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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정상 가족은 정상인가, '82년생 김지영'이 던진 질문

82년생 김지영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82년생 김지영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진아의 나는 내 재미를 구할 뿐] 책을 보지 않았다. 대학교육 받고 취업까지 했던 유능한 여성이 내 엄마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는 사실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박육아에 할 거 다해주면서 뒤에서 남편 욕하고 시댁 흉보는 ‘빨래터’ 이야기는 생각만해도 피곤했다. 그 보다는 나이 불문, 계급 불문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내 얘기다” 증언하고 나서는 ‘김지영 현상’이 흥미로웠다. 단지 이 책을 읽고 인증했다는 이유로 여성 연예인을 공격하는 일부 젊은 남성들의 발작적 반응 역시 ‘김지영 현상’에 포함된다.

딱히 새롭지도, 파격적이지도 않은 이 서사가 가진 힘이 뭘까? 무엇이 이 사회 전체의 버튼을 누른 걸까? 한국뿐만이 아니다. 책은 대만, 일본으로 건너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동아시아 여성들이 김지영에 화답하는 사이 발 빠르게 제작된 영화가 개봉했다. 개봉 첫 날 극장을 찾았다.

이 정도면 행복해야 하는데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징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징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82년생 김지영은 누군가의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 경기권 24평 신축 아파트에 살며 시댁은 다행히 부산이다. 결혼 초반엔 제사 때마다 내려갔지만 이제 명절에만 가는 정도다. 정규직인 남편은 술, 도박, 폭력, 여자 문제 없는 모범생이다. 가사일을 도와주진 않지만 가끔 딸 목욕 정도는 시킨다. 고민이 있다면 아내가 가끔 ‘빙의’를 한다는 것. 지영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혼자 속앓이 하던 남편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

“우리 지영이가 왜 이러는 거죠?”

영화는 중반까지 감탄의 한숨을 자아낼 정도다. 김지영의 고통은 기존 ‘엄마 콘텐츠’ 속 그것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감독의 수위 조절과 디테일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과의 만족도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다. 연기 전공을 아이 구연동화에 써먹는다는 이웃 여자, 남편과 다투는 중에도 빨래를 개고 반찬 통을 챙기며 끊임 없이 움직이는 지영의 손, “누가 너 돈 벌어오래?” 알바를 하겠다는 지영에게 돌아오는 핀잔, 자신이 “공부도 하고 책도 보게” 육아휴직 하겠다는 남편, 지영이 복직을 포기하자 “그래 더 쉬어”라는 배려… 이걸 보고 누군가는 “호강에 겨웠다”고 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징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징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

2019년에 이 정도의 삶은 분명 평균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천히 질식해가면서도 지영은 자신이 별 문제 없다고, 괜찮다고 말한다. 자기 목소리가 아닌 타인의 목소리를 빌어야만 비로소 터놓을 수 있다. 고통을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한 결과다. 번듯한 아파트, 착실한 남편, 나 닮은 아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는 양가 부모. 이 정도면 행복한데,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뭐지?

정상 가족이라는 판타지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이 새롭지도 파격적이지도 않은 서사는 새롭지도 파격적이지도 않기에 폭발력이 있는 거였다. 국가가 권장하고 미디어가 주입하고 온 국민이 공유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추구해야 할 평범한 ‘행복’의 뿌리를 흔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는데도 행복하지 않다고, 아프다고 지영이 폭로해버린 셈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징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징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

일부 남성들이 저토록 화를 내는 이유가 이해가 간다. 가뜩이나 아버지 세대만큼 경제적 기회도 없는데 여자들까지 참지 않겠다고 나오니 억울한 거다. 심지어 지난 달 31일 더불어민주당 정종화 청년대변인은 논평을 발표했다. ‘82년생 정종화’를 영화로 만들어도 똑같다, 남자도 힘들다는 게 요지였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대통령이 속한 당 대변인 눈에 사기업에서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여성에게 가해지는 채용비리, 임금차별 등은 보이지 않나 보다.

흑인 인권 이야기 하는데 내 인권도 소중하다며 마이크 가로채는 백인과 다를 바 없다. 왜 여성의 이야기는 이토록 쉽게 침범 당하는가? 왜 존재하는 성차별마저 부정 당하는가? 저 논평이야말로 ‘82년생 김지영’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다.

고맙다 김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징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징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빠르게 200만 관객을 동원한 것과 더불어 책은 지금 중국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지영 덕분에 여성을 갈아 넣어 작동하는 ‘정상 가족’이 정상이 아닐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행복 모델에 문제가 있다면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뭘 하지 말아야 하지? 김지영은 대중 논의의 출발선을 성큼 끌어올렸다. 어떤 학자, 정치인도 하지 못한 일이다. 나는 다시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가진 힘을 의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늦었지만 책도 샀다.

글 by 김진아. 울프소셜클럽 대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책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를 썼다.


제목  82년생 김지영(2019)감독  김도영출연  정유미, 공유, 김미경등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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