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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는 민중당 3인, DJ는 386 운동권···이런 인재영입 감동줬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3월 9일 청와대에서 신임 민자당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김문수 전 민중당 노동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 전 위원장의 보수정당 합류는 당시 정가에 큰 화제가 되었다. [중앙포토]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3월 9일 청와대에서 신임 민자당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김문수 전 민중당 노동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 전 위원장의 보수정당 합류는 당시 정가에 큰 화제가 되었다. [중앙포토]

자유한국당이 박찬주 전 대장 영입 홍역을 치르고 있다. 당내에선 “‘조국 사태’로 얻은 정치적 이득을 상당 부분 까먹었다”는 자조도 나온다. 한 당직자는 “정치권에서 ‘영입 1호’가 갖는 상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황교안 대표가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역대 총선 영입의 정치학
YS ‘개혁성’ DJ는‘고령’ 약점 보완
민자당 이재오·김문수 등 영입
이미지 쇄신 15대 총선서 선전

DJ ‘386 인사’ 정치권에 대거 수혈
이인영·임종석 등 새바람 일으켜

황교안, 박찬주 영입 놓고 홍역
“비슷한 성향만 골라 신선감 없어”

과거 당의 전권을 쥔 유력 정치인들은 영입을 전략적으로 적절히 활용해 선거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곤 했다. 외부 영입을 통해 약점을 보완하거나 상대의 강점을 무력화시켰다. 대부분 자기 진영 사람이 아닌 다른 진영 사람이 발탁되곤 했다. 이른바 '외연 확대'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6년 제15대 총선이다. 이전 선거에서도 연예인 등 외부 수혈은 있었다. 다만 1992년 14대 총선만 해도 거대 여당이던 민주자유당은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YS)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JP) 총재의 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의 여파가 남아있다 보니 교통정리가 시급했다. 노 대통령과 YSㆍJPㆍ박태준(TJ) 최고위원 등 4명이 모여 이를 조율했다. 외부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형편이 아니었다. 
 
야당도 1991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신민주연합당과 이기택 전 의원의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소위 신민계와 민주계의 자리싸움이 치열해 영입보다는 내부 반발을 최소화하는 데 바빴다.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중앙포토]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중앙포토]

 
하지만 15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신한국당에서는 대통령 YS가, 제1야당이 유력시됐던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김대중(DJ) 당시 총재가 각각 공천 전권을 쥐면서 외부 영입을 본격화했다. 
 

YS의 개혁성 보완

1996년 15대 총선 앞두고 YS의 숙제는 JP와의 결별과 창당(자유민주연합)을 극복하고, 정계 복귀한 DJ의 영향력을 수도권에서 최소화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94년 민중당 출신 이재오ㆍ김문수ㆍ이우재 등 재야 운동권 인사들이 전격 영입됐다. 보수 거대 여당인 민자당이 이들을 ‘영입 1호’로 성사시킨 것은 파장이 컸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우려도 나왔지만, 총선을 앞두고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며 외연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DJ 영입 주요 인사

DJ 영입 주요 인사

이어 ‘모래시계’ 검사로 일약 대중 유명인이 된 홍준표 변호사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실장 출신의 정태윤 전 민중당 대변인도 영입해 기득권 이미지를 완화했다. 이들은 모두 서울 등 수도권에 배치돼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차단하는 선봉이 됐다. 
 
1996년 4.11 총선에서 서울 은평을에 나서 당선된 이재오 신한국당 의원이 차량에서 당선사례 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6년 4.11 총선에서 서울 은평을에 나서 당선된 이재오 신한국당 의원이 차량에서 당선사례 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후 총선을 앞둔 1996년 초에는 개혁 전도사로 수도권에서 인기가 높았던 박찬종 변호사에 이어 이회창ㆍ이홍구 전 총리 등 보수층 뿐 아니라 중도층에 어필하는 거물급 인사를 영입했다. 특히 이회창 전 총리는 총리 시절 YS와 갈등을 빚는 등 껄끄러운 사이로 알려졌지만, 영입을 성사시키면서 되려 총선 경쟁력을 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15대 총선에서 YS의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으며 ‘선전’을 했다. 특히 성수대교 붕괴(1994년)ㆍ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민심이 이반하는 대형 사고들이 이어지며 고전(苦戰)이 예상됐던 수도권(96석)에서 54석을 얻어 30석에 그친 국민회의를 따돌렸다. 당시 신문의 헤드라인이 '여당 서울 승리'였다. 당내에서 "한 자릿수 의석 확보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던 걸 감안하면 '대승'이기도 했다. 
15대 총선 수도권 의석 수

