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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현장엔 늘 그의 얼굴이 있다...저항의 아이콘 가이포크스

5일(현지시간) 영국 루이스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했다. 영국인들은 이 날을 가이 포크스 데이라고 부른다. [EPA=연합]

5일(현지시간) 영국 루이스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했다. 영국인들은 이 날을 가이 포크스 데이라고 부른다. [EPA=연합]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 5일을.”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영국인들의 오랜 읊조림은 이날도 계속됐다. 어둠이 짙게 깔린 지난 5일 밤(현지시간), 영국 루이스에선 불붙은 십자가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횃불을 든 시민들이 뒤를 따랐다. ‘가이 포크스(Guy Fawkes) 데이’. 400년 이상 영국은 이 날을 기억해왔다.     
가이 포크스.[중앙DB]

가이 포크스.[중앙DB]

가이 포크스는 1570년 영국 요크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신교도와 싸우기 위해 유럽으로 나갔다. 당시 영국은 국교회를 선포하고 가톨릭 교도들을 억압하고 있었다. 
 
1604년 영국 왕 제임스 1세는 가톨릭 교도의 공직 진출과 투표권, 토지 수용을 전부 금지시켰다. 가톨릭 교도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유럽에 있던 그에게 왕을 몰아내는데 힘을 보태달라는 제안이 전달됐다.  
 
거사 계획은 의회 개원식날, 의사당 건물을 폭파시키자는 것. 한꺼번에 왕과 신하들을 몰살시키겠다는 것이다. 전쟁터에 있던 그는 폭약 다루기에 능했다. 그리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의사당 폭파 공모자 8명.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가이 포크스[history.com캡쳐]

의사당 폭파 공모자 8명.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가이 포크스[history.com캡쳐]

런던 국회 의사당과 가까운 집을 빌려 그곳에서 의사당 아래로 이어지는 터널을 파들어갔다. 화약통 36개(약 800kg)가 의사당 지하에 옮겨졌다. 18개월에 걸친 작전이었고 순조로워 보였다. 공모자는 8명. 마지막 순간 화약에 불을 붙여야 할 사람은 가이 포크스였다.  
 
일이 틀어진 건 공모자 중 한 명이 의회 의원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내면서다. 가톨릭 교도인 의원이 함께 살해당할 것을 우려해 개원 당일 의사당에 나오지 말라고 알려준 것이다. 이 의원은 편지를 왕에게 전달했다.  
 
1605년 11월 5일 자정 무렵. 아무 것도 몰랐던 가이 포크스는 의사당 지하 화약 더미 옆을 지키고 있었다. 경비대가 급습했고 그는 체포됐다. 사흘간 처참하게 고문당했고 이듬해 공모자들과 함께 사지절단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36세. 왕은 11월 5일을 국가 전복 기도를 막은 날이라며 감사절로 정해 축하하도록 했다. 가톨릭을 믿는 국민들은 이를 비웃었다.  
가이 포크스를 그린 만화 브이 포 벤데타(왼쪽)와 이를 영화한 작품(오른쪽, 2005) [페이스북]

가이 포크스를 그린 만화 브이 포 벤데타(왼쪽)와 이를 영화한 작품(오른쪽, 2005) [페이스북]

수백년이 지나 그는 다시 부활했다. 1982년 데이비드 로이드(David Lloyd)가 그린 만화 『브이 포 벤데타』가 출간됐다. 종교 탄압에 반대했던 가이 포크스는 전체주의에 맞선 무정부주의자로 재탄생했다. 그의 가면 형태가 처음 등장한 것이 이때다.  
 
만화가 영화 ‘매트릭스3’ 작업에 참가한 제임스 맥티그(James McTeigue)에 의해 2005년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그(혹은 그의 가면)는 폭압적 권력에 대한 저항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2018년 5월 14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한항공 사주 '갑질' 항의 집회 [연합]

2018년 5월 14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한항공 사주 '갑질' 항의 집회 [연합]

그가 시위에 등장한 건 2008년 익명의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가 가면을 쓰고 정부 검열에 항의하면서다. 2011년엔 ‘월가 시위(Occupy Wall Street)’에 참여한 사람들도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썼다. 무차별 폭로로 유명한 줄리안 어샌지(Julian Assange) 역시 가면을 쓰고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한국에선 지난해 대한항공 총수 일가를 향한 '갑질' 근절 시위 때 직원들이 단체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나섰다.
홍콩 폴리텍 대학 학생들이 5일 가면을 쓰고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

홍콩 폴리텍 대학 학생들이 5일 가면을 쓰고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

5일 스페인 카탈루니아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100만 가면 행진. [로이터=연합]

5일 스페인 카탈루니아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100만 가면 행진. [로이터=연합]

지난 4월16일 에콰도르에서 정부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 [AP=연합]

지난 4월16일 에콰도르에서 정부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 [AP=연합]

지난 1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 [EPA=연합]

지난 1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 [EPA=연합]

올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홍콩,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스페인 카탈루니아, 경제적 불평등 해결을 요구하는 칠레, 심지어 기후 위기 관련 집회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시위 현장에 '가이 포크스'가 등장하고 있다. 가면을 처음 그렸던 데이비드 로이드는 2015년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에 "그것은 저항과 반역의 다목적 배지"라고 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브이(V)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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