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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유탄 맞은 농어촌 명문고…교육부 '전국모집 특례' 폐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고교서열화 해소 정책의 불똥이 지역 소도시나 농어촌에서 명문고로 꼽히는 '농어촌 자율학교'에도 튀었다. 교육부가 자사고·외고·국제고 79곳을 2025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거창고·공주사대부고·한일고처럼 다른 시·도 학생도 뽑을 수 있던 이들 학교의 학생 선발권을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교육부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에
농어촌고 '전국모집 특례' 폐지 포함
학교들 "지역 학생 부족, 폐교 불가피"
주민 "정부가 지역살리기에 재 뿌렸다"

지역사회 "지역 명문 폐교 우려"

이렇다 할 사전 논의 없이 타지역 학생 선발권을 잃게 된 학교는 "인구 감소 속에 서울 등 대도시 학생이 찾아오는 학교로 만들려 노력해왔는데, 정부가 의견 수렴도 생략한 채 이를 수포가 되게 했다"고 반발했다. 주민·동문 등 지역사회도 "인구 절벽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방 소도시, 농어촌의 '지역 살리기' 노력에 재를 뿌렸다"고 비판했다.
 

'조국' 불똥 맞은 농어촌 명문고들 

앞서 7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간 전국에서 신입생을 선발해온 농어촌 자율학교의 모집 특례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함께 밝혔다.
 
자사고·외고의 전환 시점에 맞춰 전국 모집 특례가 폐지될 농어촌 자율학교는 대부분 비평준화 지역에 있는 일반고로, 전국 49곳에 이른다. 여느 일반고와 달리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고, 학교가 위치한 지역뿐 아니라 다른 시·도의 학생도 입학할 수 있다. 
축제를 준비 중인 거창고 학생들. 거창고 학생들은 축제 기획부터 결산까지 모든 활동을 학생 스스로 한다. [거창고 제공]

축제를 준비 중인 거창고 학생들. 거창고 학생들은 축제 기획부터 결산까지 모든 활동을 학생 스스로 한다. [거창고 제공]

강원도의 양양고, 경남 거창고·남해해성고·함양고, 경북 풍산고, 전북 익산고, 충남 공주사대부고·한일고, 충북 중원고·보은고 등이 대표적이다. 상당수가 특색 있는 교육과정, 기숙사 등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환경, 높은 명문대 진학률 등으로 해당 지역은 물론 서울 등 대도시 학생에게 인기가 높다.
 

교육부 "선발권 유지하면 또 다른 고교서열화"  

정부는 출범 초부터 자사고 등을 고교서열화와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으로 비판하는 등 이들에 대한 일반고 전환을 공언해왔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이 논란이 되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고교 서열화 해소'를 지시하면서 자사고·외고 폐지는 교육계 안팎에서 기정사실화 됐다.
 
반면 정부가 농어촌 자율학교의 선발권 박탈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거나 사전에 이들 학교와 논의한 적은 없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특목고를 폐지해도 농어촌 자율학교의 학생선발권을 유지하면 또 다른 형태의 고교서열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모집 특례를 폐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서 학생 선발하는 일반고 49개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국서 학생 선발하는 일반고 49개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다른 시도 학생 없으면 학교 문 닫아야"

해당 학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남해해성고의 강억구 교장은 "남해군에서도 가장 교통편이 좋지 않은 우리 학교는 지금껏 전국에서 우수 학생을 모집하고 기숙사를 제공해 4개 학급을 채울 수 있었다"면서 "느닷없이 지역 모집으로 바꾸라는 건 학교 운영을 포기하란 말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1972년 경남 남해군에 설립된 남해해성고는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까지 몰렸다. 하지만 2004년 자율학교 지정 이후 교사들의 노력으로 '사교육 없는 학교'이면서도 'SKY(서울·고려·연세대)' 등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로 거듭나면서 학생·학부모의 인기를 끌었다.
 
강 교장은 "지역에 일반고가 세 곳이 더 있는데, 이들의 신입생 정원을 합하면 남해군 중학생 인원보다 더 많은 상황"이라며 "학령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지역 소도시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이번 결정은 철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충남 공주한일고 2학년 학생들이 2017년 7월 국제화상학습교류 프로그램 담당 기관인 아이베카 대표와 화상으로 평가토론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공주한일고 2학년 학생들이 2017년 7월 국제화상학습교류 프로그램 담당 기관인 아이베카 대표와 화상으로 평가토론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공주시의 농촌 지역에 있는 한일고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8인 1실 전교생 기숙사, 주·야간을 아우르는 다양한 교육활동으로 유명한 한일고는 해마다 신입생 140명 중 30%는 충남 학생을, 70%는 다른 시·도 출신을 선발한다. 
 
한일고의 신일수 교장은 "인구 감소로 충남 지역 모집 정원은 매년 미달하고 있다. 충남 출신 중학생으로는 채울 방법이 없는데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정책을 내놓은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학생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1953년 개교한 경남 거창군의 거창고 박종원 교장은 "정부가 정책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거창고는 인성교육과 수준별 학습지도 등을 통해 자율학교의 성공모델로 꼽혀, 매년 40여 개 이상의 학교와 단체가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온다.
 
박 교장은 "정부 논리대로 시골에 있는 학교에는 시골 아이만 다녀야 한다면, 서울대는 서울 학생만 가야 하냐"며 "서울 학생이 지방으로 내려와 공부할 수도 있고, 지방 학생이 서울로 갈 수도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각자 행복한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주 한일고의 기숙사. 8명이 함께 사용한다.[한일고 제공]

공주 한일고의 기숙사. 8명이 함께 사용한다.[한일고 제공]

"지역 살리기와 엇박자" 비판 거세 

지역 사회에서도 "시대착오적인 지방 죽이기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충남공주시의회 이창선 부의장은 "지역 내 한일고와 공주사대부고는 전국적인 명문고로, 지역 사회의 위상을 높이고 지역 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이들 학교를 지방 일반고로 전락시키면 지역 발전의 동력 중 하나를 뽑아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주민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경남 거창에서 부동산중개소를 17년째 운영 중인 천진례(66)씨는 "거창엔 공장이 하나도 없어 젊은이가 대부분 대도시로 떠나고 노인만 남는 상황인데 그나마 거창고를 통해 서울·부산 등의 대도시 학생이 오고 부모도 이사오는 경우가 있어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거창고를 찾는 대도시 학생 발길마저 끊기면 지역이 한층 침체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졸업생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2002년 거창고를 졸업한 이모(36)씨는 "내 모교는 여느 학교와 달리 성적보다 인성교육에 집중하는 특색이 있어 전국에서 학생이 찾아오는 곳"이라며 "이런 학교의 입학을 막는다는 건 교육의 다양성과 학생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육학자들은 정부가 고교서열화 해소라는 목표만을 위해 수월성 교육을 표방하는 모든 학교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거창고·한일고·공주사대부고와 같은 학교는 해당 지역의 교육 거점 역할을 해온 긍정적인 면이 있는데 이들까지 평준화하면 지역 사회에 타격이 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행정안전부 등이 지역 살리기에 역점을 두고 있고 지자체에서도 우수학교를 만들려 정성을 쏟아 왔는데 교육부의 정책 선회는 지방자치의 정신, 지역 살리기라는 정책 기조 모두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일반고 고교학점제가 정착되면 기존 농어촌 자율학교뿐 아니라 지역의 모든 일반고에서 수월성 교육이 가능해진다"며 "농산어촌 지역 학교를 '고교학점제 선도 지구'로 지정하고, 교원 및 인프라를 제공하는 등 집중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충남·경남=김방현·이은지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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