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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구미 산단 폐수 처리에 달린 암각화의 운명

훼손 심각 울산 반구대 암각화…해결책 보이나

9월 하순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불어난 물에 울산시 반구대 암각화가 완전히 물에 잠긴 모습. 지금은 물이 어느 정도 빠졌지만 아직도 3분의 1 정도가 잠긴 상태다. [연합뉴스]

9월 하순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불어난 물에 울산시 반구대 암각화가 완전히 물에 잠긴 모습. 지금은 물이 어느 정도 빠졌지만 아직도 3분의 1 정도가 잠긴 상태다. [연합뉴스]

짙은 11월의 단풍 속에서 대곡천 계곡을 500m쯤 걸어 들어가자 강폭이 넓어졌다. 현장을 안내한 울산시 문화해설사의 손끝을 따라 강 건너 울퉁불퉁한 바위 절벽을 살피자 비교적 매끄러운 부분이 눈에 띈다. 안내판과 조망용 망원경이 없었다면 필시 지나쳤을 법하다. 반구대 암각화. 3500~7000년 역사로 추정되는 선사시대 유적이다. 높이 4m, 폭 8m 정도의 바위 면에 고래·호랑이·멧돼지·사슴 같은 동물, 배·작살·그물 및 수렵·어로 장면 등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인류 최초의 포경 유적으로 평가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 있다.
 

하류 댐 건설로 홍수 때마다 침수
식수원 문제 걸려 해법 지지부진
낙동강 수질 개선 통해 해결 모색
비용 문제 지자체 간 갈등이 관건

암각화는 3분의 1 정도 물에 잠겨 있었다. 올 초 찾았을 때 암각화 아래쪽 바위 뿌리까지 드러났던 모습과는 대조를 이뤘다. 지난 9·10월 이 지역을 스쳐 간 태풍 ‘타파’와 ‘미탁’의 영향으로 대곡천 물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문화해설사는 “태풍이 겹쳐 오는 바람에 10월 초까지 완전히 잠겼다가 서서히 물이 빠지며 지금은 아래쪽만 잠긴 상태”라고 설명했다.
 
강 건너편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살폈지만, 그림을 선명하게 확인하기 힘들었다. 깊게 새겨진 그림 일부만 겨우 보이는 수준이다. 그만큼 마모가 심하다는 이야기다. 몇천년을 지탱해온 암각화는 인간의 손이 개입된 50여년 동안 급속하게 훼손됐다. 지워지는 암각화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목소리는 크지만, 이를 위한 행동은 더디기만 하다.
  
암각화 발견 전 지은 댐이 발단
 
대곡천 수위에 따른 암각화 모습. 갈수기 때(올 봄). [연합뉴스]

대곡천 수위에 따른 암각화 모습. 갈수기 때(올 봄). [연합뉴스]

훼손의 주범은 1965년 하류 쪽에 설치된 사연댐이다. 만수위 60m(해발)인 사연댐에 물이 차고 빠질 때마다 해발 53~57m 높이의 암각화는 자맥질을 거듭하며 선이 옅어졌다. 한 연구에 따르면 물속에 있는 암각화는 물 밖에 있을 때보다 마모가 20배 정도 빠르다. 20여 년 전 찍은 사진과 최근에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일부 그림은 맨눈으로 판독하기 힘들 정도로 희미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사연댐을 지을 때 암각화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암각화는 댐 건설 후 6년 뒤인 1971년 동국대 연구팀에 의해 발견됐다. 선사시대 귀한 유적이지만, 보존 대책은 소홀했다. 1995년 국보 285호로 지정되며 본격적 보존 논의가 시작됐지만, 그래 봤자 사연댐 수위를 평소 48~52m 수준으로 유지하는 정도다. 그러나 집중 호우 때마다 속수무책이다. 댐에 수문이 없기 때문이다. 물이 차면 댐 옆 여수로(남는 물을 흘려보내는 통로)를 통해 태화강으로 물을 빼낸다. 하지만 속도가 더디다 보니 암각화는 몇달씩 물속에 있어야 한다. 2005년 상류에 대곡댐이 건설되며 침수 기간이 다소 줄었지만, 근본 대책은 못 된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당장 수문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울산시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식수원 확보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수문을 설치해 만수위를 8m 낮출 경우 사연댐에서 공급되는 청정 원수는 18만톤에서 15만톤으로 줄어든다. 2025년 청정 원수 39만톤 확보를 목표로 하는 울산시로서는 한 방울이 아쉽다”고 말했다. 대체 수원 확보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사연댐을 그대로 둔 채 암각화를 살리기 위한 구상도 속출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초반에 나왔던 ‘카이네틱 댐’이었다. 반원형의 투명 옹벽을 암각화 앞에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모형 설치 과정에서 누수가 발생하는 등 결함으로 관련 예산만 수십억 원을 날리고 결국 실패로 끝났다. 울산시는 암각화 앞에 둑(생태 제방)을 만드는 안과 암각화 앞을 지나는 대곡천의 우회 수로를 만드는 안을 추진했으나 문화재위원회가 반대하고 나섰다. 자연 형상을 보존해야 문화재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낙동강 물 방정식’부터 풀어라
 
