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양육비 안 주는 ‘배드파더스’들
“월급 줄었다” 양육비 감액 소송
1·2심 “소득 줄면 양육비도 감액”
3심 “소득 줄어도 양육비 감액 안 돼”
지난 2013년 이혼한 배모씨는 아내 오모씨와의 사이에서 2010년에 아들 한 명, 2011년에 딸 한 명을 두었다. 이들은 이혼 당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월 65만원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월 100만원을, 성인이 될 때까지는 월 120만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법원 판단,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건을 담당한 1·2심 법원은 어느 정도 배씨의 의견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배씨는 부친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며 월 160만원 정도의 급여를 수령하고 있다”며 “양육비 조정 당시 급여액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2012년 무렵에는 200만~210만원 정도의 급여를 수령했다”고 밝혔다. 이어 “배씨와 아내 사이에 양육비 조정이 성립된 때에 비해 최근 배씨의 소득이 다소 감액된 것에 비춰 보면 배씨가 분담할 양육비를 일부 감액할 사정 변경이 있다”며 “배씨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80만원을, 그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는 월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원래 협의했던 양육비에서 월 20만원 정도가 감액된 액수다. 아내인 오씨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1심의 판단이 수긍이 가고, 항소의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

양육비 이행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법원의 판단을 정리하면 이렇다. 양육비의 변경은 당사자가 협의해 정한 사정이 그 당시 기준에 봤을 때 ‘부당’하다고 인정될 때만 변경이 가능하고, ‘부당’의 기준은 양육비를 주거나 받는 부모들의 사정이 아닌 ‘자녀의 복리’가 기준이며, 이에 비춰 보면 월급이 다소 적어지거나 대출금이 늘어나는 것 등은 양육비 감액이 불가피한 사정이라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이다.
2007년 개정된 민법 837조 5항은 “가정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부·모·자녀 및 검사의 청구 또는 직권으로 자녀의 양육에 관한 사항을 변경하거나 다른 적당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개정 전에는 ‘자녀의 복리를 위해’ 대신 ‘언제든지’가 들어가 있었다. 즉 대법원은 개정된 법의 취지에 따라 부모의 사정 변경 때문에 자녀의 복리를 담보하는 양육비를 함부로 줄여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양육비 미지급 관련 감치명령 신청 건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또 배씨는 이혼 당시 상당한 재산이 있었음에도 아내에게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 등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것들이 양육비 조정 당시 포함돼 있었던 것인데, 대법원은 1·2심 법원이 해당 부분에 대해서도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양육비 감액이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지 여부를 앞서 본 판단 기준에 따라 심리하지 않은 채 언제든지 양육비 감액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배씨의 소득이 줄었다는 사정만으로 이미 정해진 양육비를 감액하고 말았다”며 “이런 원심 판단에는 양육비 감액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고, 이런 잘못은 재판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해 파기환송한다”고 밝혔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판다’는 ‘판결 다시 보기’의 줄임말입니다. 중앙일보 사회팀에서 이슈가 된 판결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