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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단순한 것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의 소수자 적극 정책(affirmative action)은 일반적으로 말해 고용, 교육, 비지니스 분야에서 과소 대표된 소수자들이 인종, 종교, 교육, 성별, 국적 등을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는 것을 막고 동등한 혜택을 주기 위한 제반 정부 정책을 말한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논쟁으로 번지게 된 것은 소수 인종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미국 대학들이 신입생을 선발했고, 그 과정에서 탈락한 이들-일반적으로 백인남성들-이 대학을 상대로 제기한 수차례의 소송이었다.
 

미국의 소수자 적극 정책은
‘적극적’인 소수자 포용정책
우리도 미래와 사람에 대한
전면적 토론과 논쟁이 필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업적과 성취에 의해서 모든 것을 평가받는 능력주의와 자유경쟁의 원리가 만개한 미국의 토양에서 특정 집단이, 대학 입시에서 “우대”를 받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권익이 침해되는 상황은 매우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오늘 문법으로 말하자면 공정성이 훼손된 것이다.
 
1970년대 이래 미국에서 벌어진 수차례의 법적 분쟁이 낳은 것은 크나큰 갈등이었지만 동시에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공정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과 합의를 남긴 것 또한 사실이다. 2019년 한국에서 활발하게 고민되고 있는 공정성 논의에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해서 오늘 지면에서는 미국의 논쟁을 간략하게 소개할까 한다.
 
애초 소수자 적극 정책을 옹호하는 입장의 고전적인 논거는 매우 “도덕주의”적이었다. 수백년 인종차별에서 말미암은 소수인종이 입은 집합적 피해에 대한 보상, 혹은 배상을 위해 고용이나 대학 입학에서 이들이 우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의 차별이 현재 기회 구조의 심각한 비교 열위를 낳은 것이라면, 이러한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차별의 철폐나 부재가 아니라 보다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소수자 적극정책에 대한 보다 강력한 두 번째 옹호는 사실 대학 입시에 보다 특화된 논의이다. 이 논지에 의하면, 대학의 핵심적 목표는 민주주의적 문화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다양한 학생들로 구성된 학원(學園)공동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으로 구성된 학생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의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배우고 가르치는 곳,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장이 바로 대학이며 이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대학의 노력으로서 소수자 적극정책이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 국가와 공동체는 그 존속을 위해서라도 문화적, 인종적으로 통합된 엘리트를 양성할 일이 필수적이라는 강력한 주장인 셈이다.
 
입시관계자들이나 학부모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백면서생들의 이상주의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학이 동일한 시험에서 동일한 점수를 받은 매우 균질하게 닮은 학생들로만 이뤄져 있다면, 대학이 이들을 더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기는 꼭 그만큼 어려울 것이다. 교육이란 과정에서 누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누구와 함께 같이 배우고 부대끼고 토론하는가 하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균질하고 서로를 닮은 우리의 엘리트들을 처음 만들고 낳은 곳이 바로 우리의 대학이고, 또 내가 재직하고 있는 서울대라고 생각하며, 이상의 논점을 곱씹어 본다.
 
소수자 적극정책을 옹호하는 세번째 논거는 그것이 사회적인 총효용의 관점에서 훨씬 더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예컨대, 소수집단 우대정책은 이전에는 사회적 서비스로부터 소외되었던 소수자들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 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여성 의사나 소수인종 의사가 의료서비스로부터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인 소수자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더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연구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들을 더 적극적으로 교육시키고 고용을 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서비스가 기존에는 미치지 못하던 곳까지 도달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흑인 의사가 흑인 환자에게, 여성 정치인은 여성 정책에, 빈곤층 출신의 교사는 빈곤층 어린이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가 아닌가 대답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적어도 확실한 것은 사회적 총효용은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런 논의들을 인종적 갈등이 심각한 미국만이 가진 특수한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루한 논쟁은 2019년의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갈등들과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에 부재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정성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단순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의 논의가 말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공정성이란 말이 사실 매우 복합적이고 상대적인 말이며, 토론과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싸움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부재한 것이 또하나 더 있다. 위의 세가지 주장들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공정성을 과거나 현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공정성에는 과연 미래에 대한, 교육과정에 대한, 나아가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가? 지금이 바로 그 토론을 시작할 때이다.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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