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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국 보수의 회복 탄력성과 문재인 정부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최순실 사태와 촛불시위, 탄핵의 격랑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임기 절반을 넘었다. 숨 가빴던 절반을 뒤로 하고 이제 차분히 숨을 고를 때다. 그리고는 문재인 정부가 남길 가치와 유산을 냉정하게 타산할 때다. 문재인 시기는 대한민국과 우리 삶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한번 꼽아보자. 공정과 정의? 특권폐지와 평등? 인권증진? 적폐청산? 비핵평화? 국민통합? 사회안정? 삶의 질 향상? 청년희망과 취업·출산회복? 경제발전? 복지확충? 미래 성장동력? 외교와 국제관계 강화?
 

문재인 정부 임기후반 과제 엄중
자기와 국가 회복 위한 결단 절실
노태우·YS·DJ의 희생·통합 배워
자기부정 통한 국정전환이 살 길

분야 별로 냉혹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남은 임기의 짧음과 한국정치의 격변을 유념할 때 두려움은 더 커진다. 남길 영향과 유산을 고민한다면, 전반기 정책 중 강화·지속·전환·폐기해야 할 영역과 분야가 선명해질 것이다. 이 네 기준에 맞추어 개별정책들을 판별해 내는 능력에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달려있다. 북한 비핵화·경제·일자리·재벌·미세먼지·출산·부동산·노동·복지·비정규직·인권·권력기관(청와대·검찰·국가정보원·경찰·국세청)·교육·선거·균형발전·국민통합·남북관계·외교·무역·과학기술 분야에서 개혁과 성취의 객관적 지표에 승복해야 임기 후반을 준비한다.
 
후반기 성공의 지름길은, 과거부정이 아닌 자기부정을 통한 국정 전환이다. 탄핵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적폐청산과 과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하고, 후반기는 통합과 미래로 대전환하는 것이다. 한국 보수와 진보가 보여준, 자신들과 국가를 위한 자기부정과 이중 회복 탄력성의 지혜를 원용하는 것이다. 문재인은 과연 나라와 정부를 위한 회복 탄력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김대중은 보수와의 연립 성공과 외환위기 극복 업적을 통해, 그리고 노무현은 뚜렷한 진보-보수 균형정책에 바탕해 누구보다 강력히 연정을 추구하였으나 끝내 실패하자 로마의 카토처럼 비장한 퇴임 후 자결을 통해, 각각 진보의 현실적 지속과 역사적 회복에 기여한 바 있다.
 
보수의 자기희생적 회복 탄력성은 더 극적이다. 40주기를 맞는 박정희 서거를 초래한 10·26사태는 김재규의 총탄으로 돌발하였지만, 그를 통해 부산·마산의 시위군중과 학생들의 피해를 막았고 유신체제는 유혈 없이 조종을 고하였다. 그 비극은 유혈진압을 방지함으로써 사실 박정희를 집단살상이라는 대비극과 오명으로부터도 구출해 주었다.
 
노태우의 6·29선언은 6월항쟁의 민주화 열망을 수용하는 동시에 유혈사태 없는 군부권위주의의 종식 및 민주적 개방과 함께, 보수 집권 연장의 길을 열었다. 6·29는 한국 민주화과정을 안정시킨 초석의 하나였다. 김영삼의 김대중 비자금 수사 중단 지시는 대선 파행위기의 극복과 함께, 검찰의 수사가 아닌 국민의 선거를 통한 의회민주주의 지속 및 건국 이래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의 토대를 놓았다. 의회민주주의자 김영삼의 업적이었다.
 
박근혜 탄핵 당시 62명 보수의원들의 선택은 대통령에 대한 배신을 넘어, 국가혼란과 국정농단을 매듭지으려는 결단인 동시에 국민 열망을 수용한 선택이었다. 물론, 당시 국민여론에 충실한 선택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김영삼의 수사중단 선택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업적과의 관계처럼- 역설적으로 문재인의 성취에 달려있다. 후자의 실패는 전자의 재평가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와 ‘현재’를 향한 이중화(doubling)로 인해 재빠른 보수결집과 저항의 궤적을 보여주었다. 과거권력을 향한 적폐청산은 ‘개혁없는 처벌’을, 현재 권력의 조국 사태는 ‘처벌없는 개혁’을 시도하였다. 전자의 청산 동안 숱한 처벌은 있었으되 권력기관·재벌·검찰·교육 분야의 실질적 개혁은 없었다. 놀라운 일이다. 반면 조국 사태를 계기로 갑자기 처벌없는 개혁정책들이 시행령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선진 민주주의에서 금지하는, 국민대표를 우회하는 시행령정치·시행령주의다. 그 개혁조치들은, 과거 권력에겐 적용되지 않더니 현재 권력에겐 철저히 적용된다. 옛말을 따르면, 자기부터 적용되는 (입법)이익은 무효다. 양심과 입법의 근본이다.
 
탄핵을 통해 보수가 지리멸렬했던 국민지지 절정의 임기 초반을 왜 통합 없는 청산, 개혁 없는 처벌로 지속했는지 심히 안타깝다. 타자와 자신, 상대와 자기세력에 대한 이중기준을 말하는 ‘이중화’는 나누기·닫기·처벌·마비의 네 단계로 설명된다. 먼저 나와 남, 선과 악을 선명하게 나눈다. 이어서 정의의 독점의식으로 상대와의 타협과 연대를 닫아버린다. 다음은 검찰과 사법을 통한 처벌과 청산이다. 끝으로는 상대의 요구를 수구·적폐, 악의 부활로 간주한다. 끝내 듣지 않으려는, 듣지 못하는 감각마비다. 전도는 독임과 몰락의 양자택일이다.
 
로마 최초로 단독집정관에 오를 정도로 절대권력을 갖고 있었고,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3개 대륙을 손에 넣었던 폼페이우스의 처참한 몰락의 한 원인은 섬뜩하다. ‘정직한 시민’과 ‘정직하지 못한 시민’을 구분한 진영논리와 이중화 때문이었다. 이중화를 넘는 자기부정과 회복탄력성이 없다면 문재인 정부 후반은 어둡다. 자신과 나라를 위한 여우같은 지혜와 현명한 전환이 정녕 간절하다.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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