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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차 폐차 지원금 받고 또 경유차 구입···이렇게 예산이 샌다

11일 오전 서울시내 한 아파트 단지 1층 마을회관(경로당). 평소 어르신 3~4명만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안에 들어서자 입구에 쌓여있는 파란색 박스 3개가 눈에 띄었다. 뜯지않은 일회용 미세먼지 마스크가 가득 담겨 있었다. 경로당을 이용하는 한 노인은 “지난해 12월 동사무소에서 200개를 주고 갔는데 1년 째 다 못 쓰고 있다”며 “주변에 나눠주는 데도 아직 150개 정도 남았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서울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노인들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서울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노인들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1년째 남아도는 마스크는 어디서 왔을까. 서울시는 지난해 11억89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미세먼지 마스크 200만개를 시내 경로당에 뿌렸다. 올 4월에도 12억2000만원을 들여 118만여개를 보급했고, 이달 말까지 15만개를 추가 배포할 예정이다. 이 경로당에도 이달 중 또 마스크가 들어온다.  

재정 만능주의 그만 <하>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저소득층 마스크 보급’에 574억원을 책정했다. 올해 추경 예산(194억원)보다 380억원 늘렸다. 저소득층 246만명에게 1인당 연간 50매씩 돌아간다. 다 국민 세금이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늘린 포퓰리즘 예산이 불요불급한 데 쓰이면서 현장 곳곳에서 ‘재정 소화불량’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지 좋아도 현장선 줄줄 새는 재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취지 좋아도 현장선 줄줄 새는 재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2020년 예산안(513조원)에서 편성한 미세먼지 저감 대책 예산은 4조원이다. ‘슈퍼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지난해(2조3000억원)의 1.7배 수준이다. 예산을 과감하게 늘린 건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한 분야라서다. 정승환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총괄과장은 “내년 예산안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진 ‘3축’이 일자리ㆍ미세먼지ㆍ소부장(소재ㆍ부품ㆍ장비) 예산”이라며 “각각 취업난, 국민 건강, 일본 수출규제 현안과 직결되는 분야다. 국민 이해를 얻기 쉬워 정부가 상징적으로 대폭 늘렸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선 이른바 ‘재정 포퓰리즘’에 기댄 예산일수록 구멍이 뚫린 곳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헛다리 짚은 미세먼지

미세먼지 예산의 핵심은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관련 예산(2896억원)이다.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는 낡은 경유차를 줄이자는 취지다.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가 올 4월 노후 경유차 폐차 보조금을 받은 461명을 설문한 결과 폐차 후 새 차를 산 408명 중 251명(61.5%)이 다시 경유차를 선택했다. 중고차를 산 159명 중 62.3%(99명)도 경유차를 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폐차 보조금이 오히려 경유차 구매비를 보조하는 식으로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은 늘렸지만 현장 집행 실적도 낮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와 배출가스저감장치(DPF) 부착, 건설기계 엔진 교체 등 배출가스저감사업은 올 8월 말 기준 실적 달성률이 모두 50% 미만으로 나타났다. 
인천 서구의 한 자동차 정비소에서 경유차 2대에 배출가스저감장치(DPF)를 부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인천 서구의 한 자동차 정비소에서 경유차 2대에 배출가스저감장치(DPF)를 부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DPF 부착 지원 예산(1383억원)은 현장까지 재정 효과가 못 미친 대표 사례다. 토요일인 지난 9일 오후 찾은 인천 서구의 한 자동차 정비소엔 경유차 2대만 DPF 부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정비소는 노후 경유차뿐 아니라 지게차·굴삭기 같은 중장비에도 미세먼지 저감 엔진을 장착할 수 있는 ‘1급 종합정비소’다. 주변은 제철소·화학 공장이 밀집한 공업지대다. 정비소 대표 이 모(56) 씨는 “지난해 중순부터 DPF 부착을 해왔지만, 중장비 엔진을 교체한 건 3번뿐”이라고 털어놨다.

