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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먹고 맨땅서 헤딩 연습…‘꼴도청’이 왕중왕 넘본다

[스포츠 오디세이] 축구 FA컵 결승 진출 코레일 FC

지난 6일 대전 한밭운동장에서 열린 2019 FA컵 결승 1차전에서 대전 코레일 장원석(왼쪽)과 수원 삼성 타가트가 볼 다툼을 하고 있다. 두 팀은 득점 없이 비겼다. [뉴스1]

지난 6일 대전 한밭운동장에서 열린 2019 FA컵 결승 1차전에서 대전 코레일 장원석(왼쪽)과 수원 삼성 타가트가 볼 다툼을 하고 있다. 두 팀은 득점 없이 비겼다. [뉴스1]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축구 클럽은 어디일까. 1943년에 창설한 조선철도국 축구단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 팀은 광복 후 철도청-한국철도로 이름이 바뀌면서 명맥을 이어 왔다. 현재 명칭은 대전 코레일 FC다.
 

FA컵 정상 도전
3부리그 실업팀 사상 첫 우승 노려
프로팀 수원 삼성과 내일 끝장 승부

이현창 전 감독
패배의식에 찌든 꼴찌 팀 확 바꿔
“힘든 걸 해낸 선수들 보면 눈물 나”

김승희 현 감독
구장 없어 한강 둔치 농구장서 훈련
“축구 하면서 행복하고 성공했으면”

대전 코레일은 2019 FA(축구협회)컵 결승에 올라 있다. FA컵은 프로-아마추어-대학 팀까지 강호들이 모두 나와 매 경기 토너먼트로 ‘한국축구 왕중왕’을 가리는 대회다. 코레일의 상대는 프로축구 K1(1부리그) 수원 삼성이다.
 
코레일은 실업축구리그를 계승한 내셔널리그(3부리그) 소속이다. 코레일은 32강에서 K1 선두 울산 현대를 꺾었고, 8강(강원 FC), 준결승(상주 상무)에서도 K1 팀을 잇달아 무너뜨렸다. 홈앤드어웨이로 치러지는 결승전 1차전(11월 6일·대전 한밭종합운동장)은 0-0으로 끝났다.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코레일이 골을 넣을 경우 비기기만 해도 우승한다. 원정 골에 가중치를 주는 규정 때문이다. FA컵 사상 첫 ‘3부리그 팀 우승’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코레일은 달린다.
 
코레일이 원래 강팀은 아니었다. 90년대 초반까지 별명이 ‘꼴도청’이었다. 대회 나가면 꼴찌를 도맡고, 하도 골을 많이 먹어서 붙은 오명(汚名)이었다. 무기력과 패배의식에 절어 있던 팀이 프로들도 겁을 내는 강호로 변신한 스토리의 주인공은 이현창(71) 전 감독과 김승희(51) 현 감독이다. 두 사람을 만나러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코레일 본사가 있는 대전으로 내려갔다.
 
조기축구 팀이 “한 게임 합시다” 도전
 
2000년 한국철도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든 이현창 전 감독(오른쪽)과 지난해 내셔널선수권 우승 트로피를 든 김승희 감독. 김성태 객원기자

2000년 한국철도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든 이현창 전 감독(오른쪽)과 지난해 내셔널선수권 우승 트로피를 든 김승희 감독. 김성태 객원기자

대전시 가양동에 코레일 선수단 숙소가 있다. 깨끗하고 아담한 5층 건물을 선수단이 통째로 쓴다. 트로피와 상패로 벽면을 장식한 1층 로비에서 이현창 전 감독과 반갑게 인사했다. 그와의 첫 만남은 20년 전인 1999년. 당시 한국철도 선수단 숙소는 경기도 안양시 인덕원역 근처 허름한 연립주택이었다. 장마철엔 비가 새고, 냉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곳이었다. 식당도 조리사도 없어서 이 감독이 직접 장을 봐서 요리를 했고, 부인이 반찬을 만들어 날랐다.
 
이 전 감독은 “선수들을 보면 다 자식 같고, 고맙고 기특해서 눈물이 납니다. 내셔널리그에서 프로팀 다 꺾고 결승까지 온 걸 ‘어쩌다 운이 좋아서’ 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알아요. 얼마나 힘든 걸 해냈는지 말이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94년 감독이 된 그는 팀을 정상에 올려놓는 동안 몸이 많이 상했다. 위암 수술 두 차례, 갑상샘암 수술도 한 차례 받았다.
 
90년 입단한 김승희 감독은 주장과 코치를 거쳐 2007년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그는 “선생님 병은 100% 화병입니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모기업이 관심 안 갖고 방치했던 팀이라 남모르는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95년부터 99년까지 7번 결승에 올랐는데 한 번도 우승을 못했어요. 매번 경기 막판에 석연찮은 판정으로 지곤 했죠. 오죽하면 제가 ‘감독님, 이런 식이면 우린 영원히 우승 못할 겁니다’라며 펑펑 운 적도 있어요”라고 회상했다.
 
