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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曰] 소주는 죄가 없다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앞으로 두 달 후면 애주가들이 즐기는 맥주와 막걸리에 붙는 세금이 달라진다. 정부가 지난 6월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주류 과세체계를 개편했기 때문이다. 맥주 등에 붙는 주세 세율이 출고가격에 비례하는 현행 종가세에서  알코올 도수와 용량에 비례하는 종량세로 바뀐다. 서민의 술로 꼽히는 소주는 종가세가 그대로 유지돼 지금과 차이가 없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마침 관련 법안이 8일 국회 기획재정위에 상정돼 이날부터 조세소위의 검토에 들어갔다. 이번 회기에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종가세 고수하는 국민의 술 소주
서민 속 달랠 합리적 방안 나와야

정부는 세제 개편에 따른 판매가격 변동이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향후 세율을 물가에 연동해 올리도록 했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것은 불문가지다. 벌써부터 일선 음식점에선 은근슬쩍 소주 1병에 5000원으로 올려 받는 곳까지 등장했다. 소맥 폭탄주 1만원 시대가 곧 도래하는 것이다.
 
지난 여름부터 뜨겁게 달궈졌던 정국 탓에 밤마다 술자리에서도 양편으로 갈려서 논란과 싸움이 분분했다. 그때마다 애꿎은 소주병만 여럿 깨져나가며 분풀이 대상이 됐다. 소주는 이렇듯 기쁨과 슬픔을 함께 어루만지고 달래줬던 우리의 오랜 친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명이 1년 동안 마신 소주는 87병. 4.2일에 1병꼴로 마신 셈이다.
 
소주 한 병(출고가 1200원 기준)에 붙는 주세(72%)는 496원. 교육세(주세의 30%) 등이 더해지면 730원으로 훌쩍 오른다. 여기에 식당 이윤을 붙인 시중 가격(4000원)에 대한 부가세까지 매기면 소주 한 병에 붙는 전체 세금은 약 1000원으로 뛴다. 소주 한잔 들이킬 때마다 세금을 143원씩 마신다고나 할까. 하지만 술값이 비싼 위스키, 브랜드 등 고급 양주와 ‘서민의 술’ 소주가 모두 ‘증류주’로 분류돼 똑같은 세율(72%)이라는 걸 알고 나면 술맛이 싹 사라진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1998년 유럽연합(EU)은 한국이 소주(35%)보다 양주(100%)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처음에 ‘소주와 양주는 다른 술’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가던 상황이 막판에 갑자기 뒤집혔다. EU측이 한국 소주 업체들의 홈페이지를 뒤져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모 업체의 수출용 영문 카탈로그에서 발견한 ‘소주는 보드카와 비슷한(vodka-like) 주류’라는 구절이었다. 이 자료가 제시되자 소주는 위스키·보드카 등과 달리 약한 술이어서 세금을 다르게 매길 수밖에 없다는 한국의 논리가 와르르 무너졌고 결국 패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소주의 세율만 올릴 수 없어서 소주와 양주를 똑같은 세율로 매기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소주에 종량세를 도입하게 되면 가격이 비싼 위스키 등의 세금까지 낮아지기 때문에 정부로선 고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국내 주류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소주의 종량세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있다. 가격에다 매기는 고약한 현행 세금 체계 아래에서는 지금보다 고품질의 원료로 쓰거나 술병 디자인을 세련되게 바꾸더라도 출고가격이 올라가 세금이 더 붙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주세에 종량세를 도입한 나라는 OECD 35개국 중에서 30개국에 달한다. 종가세는 한국과 멕시코, 칠레뿐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50년 넘게 종가세 체계를 고집해온 것은 종량세로 바꿀 경우 세수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제 주류 과세체계 개편안은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정치 때문에 울화가 터져 소주를 찾았던 국민들에게 정치권이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을 차례다. 같은 값이면 보다 좋은 질로 서민들의 속을 덜 아프게 할 수 있는 소주가 나올 토양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소주는 죄가 없다.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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