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손목 자르고 싶다”는 등돌린 민심
‘무조건 지지층’에 싸여 현실 못 봐
짐을 가볍게, 빈수레는 솎아 내야
아마 문 대통령은 강기정 정무수석이나 김조원 민정수석한테 2년반 전 그를 찍었다 등을 돌린 사람들이 “내 손목을 자르고 싶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는 민심은 보고받지 못했을 것이다. 성난 민심을 수습하지 않고 대통령이 정상적인 통치를 하기는 어렵다. 민심의 둑이 한번 터지면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조치를 취해도 막을 수 없다. 이 사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문 대통령이 누구 보다 실감했을 터다.
하산 때는 몸을 가볍게 해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 무거운 짐을 가려 덜 필요하거나 덜 급한 것들은 내려 놓는 게 현명하다. 예를 들어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뜬금없이 발표한 2025년까지 특목고·자사고 일괄 폐지 정책은 세상을 더 큰 혼란에 빠트리기 전에 어서 포기하는 게 좋을 듯하다. 사람들은 조국 학습을 통해 ‘당신네 자식은 특목고에 다 보내놓고 내 아이는 개천에서 붕어, 가재, 개구리로 살아가란 말이냐’는 분노에 휩싸였다. 학생, 학부모의 운명을 뒤바꾸는 정책을 공청회 한번 없이 시행령 하나로 뚝딱 해치운 유 장관의 행위는 입법부가 행정부에 위임한 권한을 넘어선 헌법과 법률 위반 사건이다. 국회의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국민저항운동을 부를 것이 불보듯 환하다. 문 대통령이 이런 불요불급한 정책을 방치하다간 정권유지 비용이 그만큼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전반부 권력이 절정기에 달했을 때 사학법, 국가보안법, 신문법, 과거사법의 개폐를 무리하게 추진했으나 야당이 주도하는 4대악법 저지 국민운동에 막혀 순식간에 정권의 위기를 맞았다. 결국 정권재창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산기에 들어선 문 대통령의 지금 권력은 노 대통령 때 보다 약하다. 반면 국민의 저항은 더 크다. 문 대통령은 양자를 정밀하게 비교해 현실에 맞는 정책을 써야 할 것이다.
사람도 손볼 사람은 손을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대안도 없이 일본과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를 주도해 대통령을 욕보인 김현종 청와대 안보2실장은 경질했으면 한다. 그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국제 정치의 현실을 가볍게 보고 미국한테 약한 모습 보이면 “글로벌 호구가 된다”고 큰 소리 치더니 청구서 액수만 커져 날아왔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이 헛되지 않다.
하산길에 접어든 문 대통령은 정책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아야 한다. 쓸데 없이 자꾸 짐을 만드는 사람들을 솎아낼 필요가 있다. 지나치느니 모자라는 게 낫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정치를 생각할 때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