 
다소 황당한 대책도 있다. 미세먼지 차단 숲 조성에는 450억원을 편성했다. 미세먼지 발생원 주변에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숲을 조성하는 내용이다. 예산정책처는 ‘2020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미세먼지 차단 숲의 평균 조성 면적이 2ha(헥타르) 수준이고 폭이 3~10m에 불과해 차단 효과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탕 삼탕 ‘소부장’

예산 내년 얼마나 늘렸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o.kr

예산 내년 얼마나 늘렸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o.kr

핵심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는 명목으로 편성한 일명 ‘소부장’ 예산은 ‘극일(克日)’ 여론을 등에 업고 추진했다. 지난해 8000억원에서 2조1000억원 규모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이 중 1조3000억원이 연구개발(R&D) 예산이다. R&D 예산은 새로운 내용보다 지원 규모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 ‘재탕’이 대부분이다. 고질로 지적된 눈먼 돈 ‘나눠 먹기’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예산정책처도 보고서 곳곳에서 재탕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장기간 걸리는 R&D 과제를 단기 기획을 통해 일률 추진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R&D 투자 여력이 부족한 기업의 경우 과도한 R&D 자금을 지원하지 않도록 사업을 관리해야 한다.’

‘중소ㆍ중견기업 연구개발비 상당 부분이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국내 4대 과학기술원 중 한 곳에서 연구하는 A 교수는 “정부가 이른바 ‘3책 5공’(1명의 연구자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과제는 최대 5개 이내, 그중 연구 ‘책임자’로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과제는 최대 3개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앞세워 예산 편중을 막겠다고 했지만, 연구 책임자가 아닌 일반 연구인력을 책임자로 내세워 예산을 중복 지원받는 관행도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 6대 분야 핵심 100개 품목의 조기 공급 안정화’ 명분을 앞세웠지만, 일본과 관련 있는 예산이란 이유를 들어 비공개로 추진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전략 품목과 지원과제 선정을 비공개로 추진하는 건 향후 과제 선정의 공평성 문제와 정책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산 ‘규모’ 보다 ‘내용’이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정승환 예산정책처 과장은 “2016~2018년 종료한 소재부품 기술사업 241개 과제 중 실제 사업화에 성공한 과제는 17개(7.1%)에 불과했다”며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 가능한 단계뿐 아니라 기업이 가진 기술을 양산 단계로 발전시키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밑 빠진 독 물 붓는 ‘일자리’

‘일자리 정부’를 공언한 만큼 사상 최대 규모 예산을 일자리 사업에 투자한다. 올해(21조2000억원)보다 21.3%(4조6000억원) 늘린 25조8000억원을 내년 예산으로 편성했다. 취업난으로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문제는 시간이 들더라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보다 단기에 성과를 내기 좋은 ‘직접 일자리’ 창출에 예산을 집중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실업 소득 유지ㆍ지원(10조3000억원)에 가장 많이 쓴다. 실직자의 임금을 보전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다. 장기 고용을 보장하는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직업 훈련(2조2000억원)이나 창업 지원(2조3000억원) 예산을 늘려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도록 지원하는 게 낫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예산 대부분이 사실상 복지 예산으로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민간에서 투자ㆍ고용을 유발하는 쪽으로 일자리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는 ‘묻지 마’ 증액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가운데)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가운데)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회는 슈퍼 예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증액에 들어갔다. 11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가 예산 소위를 열기까지 8개 상임위원회가 제출한 예산안 예비심사 보고서를 보면 기획재정위원회를 제외한 7개 상임위에서 지출 요구액이 정부 안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위원회가 2조3192억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3조4374억원을 늘리는 등 8개 상임위가 요구한 지출 증감액 총합계가 8조2858억원에 달한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증액이 두드러졌다. 국토위는 심사 과정에서 안성~구리 고속도로 사업 관련 예산으로 3062억5700만원을 증액했다. 이천~오산 구간 도로 공사엔 1765억원, 함양~울산 고속도로 공사엔 720억원을 늘렸다.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위원회는 경북 구미 스마트 산단 관련 사업(156억원), 울산 산단 통합관리센터 착공(36억원) 예산을 늘렸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부분 상임위 지역구 의원의 이해관계가 얽힌 예산”이라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SOC 사업의 경우 일단 시작하고 나면 중단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모든 상임위가 예비심사를 마치고 예결위에 넘길 예산안 증액 규모(정부 안 대비)는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예산 심사에선 상임위 17곳 중 기재위를 제외한 16곳이 지출 요구액을 정부 안보다 늘렸다.  
 
세종=김기환·허정원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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