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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의 한반도평화워치] 전략자산 비용 분담, 돈 아닌 군사력 증강으로 기여하자

방위비 분담금 협상 어떻게 해야 하나 

청주 공군기지에 착륙하는 스텔스 전투기 F-35A. 미국은 한국의 내년 방위비 분담금으로 올해의 5배인 50억 달러를 요구했다. 한국은 이번 기회에 자체 군사력을 증강해 대미 의존형 동맹에서 자립형 동맹으로 발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청주 공군기지에 착륙하는 스텔스 전투기 F-35A. 미국은 한국의 내년 방위비 분담금으로 올해의 5배인 50억 달러를 요구했다. 한국은 이번 기회에 자체 군사력을 증강해 대미 의존형 동맹에서 자립형 동맹으로 발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한국에 미군 주둔비로 한 해 약 50억 달러를 요구한다고 한다. 가당치 않은 액수를 위해 방위비 분담의 기본 원칙도 바꾸려 한다. 1990년 공식 협상이 개시된 이래 분담 대상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비용(locally-incurred cost)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군 파견과 주둔의 비용 총액에 알파를 보탠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전략에 깊이 편입되는 추세와도 맞지 않는 것이다.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격언처럼 건강한 동맹을 위해서는 상호 역할과 비용의 분담 방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반도 군사력 불균형은 재래 군비 아닌 핵 능력 때문
한국이 자체 정찰·감시체계와 한반도에 국한된 전술핵
능력으로 북한 견제하는 상호확증파괴 구조 갖춰야
핵의 평화적·군사적 이용 위해 원전 정책 재검토해야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3월부터 소위 ‘비용+50’ 방식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일본 등을 대상으로 주둔 미군의 총 소요 비용에다 50%의 프리미엄을 얹어서 지불하라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공화·민주 구분 없이 ‘절약형 초강대국’을 지향하고 있다. 트럼프가 팔을 비틀어 기본 단가를 올려두면 다음 행정부는 그 위에 차곡차곡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 군대 규모는 줄여도 방위비 분담은 증가돼 왔다.  
 
또 다른 문제는 미군의 소요 비용은 미국만이 산정한다는 것이다. 주둔지의 현지 비용은 물론 군인의 수당에서 각종 장비의 생산 가격과 운용 경비, 본토의 후방 지원 비용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항목을 반영시키려 한다. 그러면서 원가 계산서 제공은 거부한다.
  
임의로 말뚝 세운 뒤 협상하는 미국
 
한국의 분담에 관한 미국의 입장은 간단하다.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돼 있다. 미국이 핵우산으로 막아준다.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런데 우산의 비용은 미국이 정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더욱이 트럼프는 상대국과의 무역·투자·무기 구매 같은 요인은 개의치 않고 오직 방위비 계산서로만 따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국 중에서 최고 수준(GDP의 2.56%)의 국방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미국의 3대 무기 수입국이며, 해외 최대 미군 시설인 평택 기지 건설비를 거의 전액 부담한 사실은 계산서에 산입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직 자신이 미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줄였느냐를 과시하는 데만 집중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트럼프 이전에도 돈 협상에 동원하는 패턴이 있다. 일단 임의로 말뚝을 세운 다음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90년 1차 걸프전 때는 한국에 10억 달러의 전비를 요구했다. 무슨 근거냐고 따졌다. 일본이 130억 달러를 약속했으니 일본 경제의 13분의 1인 한국도 비례해서 내라는 것이었다. 줄다리기 끝에 5억 달러로 낙착됐다. 그해 초 1차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도 그냥 3억 달러를 요구했다. 우리는 능력 범위 안에서 낼 테니 모자라는 만큼은 미군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버텼다. 결국 요구액을 대폭 삭감하고 우리가 요구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도 함께 묶어 타결했다. 이번에도 그런 말뚝을 세우려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는 한국을 상대로 ‘위협을 통한 승리(Winning through Intimidation)’와 닭을 죽여서 원숭이를 겁주는 ‘살계경후(殺鷄警猴)’ 전술을 동원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하에 있는 한국을 약한 고리로 삼아 대폭 양보를 받아낸 뒤 다른 나라에 기준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내년에 2021~2025년간 방위비 협상을 시작할 일본은 지금 한·미 협상의 경과를 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를 위한 부담과 비용에 대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분담(cost-sharing)’과 동맹의 기능을 위한 ‘부담의 분담(burden-sharing)’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첫째, 단기적 과제로 미군의 한국 내 주둔 비용(한국인 인건비, 건설비, 군수지원비)은 단계적으로 증액하여 5년 뒤부터는 전부 부담하되 일본·독일처럼 현금이 아니라 현물과 서비스로 제공하자. 미·일 간 계산 방식을 원용하여 한국이 제공하는 토지의 임차 비용 등을 반영하면 한국은 이미 70% 안팎의 부담을 지고 있다. 수치를 선호하는 트럼프도 현지 소요 비용을 한국이 100% 부담케 했다고 국내 정치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견제 위한 전술핵 필요
 
