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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공개해서 어떻게 합치냐" 한국당·변혁 희한한 통합

황교안(左), 유승민(右)

황교안(左), 유승민(右)

전례 없는 기형(畸形)인가, 새로운 형태의 통합 방정식인가. 
최근 논의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간 통합 논의를 두고 정치권에서 나타나는 엇갈린 반응이다. ‘기이한 형태’라는 평가를 하는 이들은 “협상 과정이 더 은밀했어야 한다”고 평가한다. “원래 그런 일을 할 때는 물 밑에서 협의를 한 후에 합의서에 사인할 때 발표하는 거지 공개적으로 해서 통합이 성사되지 않는다”(홍준표 전 대표), “협의체를 만들어 하는 건 합의 도출도 어렵지만 갈등과 이견이 여과 없이 노출된다”(이혜훈 의원) 같은 평가들이 그렇다. ‘①은밀한 협상 → ②전격적 발표’가 이른바 통합의 안정적 공식이라는 취지다.

"공개 협상은 합의 도출 어렵다" 당 안팎 훈수
3당 합당, DJP연합 등 과거 사례 비교해보니
한국당 "과거 답습했으면 불통 비판 받았을것"

 
등장인물이 많다는 점도 특이하다고들 말한다. 최근 언론과 정치권에서 통합 관련 논의에 가담한 거로 입에 오르내리는 이들은 한국당에선 김무성·원유철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권영세 전 의원, 변혁에서는 정병국·이혜훈 의원, 외부에서는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다. 한국당은 통합추진단을 꾸리며 홍철호·이양수 의원 등도 가세했다. 당 총선기획단과 협의를 거칠 가능성이 큰데 그럴 경우 한국당에서만 통합 관련 실무 논의에 참여하는 인사가 1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당 안팎에서는 “도대체 통합을 실제로 주도하는 게 누구냐”는 말도 나온다.
 
실제 과거 성사된 통합의 방정식은 어떻게 작용했을까. 1990년 3당 합당부터 2018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통합까지 4건의 통합·연합 사례를 분석했다. 은밀한 막후 협상 끝에 전격적으로 통합 발표를 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적도 있었다. 또 막후 협상, 전격 발표 뒤에는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3당 합당=은밀성(○), 전격성(○)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3자회담을 갖고 보수3당이 주축이 되어 중도민주세력을 총집결시키는 대연합을 이루기로 하는 합당선언문을 공동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3자회담을 갖고 보수3당이 주축이 되어 중도민주세력을 총집결시키는 대연합을 이루기로 하는 합당선언문을 공동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0년 1월,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 발표는 전격적이었다. 그런 만큼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김영삼(YS, 통일민주당)·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총재 사이 ‘빅딜’은 극비리에 이뤄졌다. 홍성철 대통령 비서실장, 박철언 정무장관 등이 관여했다는 후일담이 나왔지만, 당시에도 “여권(민정당)에서조차 극소수만 알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극비 협상이었던 만큼 후유증도 컸다. YS의 오른팔이자 상도동계 2인자였던 최형우 전 의원조차 처음엔 “안 간다”고 했을 정도였다. YS의 1대1 설득으로 후유증은 차츰 수습됐지만, 격렬하게 반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은 결국 합당을 거부하고 이탈했다.
 

◇DJP연합=은밀성(X), 전격성(△)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통령후보 단일화에 대한 합의문 서명식을 가졌다. [중앙포토]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통령후보 단일화에 대한 합의문 서명식을 가졌다. [중앙포토]

