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은 사람이 걸어야 길이 된다. 길에 사람이 있을 때 길을 품은 풍경은 비로소 완성된다. 2010년 제1회 제주올레 걷기축제 첫날. 1코스 말미오름 정상에서 당근밭 사이를 걷는 올레꾼들을 촬영했다. 신화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이다. 손민호 기자
축제 참가자 85%가 육지 관광객
코스마다 볼거리·먹거리 풍부
분장한 올레꾼들 스스로 축제 일궈
![2013년 제주올레 걷기축제 개막식에서 서명숙 이사장이 올레꾼들과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제주올레,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15/da22a31c-a1f1-4432-95ca-b296e2fee241.jpg)
2013년 제주올레 걷기축제 개막식에서 서명숙 이사장이 올레꾼들과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제주올레, 중앙포토]
제주올레 걷기축제 10년을 지켜봤다. 해마다 가을이면 기적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수천 명이 올레길을 걷는 풍경은 제주도의 어떤 명승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애초의 걷기여행과 본래의 축제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제주올레 걷기축제 10년을 돌아봤다. 먼저 소감부터 말한다. 함께 걸어서 영광이었다.
하루 4000명씩 걸어
![2017년 축제 장면. 해안에서 클래식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제주올레,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15/8eb3fdc0-fd1d-44c2-9e25-7ad04dc498f8.jpg)
2017년 축제 장면. 해안에서 클래식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제주올레, 중앙포토]
축제 참가자는 하루 평균 4000명, 매년 연인원 1만 명 안팎으로 집계된다. 외국인도 매년 1000명꼴로 참가하고 있다. 국적은 일본·중국·스위스·미국·스페인 등 얼추 30개국에 이른다.
㈔제주올레가 올해 축제 참가자 544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내국인 참가자의 84.9%가 육지에서 온 관광객이다. 송가인·장윤정 등 초대가수 공연이 메인 이벤트인 지역의 여느 축제와 달리 외지인의 참가율이 매우 높다. 제주올레 걷기축제가 진정한 의미의 관광축제라는 뜻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게 있다. 애초의 걷기여행은 순례에서 비롯됐다. 인내하고 회개하는 종교적 제의에 가까웠다. 한국 사회에서 걷기여행은 힐링 열풍과 함께 퍼져나갔다. 도시 생활에 찌든 현대인이 자연 속을 걸으며 위안을 얻고 치유를 경험했다. 올레 열풍 초기, 올레길에선 혼자 걷는 여성이, 혼자 울면서 걷는 여성이 자주 띄었다.

제주올레 걷기축제 10년
“걷기가 축제가 됐다는 건 걷기가 유희의 대상, 즉 놀이가 됐다는 뜻입니다. 하루에 20㎞씩 걸어도 여럿이 같이하면 재미있다는 걸 알아낸 것입니다. 올레 축제가 정착함으로써 걷기여행은 다음 단계로 진화했습니다.”
올레 컬트
![길 표시 가득한 올레꾼 배낭. [사진 제주올레,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15/3070335d-9dd6-4d9b-b718-c1ab65d4f972.jpg)
길 표시 가득한 올레꾼 배낭. [사진 제주올레, 중앙포토]
2011년 6코스를 걸을 때였다. 폭우가 내리던 날 제지기오름을 올랐다. 오름 분화구에 다다르니 흠뻑 젖은 여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흠뻑 젖은 올레꾼들이 길을 걷다 말고 공연을 지켜봤다. 출발점에선 초등학생들이 동요를 합창하고, 바닷가에선 해녀 할망들이 해녀 춤을 춘다. 자원봉사자 아주머니 7명이 결성한 ‘칠선녀 댄스팀’은 2013년부터 올레 축제를 뜨겁게 달군 인기 스타다.
㈔제주올레 직원들이 처음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나타난 건 2011년이었다. 이후 눈에 띄는 복장과 분장은 올레 축제의 주요 코드가 됐다. 올해 미키마우스 복장을 하고 사흘 내내 축제를 즐긴 올레꾼은 놀랍게도 일본인이다.
![한껏 멋을 부린 축제 참가자들. [사진 제주올레,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15/f4537116-9649-4b4a-88bb-820f56364b76.jpg)
한껏 멋을 부린 축제 참가자들. [사진 제주올레, 중앙포토]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레 축제 때문에 제주도에 왔다는 응답자가 94%이었습니다. 여행의 목적이 되는 국내 축제가 또 얼마나 있을까요. 올해 처음 참가했다는 제주도민이 이런 후기를 남겼습니다. ‘제주도민만 몰랐던 제주도 최고의 축제.’ 텀블러 갖고 다니며 일회용품 일절 안 쓰는 올레꾼을 보며 제주도민도 바뀌고 있습니다.”
설문 응답자의 평균 축제 참가횟수는 2.55회다. 한 번 오면 또 온다는 뜻이다. 10년 연속 참가한 중독자도 허다하다. 물론 나도 여기에 들어간다. 올레 현상(Olle Cult)을 앓고 있는.
손민호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