릴 수가 있으니, 땅을 사야지.”
 
상인이 노인의 말을 듣고는 수천 평 땅을 사서는 개를 잡아 그 피를 뿌렸다. 그러고 나니 도깨비가 더 이상 오지 않았는데, 나중에 어느 날 밤 도깨비가 이 상인의 땅에 와서는 말뚝을 박고 어싸어싸 소리를 질렀다. 그러기를 몇 달 하더니 어느 날인가부터 사라져버렸다. 상인은 그렇게 최고 부자가 되어 잘살았다.
 
이런 이야기에서 도깨비가 재물과 큰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걸 제대로 지키지는 못하는 어수룩한 면이 잘 드러난다. 이런 도깨비가 있는가 하면,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도깨비 이야기는 방망이를 두드리는 도깨비의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도깨비 이야기는 아마도 방망이를 두드리는 도깨비의 이야기이다.[사진 pxhere]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도깨비 이야기는 아마도 방망이를 두드리는 도깨비의 이야기이다.[사진 pxhere]

 
옛날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나무꾼이 있었다. 나무꾼이 하루는 산에서 개암나무 열매가 떨어진 것을 보고, “요것은 우리 어머니 것, 요것은 마누라 것, 요것은 내것” 하면서 한 알씩 주워담았다. 그러다 날이 저물어 산속 빈집에 들어가 있었는데, 밤중에 도깨비들이 몰려 들어오는 바람에 대들보 위에 몸을 숨겼다. 도깨비들은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면서 금은보화를 늘어놓더니, “밥 나와라, 뚝딱.”, “술 나와라, 뚝딱.” 하고는 한참을 먹고 마시며 떠들었다.
 
숨어서 도깨비들 하는 짓을 보던 나무꾼은 갑자기 배가 고파져 개암 열매 하나를 깨물었다. “와그작” 개암 깨무는 소리에 도깨비들은 깜짝 놀라 방망이도 모두 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 죄다 도망가 버렸다. 나무꾼은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가서 금세 부자가 되었다. 나무꾼의 이웃집 남자가 어쩌다 갑자기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물어 도깨비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이 남자도 산에 올라갔다.
 
이 남자도 개암 열매를 주웠는데, “요것은 내가 먹고,” 하고 자기 것 먼저 챙긴 뒤에 어머니, 동생 것을 주웠다. 그리고 그 빈집에 들어가 도깨비 오기를 기다렸다가 도깨비들이 한참 방망이를 두드리며 놀 때 개암을 깨물었는데, 도깨비들이 이번엔 도망가지 않고 지난번 방망이를 훔쳐간 그놈이 다시 왔다며 끌어내어서는 방망이로 두드려 혼내주었다.
 
도깨비들이 이웃집 남자를 혼내주는 장면에서는 이웃집 남자의 성기를 두드려 열 발이나 늘어나는 바람에 이 남자가 부엌에 갔다 오면 성기에 깨를 묻혀 나오기도 하고, 이걸 허리띠 매듯 허리춤에 둘렀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좀 더 늘어지는 버전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자체심사로 거르기로 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도깨비가 가진 재물과의 관련성, 신비한 능력, 어수룩한 면이 모두 잘 나타난다. 
 
도깨비 형상으로 흔히 아이들이 그리곤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도깨비 오니의 모습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진 권도영]

도깨비 형상으로 흔히 아이들이 그리곤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도깨비 오니의 모습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진 권도영]

 
우리나라 도깨비의 형상이 뿔 달린 모습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데, 도깨비가 우리 전통문화에서는 신적인 존재였다는 것까지는 잘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다시 드라마 '도깨비'로 가 보면, 이 도깨비는 삼신, 저승사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전생의 질긴 인연에 의해 악귀와도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중에서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하는 것이, 삼신이 도깨비에게 이제 다 그만두고 무(無)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는 장면이다. 삼신은 신이기에 또한 당연히 그럴 만하다. 그런데 도깨비는 삼신과 급이 같은 신은 아니기에 그런 장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흔히들 기억하는 도깨비는 사람과 씨름을 하고 메밀묵과 말피를 싫어하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인간에게 돈을 꾸어간다거나 그걸 잊어버리고 자꾸 돈을 가져다주면서 인간과 관계를 맺는 이야기들이 나온다는 것에서 도깨비는 예전의 신적 지위를 잃은 ‘하락한 신’과 같은 지위를 갖는다고 한다. 또한 산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깨비 이야기는 실제로 해안가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도 도깨비와 은탁이가 만나는 아름다운 장면이 바닷가에서 그려지기도 하였다.
 
스산해지는 겨울을 앞두고 뜬금없이 드라마 '도깨비'를 소환하며 도깨비 이야기를 좀 해보았다. 흔히 정신 나간 듯한 행동을 할 때 ‘도깨비에게 홀렸다’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실제로 홀리는 것은 도깨비라기보다 귀신에 가깝다고 한다. 귀신과 도깨비는 좀 구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귀신에게는 홀리지 말아야 할 것인데, 도깨비는 귀(鬼)도 아니고 신(神)도 아닌지라 친숙하고 좀 만만하다. 도깨비 친구 하나 잘 사귀어 도깨비 능력 덕에 재물도 얻고 힘도 얻게 된다면 재미날 것 같다. 또 다른 버전의 도깨비 이야기가 한 번쯤 더 나와주어도 좋겠다.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