199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전격 성사된 김대중(DJ)ㆍ김종필(JP) 연합은 비교적 공론화된 상태에서 진행됐다.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1년 넘는 협상 과정에 돌입했다. ‘DJP 연합론’의 근거가 된 이론·보고서 등도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도 상당 부분 알려진 상태였다. 단일화 1년 전부터 상대 당에서 “김대중·김종필 연합은 결코 이뤄질 수 없을 것”(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란 반응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양측은 뿌리 깊은 불신 탓에 협상을 1년 반 넘게 끌었다. 하지만 마무리는 전격적이었다. DJ의 박태준 전 국무총리 영입이 열쇠가 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군(軍)·민정당 출신인 박 전 총리가 합류한다면 JP 측 불신을 상당 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박 전 총리의 의중을 확인한 DJ는 11월 3일 JP의 청구동 자택을 직접 찾아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박 전 총리도 이튿날 자민련에 입당해 총재로 추대되면서 연합이 성사됐다. 물론 ‘내각제 개헌’ ‘경제부처 임명권은 국무총리(JP)가 갖는다’ 같은 통 큰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민주당+새정치연합=은밀성(○), 전격성(○)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 중앙위원장이 2일 국회 사랑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6·4 지방선거 전 신당을 창당한다고 발표했다.김 대표와 안 위원장은 이날 "양측은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새정치를 위한 신당창당으로 통합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7 정권교체 실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김 대표와 안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 중앙위원장이 2일 국회 사랑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6·4 지방선거 전 신당을 창당한다고 발표했다.김 대표와 안 위원장은 이날 "양측은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새정치를 위한 신당창당으로 통합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7 정권교체 실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김 대표와 안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3월, 민주당(김한길 대표)과 새정치연합(안철수 위원장)의 통합 신당 창당 선언은 말 그대로 극비리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안철수 당시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통합 논의를 공식제안(2월 28일)하고 사흘 뒤(3월 1일) 둘이 만났다. 오전 2시간짜리 단독 회동에서 ‘신당’에 대한 대략적인 공감대를 이뤘다. 둘은 이날 저녁 일부 배석자들과 함께 다시 만나 4시간 넘는 마라톤협상 끝에 ‘합의문’까지 만들었다.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양측에서 다양한 채널이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김한길·안철수 둘 사이 사흘간의 막후 협상은 각 당에서도 아는 이가 극히 드물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이튿날(2일) 오전 9시 동시에 긴급최고위, 공동위원장단 회의를 각각 열어 신당 창당 소식을 알렸다.
 

◇바른정당+국민의당=은밀성(X), 전격성(X)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지난해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 통합선언문 발표를 앞두고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지난해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 통합선언문 발표를 앞두고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18년 2월 합당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 과정은 ‘통합추진협의회(통추협)’를 거쳤다는 점에서 한국당·변혁 간 통합 논의와 유사점이 있다. 1월 초 구성된 통추협에서 활동할 각 당의 교섭창구도 미리 공개됐다. 국민의당에서는 이언주·이태규 의원, 바른정당에서는 정운천·오신환 의원이 참가했다. 애초 통합 의사결정도 전체 당원투표(국민의당)를 미리 거치는 등 공식화된 상태였다.
 
양당 대표가 통합선언(1월 18일)을 먼저 하고 신당의 세부사항은 이후에 협상한 것도 특이한 점이었다. 두 대표가 정론관에서 발표한 당명이 ‘통합개혁신당’(가칭)이었다. 바른미래당이란 이름도 이후에야 탄생했다. 이 때문에 통합 선언 보름이 지난 시점(2월 9일)에 당 로고·당헌을 두고 불협화음이 일기도 했다. 통합 전당대회(2월 13일)를 거쳐 중앙선관위에 정식으로 합당 등록(2월 19일)을 한 건 통합선언으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였다.
 

◇한국당 “과거 방식 답습했으면 불통(不通) 비판했을 것”

한국당 내부에서도 통합 논의와 이 같은 과거 사례에 대해 검토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황교안·유승민 두 대표의 개성이 과거 통합의 주체와 다른 점, 각 당이 처한 정치 환경이 달라 똑같은 방정식을 적용하긴 어려웠다는 게 한국당 핵심관계자의 전언이다. 한국당 핵심관계자는 “황 대표가 과거 YS·DJ처럼 제왕적 리더십을 휘두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과거 사례를 그대로 답습했다면 분명히 불통(不通)이라고 비판받았을 것”이라며 “지금 상황과 변수에 맞는 새로운 통합 방정식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또 협상 과정이 은밀하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언론에 일일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지난 두 달간 상당한 물밑 논의가 있었다. 황 대표와 당에서 공개한 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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