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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4시간 좌선···공사판 비닐하우스서 '고행'하는 스님 9명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차장
 
 
 11일 오후 3시,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산자락에서 상월선원(霜月禪院) 동안거 결제 입재식이 열렸다. 여느 동안거 결제 풍경과 사뭇 달랐다. 법당은 비닐하우스로 만든 가건물 같은 천막이었다. 그 법당 뒤 언덕 위에 선원이 있었다. 그런데 선원도 비닐하우스로 짠 천막이었다. 천막 안에는 1인용 텐트 9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11일부터 9명의 출가자가 겨울 석달간 문밖 출입을 하지 않고 이곳에서 동안거에 들어간다. 천막 안에는 난방 시설도 없다.  
 
위례신도시에서 상월선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설치된 플래카드. '풍찬노숙 동안거'라고 적혀 있다.

위례신도시에서 상월선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설치된 플래카드. '풍찬노숙 동안거'라고 적혀 있다.

 
재가 신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이날 낮부터 서울 조계사와 봉은사 등에서 1000여 명의 신자들이 동안거 입재식에 참석했다. 신병교육대에 입대하는 아들을 염려하고 응원하는 부모의 심정처럼 보였다.  
 
선원 주변은 고요한 산골이 아니었다. 위례신도시의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조계종은 새로 들어설 아파트 단지의 끝자락에 상월선원을 건립할 예정이다. 진각ㆍ재현ㆍ심우ㆍ자승ㆍ성곡ㆍ호산ㆍ무연ㆍ도림ㆍ인산 등 9명의 스님이 터만 마련된 이곳에 미리 들어와 ‘천막선원 동안거’에 들어갈 참이었다.   
 
11일 오후 3시 상월선원 동안거 결재 입재식에 불교 신자 1000여 명이 참석했다.

11일 오후 3시 상월선원 동안거 결재 입재식에 불교 신자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선방에서 안거를 날 때는 참가자의 동의하에 규칙을 마련한다. 이를 ‘선원청규’라 부른다. 천막선원의 동안거 청규는 엄격했다. 하루 14시간 이상 방석 위에 앉아 좌선을 해야 한다. 또 식사는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종식을 한다. 옷은 한 벌만 허용되고, 삭발과 목욕은 금지된다. 단, 양치는 허용된다. 또 천막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고 외부인과 접촉도 금지된다. 수행자들끼리도 묵언(默言)을 한다. 말을 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보드판에다 글자를 써서 소통한다. 마지막으로 선원청규를 어겨서 퇴방을 당할 때는 조계종 승적에서 자동 제적된다. 9명의 스님은 이미 총무원에 ‘규약을 어길 시 조계종 승적에서 제외한다’는 각서와 제적원을 제출한 상태였다. 한 마디로 배수진을 친 셈이다.  
 
비닐하우스 선원 안에 마련된 1인용 텐트와 침낭. 따로 난방시설이 없는 곳에서 9명의 스님은 겨울 석 달간 문밖 출입을 금한 채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수행한다.

비닐하우스 선원 안에 마련된 1인용 텐트와 침낭. 따로 난방시설이 없는 곳에서 9명의 스님은 겨울 석 달간 문밖 출입을 금한 채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수행한다.

 
통도사 출신에 그간 30안거를 났다는 진각(57) 스님을 천막선원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만났다. “부처님도 6년 고행을 한 뒤 수행 방식을 바꾸었다. 동안거는 마음을 뚫는 것이 목적이지, 고행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진각 스님은 “하루 한 끼 먹고, 선방문을 잠그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모두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고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바깥에서는 고행이라 볼지 몰라도, 이로 인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편한 것이 세상 어디에 있겠나”라고 답했다.  
 
총무원장을 두 차례 역임한 자승 스님도 방부(동안거 명단)에 있었다. 자승 스님은 “인터뷰는 하지 않을 작정”이라며 사양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자승 스님 총무원장 재임 시절에 상월선원 터를 마련했기에, 이번 동안거에 남다른 소회가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호산 스님은 “우리의 정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부대중 모두의 결사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고, 심우 스님은 “머리를 깎고 절에 들었던 행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정진에 임하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검은 천으로 덮인 비닐하우스 천막 선원. 석 달간 입재한 스님들은 문밖 출입이 금지된다.

검은 천으로 덮인 비닐하우스 천막 선원. 석 달간 입재한 스님들은 문밖 출입이 금지된다.

 
이날 동안거 입재식에서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상월선원에 대해서만 따로 내린 동안거 결재 법어가 낭독됐다. “가지가지의 마음이 나면 만 가지 진리의 법이 현전(現前)하고/가지가지의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 가지 진리의 법이 없음이라…구름이 걷히니 산마루가 드러나고/밝은 달은 물 위에 떠 있음이로다.”
 
이어서 9명 스님을 대표해 진각 스님이 고불문을 낭독했다. 동안거에 들어가기 직전 부처님께 고하는 글이다. “당신께서는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욕망의 길이요, 하나는 혐오의 길이다. 고통의 나락으로 이끄는 이 두 갈래 길을 떠나 그 가운데 길을 걸어라. 이 길을 걸으면 눈이 밝아지고, 지혜가 늘어나고, 갈등과 대립이 사라지고, 고요하고 평화로워지며, 모든 고통이 소멸할 것이다.’”  
 
진각 스님은 "고행이 목적이 아니다. 엄격한 선원청규는 공부에 매진하기 위한 방편이다"고 말했다.

진각 스님은 "고행이 목적이 아니다. 엄격한 선원청규는 공부에 매진하기 위한 방편이다"고 말했다.

 
진각 스님은 또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을 언급하며 “저희에겐 이 천막이 보리수가 될 것입니다. 서릿발 같은 기상에 달을 벗 삼을 마음만 갖춘다면 당신의 길에서 어찌 물러남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수행처에 ‘상월선원’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라며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던 날, 저희라고 어찌 당신의 가르침에 생명을 바치겠노라 맹세하지 않았겠습니까. 고작 한 그릇이면 족할 음식에 흔들리고, 고작 한 벌이면 족할 옷에서 감촉을 탐하고, 고작 한 평이면 족한 잠자리에서 편안함을 구한 탓에 초발심이 흐려졌다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라고 수행자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저희도 당신을 따라 맹세합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라고 거듭 다짐을 밝혔다.  
 
상월선원 동안거 입재에 들어가는 스님들이 줄지어 천막 선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봄에 다시 봅시다"라는 인사를 남긴 채 스님들은 석 달 동안거에 들어갔다.

상월선원 동안거 입재에 들어가는 스님들이 줄지어 천막 선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봄에 다시 봅시다"라는 인사를 남긴 채 스님들은 석 달 동안거에 들어갔다.

 
9명의 스님이 천막선원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에서 자물쇠로 문을 잠갔다. 안에는 화장실이 하나 있고, 음식은 작은 창을 통해서만 들어간다. 일종의 무문관 수행이다. 내년 봄, 상월선원의 출입문 자물쇠가 풀릴 때 겨울 석 달 품고 품었을 이들의 화두는 과연 무슨 꽃으로 피어날까.  
 
위례=글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 사진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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