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니…

기자
이한세 사진 이한세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36)

8년 전에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적이 있다. 법사님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중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을 묻는 것이 있었다. [사진 불교문화사업단]

8년 전에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적이 있다. 법사님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중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을 묻는 것이 있었다. [사진 불교문화사업단]

 
8년 전 4박 5일로 진행되는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적이 있다. 첫날 법사가 10개 정도의 질문을 적은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질문 중 하나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밉고 증오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답을 적은 질문지를 회수한 법사를 중심으로 22명의 참가자가 빙 둘러앉았다. 첫 번째 화두는 “당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법사와 참가자가 순서대로 1대1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몇 개의 질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세상에서 가장 밉고 증오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화두가 시작되었다. 법사와 참가자의 대화를 나머지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한 명씩 이야기가 진행되어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의 순서가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밉고 증오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법사의 질문에 그녀는 말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밉고 증오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잠시 뜸을 들인 법사는 나지막이 다시 물어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답이 없었다.
 
잠시 짧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낯선 정적을 깬 것은 그녀의 통곡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모두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증오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녀가 가장 증오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였다. 30분 넘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본인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 사람’, ‘그 인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성폭력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강압과 육체적 폭력이 그녀를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게 했다.
 
22명 참가자 모두 증오 대상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대상 숫자를 헤아려 보았다. 아버지 10명, 남편 4명, 아내 2명, 어머니 1명, 헤어진 애인, 돈 떼먹은 사기꾼 등이었다. 살면서 가장 미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전체 참가자 반 가까이가 아버지를 꼽은 것이다. 여기에 남편까지 더하면 반이 훌쩍 넘었다.
 
살면서 가장 미운 사람을 묻는 질문에 전체 참가자의 반 가까이가 아버지를 꼽았다. 남편까지 더하면 반이 훨씬 더 됐다. 그렇다면 아버지이자 남편인 나는 무엇일까? [사진 pixabay]

살면서 가장 미운 사람을 묻는 질문에 전체 참가자의 반 가까이가 아버지를 꼽았다. 남편까지 더하면 반이 훨씬 더 됐다. 그렇다면 아버지이자 남편인 나는 무엇일까? [사진 pixabay]

 
아버지이자 남편인 나는 뭐지? 갑자기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이 났다. “너희들도 미운 사람 1순위가 혹시 나?”라고 물어볼까? 그러나 그런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그저 눈치껏 알아볼 요량이었다.
 
나도 한때 아버지가 증오의 대상까지는 아니었지만 미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나에겐 그저 남이었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 후 정치판에 몸을 담은 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껏 한평생 아버지와 같이 산 기간이 3년을 넘지 않고 그것도 중학교 시절이었으니 그 이전에는 아버지와 함께 산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머니가 운영하는 제과점 앞에서 딱지치기하고 있으면 낮이 조금 익숙한 남자가 지프를 타고 나타나 어머니와 몇 마디 나누고, 내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사라지곤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일 년에 몇 번 연락이 와서 형들하고 나가면 왕갈비 사주고 용돈을 주는 아저씨가 바로 아버지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부자지간의 질긴 인연으로 나는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 집에서 2년간 살았다. 그리고는 고1 때 다시 어머니에게 돌아온 후, 15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는 같이 사는 인연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의 응어리가 풀린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다. 그 당시인 1970년대 말에 고교 얄개라는 하이틴 영화가 히트 치던 시절이었는데 또 하나의 유행은 친구들과 개똥철학 논쟁하기였다. 친구들끼리 철학서를 읽고 마치 자기가 철학자나 되는 것처럼 책의 몇 구절을 인용하여 기 싸움을 하곤 했다. 친구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이 책 저 책을 읽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였다. 여느 철학서와 마찬가지로 피상적인 이해만 가능할 뿐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성격과 외모가 다른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이라는 것을 하며, 결혼은 이러한 남녀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고자 하는 자녀가 서로 맞지 않는 두 남녀의 눈에 콩깍지를 씌운 결과며, 본인이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남녀의 눈에 씌워진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서로가 맞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두 남녀의 불행이 시작된다는 것”이 골자였다.
 
“내가 태어날 목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눈에 콩깍지를 씌운 것이 바로 나란 말인가? 나는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 목적을 달성했고, 그 후유증으로 어머니, 아버지가 마음고생 하는 것이라면 아버지를 미워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두 사람을 위로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이후로 아버지를 가끔 만나게 되어도 예전처럼 겉돌지 않았다. 나에게 잘해주는 옆집 아저씨처럼 조금 친근하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나에게 다른 집처럼 많이 해준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폭력을 가하거나, 구걸을 시키거나, 힘들게 괴롭힌 적은 없었다.
 
1985년, 백 투 더 퓨쳐라는 영화가 히트를 쳤다. [중앙포토]

1985년, 백 투 더 퓨쳐라는 영화가 히트를 쳤다. [중앙포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85년,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했다.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 미혼인 주인공의 엄마 아빠를 만나 두 사람을 어떻게든 결혼시키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쓴다는 스토리다.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의 계략으로 두 사람은 결혼하고 그 결과로 주인공이 무사히 태어난다.
 
아버지와 같이 산 기간이 짧아서 그런지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감정적으로는 다소 담담한 편이었다. 얼굴을 전혀 모르는 몇몇 아버지 친구가 문상을 왔다. 혼자 온 친구분 한 명이 아버지 영정사진을 보자마자 그 앞에서 널브러져 앉아 크기 울기 시작하였다. 남자 노인이 울기 시작하니 모두 무슨 일인가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아버지에게도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울어줄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을까? 새삼 새롭기까지 했다.
 
나의 장례식 때 아버지처럼 널브러져 앉아 크게 울어줄 친구가 과연 있을까? 자신이 없다.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