경기도 이천에서 축구를 한 이 감독은 고교 때 무릎을 크게 다쳐 대학에도 가지 못했다. 어렵사리 철도청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은퇴 후에는 서울역 역무원, 노동조합 간부를 맡았다. 40대 중반에 감독으로 돌아온 철도청은 여전히 답이 없는 팀이었다. 실패했거나 낙오했거나 부상 중인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감독 이전에 철도 선배로서 다가갔지만 쉽지 않았다.
 
“한번은 강릉에 합숙훈련을 갔는데 밤에 우리 애들이 숙소 담을 넘고 있더라고요. 방을 뒤졌더니 전부 나가고 김승희 혼자 책을 보고 있어요. 승희를 앞세워 남대천변 포장마차를 덮쳤는데 거기 다 모여 있는 겁니다. ‘축구 하기 싫은 놈들은 다 나가라’고 불호령을 내렸죠. 고참들이 대거 빠져나간 뒤 4년차였던 승희를 불러서 ‘우리도 좋은 팀 만들어 보자. 네가 도와줘야겠다’면서 주장을 맡겼어요. 그 뒤로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했죠.”
 
김 감독은 “자체 운동장이 없어 한강 둔치에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조기축구 팀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그 옆 농구장에서 5대2 패스게임을 하다가 하프타임에 잠시 들어가 발을 맞추곤 했죠. 조기회한테서 ‘볼 좀 차는 것 같은데 한 게임 할까요’라고 도전을 받기도 했어요(웃음). 구단 버스가 없으니 강원도에서 게임을 하면 승용차 가진 사람이 지역별로 선수들을 태우고 출발합니다.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에 모여 집에서 싸준 김밥에 휴게소 라면 먹고 경기하러 갔죠”라며 웃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선수들은 이 감독의 ‘큰형님 리더십’ 아래 똘똘 뭉쳤다. 큰 실패를 겪고 죽어 있던 선수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김찬석은 황선홍·유상철을 키운 정종덕 감독이 건국대로 스카우트한 대형 공격수였다. 그는 프로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해 축구를 그만뒀다가 한국철도에 들어왔다. 트라우마로 인해 소심해진 그를 이 감독은 “부상 부위가 한번 더 부러질 각오로 뛰어라”고 다그쳤다. 김찬석은 팀의 주득점원으로 거듭났고, 현재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
 
‘2002 월드컵 히어로’ 이을용도 한국철도에서 부활했다. 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 시절 특출났던 그는 석연찮은 이유로 대학 진학을 못했다. 낙담한 그는 충북 제천으로 내려가 나이트클럽에서 일했다. ‘무장공비’라는 별명으로 맥주병을 나르던 이을용은 이 감독의 설득으로 다시 축구화 끈을 맸고, 시련의 세월을 이겨냈다.
 
나이트클럽서 일하던 이을용 부활시켜
 
대전 코레일 이현창 전 감독(오른쪽)과 김승희 현 감독이 2000년 한국철도의 첫 우승 기념공을 앞에 놓고 힘겨웠던 지난 시절을 얘기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대전 코레일 이현창 전 감독(오른쪽)과 김승희 현 감독이 2000년 한국철도의 첫 우승 기념공을 앞에 놓고 힘겨웠던 지난 시절을 얘기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이현창의 아이들’이 첫 우승을 한 건 2000년 6월 춘계 실업연맹전이었다. 11개 팀이 풀리그를 벌인 이 대회에서 한국철도는 국가대표급 진용의 상무, 국민은행 등을 맞아 7승3무, 무패 성적으로 챔피언이 됐다. 모기업에서 축구단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구단 버스가 생겼고, 비 새던 숙소도 리모델링했다. 그 후 전국체전(2000, 2001, 2011년) 우승, 내셔널리그(2005, 2012년) 우승 등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 축구단에 기여한 고참 선수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돼 코치가 되거나 본사로 발령받았다. 철도 축구단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팀이 됐다. 이현창 감독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이 전 감독은 “이 친구들 만나 행복했죠. 내가 대학을 제대로 나왔나, 국가대표를 했나…. 그래도 여기서 받아줘 감독 맡고, 이 친구들과 함께 엄청난 걸 해냈으니까요. 10년 넘게 세 사람(김 감독, 김찬석·이광진 코치)이 매달 각자 10만원씩 모아서 보내줍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김 감독이 지도자 교육에서 들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저 감독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우리 스스로 해낸 거야’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라고 합니다. 군림하고 끌고가는 게 아니라, 선수가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거죠. 선생님의 그런 경지에 저도 도달하고 싶습니다.”
 
코레일 선수단에는 늘 활기가 넘친다. 코치들이 “우리 땐 고속버스에 이불 싣고 합숙훈련 가서 20명이 한방에서 잤다”고 하면 선수들은 “에이, 설마” 하고 웃는다. 그렇지만 선배들이 고통 속에서 일궈놓은 탄탄한 전통을 잇겠다는 각오는 단단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2000년 첫 우승 트로피와 최근(2018 내셔널선수권) 우승 트로피를 앞에 놓았다. 스승 감독이 말했다. “FA컵 우승하면 좋겠지만 너무 결과에 신경 쓰지 말아라. 건강이 제일 중요한 거야.” 제자 감독이 말을 받았다. “우리 선수들이 성공하면 좋겠지만 축구를 하면서 행복했으면 더 좋겠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게 저희와 오래 함께해 주세요.”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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