대곡천 수위에 따른 암각화 모습. 완전 침수 때(9월말). [연합뉴스]

대곡천 수위에 따른 암각화 모습. 완전 침수 때(9월말). [연합뉴스]

사연댐 수문 설치에 난색을 보이던 울산시 입장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송철호 시장이 당선되면서 방향을 틀었다. 반구대 암각화와 근처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일대를 세계문화유산 정식 등재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자연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울산시와 대립각을 세우던 문화재청도 호응했다. 지난 1월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암각화를 찾아 “대곡천 암각화 군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자원이 되도록 문화재청에서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울산시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다. 대체 수자원 확보다. 울산시는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대신 부족한 물은 경북 청도 운문댐에서 끌어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양호한 수질의 운문댐을 수원으로 쓰는 대구가 가만있을 리 없다. 대구는 나름대로 청정 원수 확보에 목을 매고 있어 선뜻 운문댐을 내줄 수 없다. 대구는 현재 구미산업단지 아래쪽에 있는 낙동강 취수원을 산단 상류의 해평 취수장으로 옮기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낙동강 오염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대구의 희망 사항은 물 부족을 우려한 구미의 반대에 부딪힌 상태다.
 
3D 스캐너를 통해 선명하게 살린 반구대 암각화 그림들. 고래·거북·물새 등 바다 동물과 호랑이·표범·멧돼지 등 육지 동물, 배·작살 등 각종 어구, 수렵하는 모습 등 300 여 점을 볼 수 있다. [중앙포토]

3D 스캐너를 통해 선명하게 살린 반구대 암각화 그림들. 고래·거북·물새 등 바다 동물과 호랑이·표범·멧돼지 등 육지 동물, 배·작살 등 각종 어구, 수렵하는 모습 등 300 여 점을 볼 수 있다. [중앙포토]

지자체 간 물싸움과 문화재 보존이 얽힌 복잡한 방정식을 풀기 위해 결국 총리실이 나섰다. 4월 이낙연 총리 주재로 권영진 대구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장세용 구미시장, 조명래 환경부 장관,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모였다. 협의 끝에 ‘낙동강 물 문제 해소를 위한 상호협력 업무협약(MOU)’이 체결됐다. 협약의 핵심은 두 개의 연구용역 수행이다. 하나는 구미산단 폐수를 낙동강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전량 재이용하는 ‘무방류시스템’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용역이었다. 또 하나는 낙동강 유역 전체의 수자원을 지자체 간에 적절하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 연구용역이다. 구미산단 폐수 무방류→낙동강 수원의 대구 이용 확대→운문댐의 울산 이용→사연댐 수위 하향→암각화 보존이라는 다단계 해결책이다. 결국 암각화 보존책 실마리는 구미산단의 폐수 처리에 달리게 된 셈이다. 김석진 울산시 행정부시장은 “식수원 확보 문제가 해결되면 사연댐 수문 설치에 울산시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현재로서는 구미산단의 폐수 무방류 시스템 구축 문제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작부터 난관, 결국은 돈 문제
 
대곡천 수위에 따른 암각화 모습. 3분의 1 정도 잠겼을 때(11월 초). [연합뉴스]

대곡천 수위에 따른 암각화 모습. 3분의 1 정도 잠겼을 때(11월 초). [연합뉴스]

이런 구상은 첫걸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돈 문제 때문이다. 8월에 나온 구미산단 폐수 무방류시스템 타당성 중간 용역 결과, 시스템 구축비 5000억원 외에 매해 운영비 1500억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구축비는 국비로 해결한다 해도 운영비를 누가 부담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구미시는 “전액 국비로 지원하지 않으면 사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구도 “이 돈을 낼 바엔 차라리 취수장 이전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태세다. 오염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구미산단 입주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구미시가 펄쩍 뛴다. 산단 경쟁력이 약해진다는 이유다. 매해 2500억원씩 걷히는 낙동강 수계관리기금을 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여기엔 부산과 경남이 반발하고 있다. “구미산단 무방류 시스템을 갖춘다 하더라도 그 혜택은 대구만 본다. 구미뿐만 아니라 대구·창녕·창원 등에 있는 낙동강 오염원 대책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간에 낀 환경부도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6월에 열기로 했던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 연구 용역 중간 보고회도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 무방류시스템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결론을 반영해 연말까지 최적의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은 무산 가능성이 커졌다. 최종 결론이 미뤄질 경우 지자체 간 갈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10년간 끌어온 대구와 구미 간 취수원 이전 문제가 재연될 가능성도 높다. 울산시 관계자는 “영남 지역 지자체장이 같은 당 일색일 때도 잘 풀리지 않았던 문제인데, 지금처럼 여당 야당으로 갈리고 TK(대구 경북)-PK(부산 경남) 간 틈도 멀어진 상황에서 해결이 더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낙동강 유역의 지자체들이 어지러운 물싸움을 벌이는 동안 반구대 암각화는 오늘도 물에 잠겨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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