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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나랏돈 못 써 안달 난 분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요즘 정부·여당 사람을 보면 나랏돈 못써 강박증에라도 걸린 듯하다. 급기야 청와대 대변인이 “곳간의 돈은 놔두면 썩는다”고 궤변을 늘어놨다. 딴엔 문재인 대통령의 “재정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말에 추임새로 넣었겠지만, 안 하느니만 못했다. 과잉 충정으로 청와대 격만 떨군 꼴이다. 하기야 경제부총리까지 “예산을 남기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판이니 대변인 탓만 할 것도 아니다.
 

정책 실패마다 돈으로 뒤치다꺼리
효과 없으니 돈 더 풀어 돌려막기
돈 풀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뭔가

도대체 왜 이 난리인가. 자기 돈이면 그러겠나. 대강 짐작할만한 이유는 네가지다. 하나, 경제가 생각보다 나쁘다. 대통령은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2년째 되뇌지만, 사실은 낭떠러지로 가고 있다. 이런 사실을 청와대도 알고 있다. 그러니 문 대통령이 “국가부채 40% 선은 지켜야 한다”던 야당 대표 시절의 소신을 꺾은 것 아닌가. 둘, 내년 총선용이다. 선거 치르는 해에 경제가 나빠지면 집권 여당엔 이런 악재가 없다. 셋,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문재인 케어·탈원전의 졸·과속 강행으로 생긴 후유증의 뒤치다꺼리를 죄다 재정으로 했다. 나랏돈 풀어 최저임금 대신 내주고, 직장 잃은 사람 용돈 줬으며, 고령자 일자리만 잔뜩 늘렸다. 넷, 생색은 이 정부가 내고 청구서는 다음 정부에 들이밀면 된다. 넷 중 하나둘이거나, 넷 다 일 수 있다.
 
그냥 추론이 아니다. 2020년 예산안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국정철학을 돈으로 환산한 게 예산이다.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걷고 쓰느냐가 권력의 본질을 규정한다. 2020년 예산안은 무능력 좌파포퓰리즘의 모범사례다. 우선 기획재정부의 ‘곳간 지킴이’의 전통이 무너졌다. 나랏빚은 내년 800조원, 2023년엔 1000조원을 넘어선다. 관리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GDP)의 3% 내로 한다는 묵시적 재정 준칙도 무너졌다. 애초 부처가 요구한 예산은 498조원이었지만, 기재부는 513조원으로 늘렸다. 청와대·여당의 압력에 백기 투항한 것이다.
 
국가 비상사태가 아니면 ‘한 부처의 예산 증액은 20%를 넘을 수 없다’는 예산실의 관례도 무너졌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예산은 31.4%(본예산 기준)나 폭증했다. 한 부처 관계자는 “요구보다 많은 돈이 배정됐다”며 “제대로 못 써 감사에 걸릴까 걱정”이라고 했다. 정권별로 균형 예산을 추구했던 전통도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 말엔 대한민국이 확실한 허약 체질, 적자 재정 국가로 전락한다.
 
더 나쁜 것도 있다. 돈을 써서 되레 경제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좀비기업에 퍼주는 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년 예산이 지원된 소재·부품·기술 기업 중 12.3%가 한계 기업이었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해당 사업에 올해보다 2배 늘어난 6027억원을 편성했다. 결과는 불문가지. 나랏돈 받은 좀비 기업은 살고 대신 정상 기업이 망한다. 이미 2013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좀비기업 자산 비중이 10% 포인트 높아지면 정상 기업의 고용은 0.53%포인트, 투자는 0.18%포인트 준다고 분석했다. 반면 좀비 기업 비중을 10% 포인트 구조조정하면 일자리가 11만 개 늘어난다.
 
나랏돈은 많이 쓰는 것 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도 “재정을 쓰되, 구조개혁과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써야 한다”고 했다. 구조개혁은 외면하고 돈만 뿌릴 때 결과가 어떤지는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가 여실히 보여줬다. 구조개혁 없이 빚을 내 펑펑 쓰는 것은 후손의 재산을 허락 없이 훔치는 것과 같다.
 
기재부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아무도 입을 열어 “도둑이야” 소리치지 않는다. 과거엔 이렇지 않았다. 여당 실세의 요구도 단호히 거절한 예산실 관료들의 무용담이 차고 넘쳤다. 그렇다고 야당엔들 기대하겠나. 총선을 앞두고 되레 지역 민원 예산이나 늘리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어디 하나 브레이크가 없다. 청와대의 무능과 여당의 횡포, 공직자의 침묵 속에 대한민국이 거덜나고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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