아울러 현재의 협상 관행과 조직도 바꾸어야 한다. 매번 새로운 인물로 구성되는 임시팀이 연간 1조원 이상의 예산을 넘기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뿐 아니라 사후 관리도 형식적 수준에 머무는 실정이다. 상설 조직을 만들어 미국보다 더 전문적인 노하우로 협상과 관리를 맡도록 해야 한다. 돈을 받는 쪽 보다 내는 쪽이 더 영민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지금처럼 계속하면 트럼프 이후에도 갈수록 치열해질 한·미 사이의 돈 관리에 많은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평택 기지 이전 사업에서도 이미 충분히 경험한 일이다.
 
둘째, 중기 과제로 미국 전략자산 개발과 전개 등에 따르는 부담에 대해서는 한국이 돈으로 지불할 것이 아니라 군사력 증강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군사력 불균형은 재래 군비가 아니라 핵 능력에 기인한다.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대립하는 두 세력 중 한쪽만 핵무기를 가진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공존하는 경우는 없다. 결국 한국이 자체 정찰·감시 체계와 한반도 전역(戰域)에 국한된 전술핵 능력으로 북한을 견제하는 상호확증파괴(MAD) 구조를 갖출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 사이에는 방화벽이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의 원전 정책도 안보 측면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올해 6월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는 동맹국 간 역할과 비용의 분담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이 자체 안보 역량으로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을 이루는 것은 이 전략과도 부합한다. 미국은 고비용의 전략무기를 한반도와 인근 지역에 전개할 필요가 줄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돈으로 안보 사고팔면 국가 생존 위험
 
한국이 대미 의존형 동맹에서 자립형 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은 한·미 동맹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 당연히 한국의 핵 능력이 역내 핵확산을 자극할 것이라고 우려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객관적 현실과 주변국을 공격해본 적이 없다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 가격은 천정부지인 데다 언제 걷힐지 모른다. 미사일 사거리를 한반도 사정권에 국한한 방어형 핵 능력은 정당화된다.
 
2018년 11월 유럽 의회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별도의 유럽군 창설 필요성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압박에 대한 대응이었다. 위세는 미국이 부리고 돈은 유럽이 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돈으로 안보를 사고팔면 국가의 위엄과 생존이 함께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경험한 유럽 지도자들이 내리는 결단이다. 지난 7일 독일은 2031년까지 국방예산을 GDP의 2%(현재 1.36%)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우리가하는 계좌 이체 방식이 아니라, 독일 자체 방위 능력 향상을 위해 직접 투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과거 많은 협상에서 주한미군 카드를 비치곤 했다. 트럼프는 훨씬 노골적이다. 정부가 국론을 모으면서 대비책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협상의 시한도 연말에 맞출 필요가 없다. 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무비 등 경상 경비는 전년도에 준해 집행하면 된다. 차분한 가운데 결기 있는 자세를 기대한다.
 
키워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의 약자로, 주한미군의 지위를 규정한 협정. SOFA는 한국뿐 아니라 미군이 주둔하는 세계 80여 개국과 미국 간에 체결돼 있으며, 주둔군의 성격이나 당사국 간의 관계 등에 따라 그 내용이 약간씩 다르다.


전략자산
군사기지, 방위산업 시설 등 전쟁 수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목표를 타격하는 무기 체계. 핵 추진 항공모함, 핵무기 탑재 잠수함, B-52와 B-1B를 비롯한 전략폭격기 등이 있다. 미국은 본토와 미국령 괌 등에 전략자산을 배치하고 있다.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의 약자. 적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적의 공격 미사일 등이 도달하기 전에 또는 도달한 후 생존해 있는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편도 전멸시키는 보복 핵 전략. 1960년대 이후 미국·소련이 구사했던 핵 전략으로, 상호필멸전략이라고도 한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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