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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열정의 시간, 수습의 시간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공피고아(攻彼顧我)’라고 했다. 적을 공격하기 전에 자신부터 살펴보라는 바둑 격언이다. 아마추어 4단 바둑 고수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 좀 하자”며 아베의 소매를 끌었을 때 새삼 이런 격언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회심의 일격으로 날렸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철회 결정은 오히려 외통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당당한 나라’를 꿈꿨지만, 한·미·일 삼각동맹 균열 속에서 초라해진 우리 처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에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고 했던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의 호기가 헛헛하다. 회담 분위기가 우호적이었다는 청와대 설명에 일본 총리실은 ‘그건 그쪽 생각’이라는 투다. 얄밉다. 씁쓸하다.
 

이상만 좇다가 길 잃은 임기 전반
이젠 현실 기반 냉정 모드 찾아야
열렬 지지층의 반발 극복이 과제

조국 사태로 홍역을 앓고 난 문 대통령은 요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고민하는 듯하다. 평소 즐겨 찾는 빨간 뚜껑 소주가 이번에도 고뇌의 시간을 벗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정시 확대는 이상과 현실이 맞붙은 최전선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정시가 능사는 아닌 줄은 알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날 오후 청와대 출입기자단 초청 행사에서 이런 말도 했다. “지나오고 보니 누구도 공정이라는 말을 하지만, 공정의 개념은 각자 굉장히 다른 것 같다.” 고뇌의 터널을 지나는 혼곤함이 느껴진다.
 
지나간 절반의 임기는 열정의 시간이었다. 적폐청산, 소득주도성장, 노동 존중 사회, 평등·공정·정의, 평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숨 가쁘게 몰아쳤다. 그러나 열정이 휩쓸고 간 자리는 수습되지 않은 잔해로 어지럽다. 분열과 갈등, 자영업자 몰락과 사라진 일자리, 기업 사기 저하, 아노미적 가치 혼란, 꼬여버린 외교 안보…. 이상은 하늘로 뻗었지만, 발은 땅을 딛지 못했다. “하지도 않고 후회하지 말고, 해보고 후회하라”는 식의 열정은 개인 삶에서나 미덕이다. ‘나라 다스리기는 생선 뒤집듯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治大國 若烹小鮮)’는 노자의 가르침은 그저 옛말이라 치자. 그렇더라도 대책 없는 큰 소리만 지나치게 앞섰다.
 
특히 경제가 너무 엉켜 버렸다. 그래프가 땅에 박혀서야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인가. 수습을 위해 대통령은 동분서주하고 있다. 닷새 간격으로 삼성과 현대차 사업장을 찾아가 “감사한다”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예정에 없던 경제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도 했다. 금기시하던 건설 투자를 통한 경기 부양까지 마다치 않을 태세다.
 
관리 모드에 들어간 대통령과 달리 참모들은 여전히 열정 본능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정무수석은 제1야당 원내대표에게 삿대질하는 ‘한 번도 못 본 정무 모델’을 보여줬다. 비서실장은 “잘한 것은 기억나는데, 잘못한 것은 별달리 생각나지 않는다”며 뻣뻣한 자세다. 경제수석은 ‘당신이 정책을 맡았을 때도 성장률은 낮았다’며 기재부 선배 야당 의원과 맞섰다. 안보실장이 북한 감싸기에 급급한 것도 평화 열정 때문이리라. 반환점이라지만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사실상 얼마 없다. 내년을 넘기면 정국은 완연히 대선 모드로 돌아설 것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의 운명이다. 수습의 시간을 이런 참모들과 보낼 것인가.
 
수습의 시간, 진짜 저항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 있다. 열렬 지지층이다. 조국 사태에 대한 여당 대표의 인색한 사과마저 ‘투항’이라고 아우성치고, “정경심 교수님 며칠만 더 버티시라”고 응원하는 맹목의 소유자들이다. 자신들이 대통령을 선택했다고, 즉 ‘택군(擇君)’ 했다고 믿는 세력들은 배신감을 토로할 것이다. 열정의 시간에 막강한 응원군이던 이들은 수습의 시간에는 저항군이 될 공산이 크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대통령이 이런 난관을 돌파하지 못하면 올라갈 때 못 본 꽃, 내려갈 때도 볼 수 없다. 못 보기만 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어지러운 발걸음이 그 꽃을 짓밟아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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