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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연기요?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아티스트라운지] 국립창극단 ‘패왕별희’의 여장남자 김준수

창극 ‘패왕별희’에서 김준수는 현란한 쌍검무 등 신들린 여장 연기를 보여준다. 전민규 기자

창극 ‘패왕별희’에서 김준수는 현란한 쌍검무 등 신들린 여장 연기를 보여준다. 전민규 기자

“한국의 매란방(중국의 전설적인 경극 배우)을 보는 듯하다.”

팬덤 탄탄한 국악계 아이돌
여자 역할 세 번째 맡아
매력 있지만 빨리 털어내야
경극인들 보며 열정 다잡아

 
지난 4월 초연한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에서 한 소리꾼에게 쏟아진 찬사다. 동명 영화에서 장국영의 연기로 잘 알려진 여장남자 ‘우희’(아래 사진)를 완벽하게 재연한 김준수(28) 얘기다. 대만 최고의 배우 겸 연출가 우싱궈의 연출로 경극의 양식미에 우리 소리를 오롯이 태워 새로운 미학을 탄생시킨 창극 ‘패왕별희’(11월 9~1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는 김준수의 신들린 연기에 힘입어 반년 만에 재공연을 올린다.

 
그런데 이 ‘한국의 매란방’은 재공연 결정에 ‘헉!’ 했단다. 여장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의상 피팅을 해보니 다시 살을 빼야겠더라고요. 그동안 상체운동을 하면서 꾸준히 몸을 만들고 있었거든요. 허리띠를 졸라맨 것처럼 타이트한 의상을 입어야 하는데, 몸의 선이 중요한 역이라 핏을 살리는 게 최우선이라서요.”

 
쌍검무 잘 추려다 허리부상도

 
패왕별희 김준수

패왕별희 김준수

가장 큰 걱정은 춤이었다. 초연 당시 우희의 킬링파트인 쌍검무를 추다가 허리까지 다쳤기 때문이다. 도수치료를 병행하면서 간신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창극단에서 한 장면을 춤으로만 표현하는 건 처음이라 잘 추고 싶었어요. 뻣뻣한 편이라 허리꺾기가 제일 어려웠죠. 경극 영상을 보면 정말 허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하거든요. 그걸 안 봤어야 했는데(웃음). 흡사하게 하려고 욕심 부리다가 고생 좀 했죠. 다시 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는데, 다행히 몸이 기억하더군요.”

 
여장남자 역할은 ‘우희’ 역으로 세 번째다. 2016년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의 헬레네 역을 시작으로, 지난 2월 외부에서 개인적으로 출연한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에서도 남녀양성을 한 몸에 지닌 사방지를 맡았다.

 
“우희 역에 캐스팅 됐을 때, 주변에서 염려의 시선도 있었어요. 농반진반 ‘너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겠느냐’고도 하시고. 하지만 굵직한 작품에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역할이잖아요. 지나고 나니 배우로서 큰 복인 것 같아요. 관객들이 좋아해주시니 힘도 났구요.”

 
경험이 있다고 쉬운 것은 아니었다. 여장남자 이야기가 이어지니 “이건 해봐야 안다”며 목소리가 커졌다. 캐릭터와 자기 내면의 경계에서 겪어야 했던 갈등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헬레네는 중성적인 면이 강했는데, 우희는 완전히 여성을 연기해야 하니까요. 안 해 본 사람은 그 묘한 감정을 이해하기 힘들거예요. 일상에서 겪어볼 수 없는 매력적인 역할이지만, 작품에 집중할 땐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만큼 몰입해 있었던 건데, 빨리 털어내야 하는 것 같아요.”

 
우희 역을 원해서 한 것도 아니다. 항우 역을 맡고 싶어 힘있는 소리와 한량무를 준비해서 오디션에 들어갔지만, 우싱궈 연출은 그에게 서정적인 사랑가와 살풀이춤을 요구했고, 결국 우희가 됐다. “작품 준비할 때 영화 ‘패왕별희’를 찬찬히 봤는데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장국영이 연기한 데이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니 ‘트로이’ 때부터 다 스쳐지나가더군요. 그때도 옹켕센 연출님이 제 정체성을 떠보는 질문을 집요하게 했거든요. ‘만일 창극단의 젊은 남자와 도망친다면 누구랑 가겠냐’고요. 끝까지 ‘없다’고 했죠.(웃음) 데이의 정체성도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 자꾸 요구받은 거잖아요. 저도 선택받아 하게 됐고 피할 수 없는 입장이었어요. 그런만큼 공감이 많이 됐죠. 나의 내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내 인생도 그런건가 싶고.”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눈이 빨갛게 충혈된다. 괜한 오해를 살까봐 힘든 감정을 쉽게 드러낼 수도 없었던 속내까지 터놓는다. 하지만 “지금도 눈물 날 것 같다”면서도 꾹 참는 걸 보니 ‘상남자’가 맞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그에게 범상치 않은 열정도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힘든시간을 보내면서도 우싱궈 연출과 경극인들의 열정을 보며 창극에 대한 자세를 다잡는 계기가 됐다니, 괜시리 짠해진다.

 
“대가 반열에 오른 연출가가 젊은 배우들보다 훨씬 더 열정적인 모습에 감탄했어요. 저래서 최고가 됐구나 싶었죠. 경극을 사랑하는 마음과 경극에 대한 자세를 보며 많이 배웠어요. 우싱궈 선생의 극단에 경극도 보러 갔는데, 그 배우들은 연습 때부터 자세가 다르더군요. 만일 저들이 창극을 해도 대단한 공연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트롯 요정’ 송가인과 동문수학한 사이

 
붉어졌던 눈시울이 대학 선배인 ‘트롯 요정’ 송가인 얘기를 꺼내니 확 밝아진다. 알고보니 어려서부터 스승 박방금 명창 아래 동문수학한 사이란다. “산공부(국악인들의 합숙훈련)도 항상 같이 갔었어요. 누나가 전국노래자랑 1등한 뒤 트롯으로 전향한다고 했을 땐 너무 아쉬웠죠. 소리를 참 잘했거든요. 근데 어려서부터 트롯도 정말 잘 불렀어요. 제 완창 무대도 찾아와 응원해 준 고마운 누나인데, 이제 성공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됐네요.(웃음)”

 
그도 사실 ‘국악계 아이돌’로서 활발한 개인 활동을 하고 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불후의 명곡’ 등 TV 음악예능에 출연해 인지도를 쌓았고, 평창 겨울 올림픽 폐막식에서 창작판소리도 불렀다. 최근 퓨전밴드 ‘두 번째 달’과 협업한 ‘팔도유람’ 앨범에서는 남도민요를 부르고 함께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번에 트롯 붐이 일어났듯이 국악도 못잖게 일어나야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게 아니라 소리꾼들이 더 많이 활동하고 알려야겠죠. 젊은 소리꾼들이 대중에게 비춰질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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