15대 총선 수도권 의석 수

 신한국당은 1996년 3월 17일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들로 이뤄진, 인터넷을 배우기 위한 동호인회 `신한국 네티즌들의 모임`을 결성, 발족식을 가졌다. 총선을 앞두고 영입된 이회창, 박찬종 당시 선대위원장 [중앙포토]

신한국당은 1996년 3월 17일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들로 이뤄진, 인터넷을 배우기 위한 동호인회 `신한국 네티즌들의 모임`을 결성, 발족식을 가졌다. 총선을 앞두고 영입된 이회창, 박찬종 당시 선대위원장 [중앙포토]

뉴DJ로 가는 길목

15대 총선에 대해 DJ의 측근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DJ가 대통령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정계 은퇴 선언까지 뒤집고 네 번째 대선에 도전하는 DJ로서는 새로운 인물들을 영입해 ‘뉴 DJ’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수혈을 위해서는 ‘어제의 동지들’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YS 영입 주요 인사

YS 영입 주요 인사

실제 DJ는 젊은 층에 인기가 높은 소설가 김한길·김진명, 대중적 인지도가 탄탄한 MBC 앵커 정동영 등을 영입했다. 또 노태우 정부에서 대북정책을 맡았던 군 출신의 임동원 전 장관과 천용택 전 장관을 합류시켜 색깔론에 맞서게 했다. 
 
김대중대통령이 1999년 3월4일 청와대에서 김한길 신임 정책기획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대중대통령이 1999년 3월4일 청와대에서 김한길 신임 정책기획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만 DJ가 워낙 확고부동한 대선주자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신한국당처럼 거물급 인사 영입에는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포스트 3김 시대’라는 전환기를 맞아 우상호·이인영·임종석 등 ‘386 운동권 인사’를 ‘젊은 피’로 대거 수혈하면서 개혁성·젊음 등을 차별화로 내세웠다.
 
반면 17대(2004년)·18대(2008년) 총선에서는 영입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역풍(逆風)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뉴타운 바람이 더 관심을 끌며 선거를 좌우했고, 대통령이 선거의 주인공이 되면서 영입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당시 영정 사진을 든 우상호(가운데) 의원. 우 의원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선 사람은 배우 우현(왼쪽)씨다. [중앙포토]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당시 영정 사진을 든 우상호(가운데) 의원. 우 의원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선 사람은 배우 우현(왼쪽)씨다. [중앙포토]

 

朴의 탈(脫)보수 시도

2012년 대선을 코앞에 두고 치러진 19대 총선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전권을 쥐고 지휘했다.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15년 만에 변경하고, 당 로고는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꾼 데 이어 ‘경제민주화’ 슬로건을 내거는 등  보수적 색채를 탈피하기 위해 애썼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박근혜 키즈’로 불린 이준석ㆍ손수조 등 20대 인사가 중용되면서 ‘파격적’이라는 평을 얻었고, 다문화 가정을 상징하는 이자스민 전 의원이 비례대표 당선권인 15번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또한 공천을 받지는 않았지만 ‘침대는 과학입니다’ 등 유명 CF 카피를 만든 조동원씨가 홍보기획본부장으로 영입돼 눈길을 끌었다. 
 
19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치러진만큼 심판론으로 야당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새누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얻어 완승했다.
 
2012년 4월 11일 총선 결과를 지켜보는 새누리당 지도부. 왼쪽부터 이양희 비대위원,박근혜 위원장,이준석, 비대위원. [중앙포토]

2012년 4월 11일 총선 결과를 지켜보는 새누리당 지도부. 왼쪽부터 이양희 비대위원,박근혜 위원장,이준석, 비대위원. [중앙포토]

 

文의 탈(脫)친노ㆍ586

민주당 총선기획단 첫 회의가 열린 5일 이해찬 대표와 윤호중 단장(앞줄 왼쪽 둘째부터)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임현동 기자

민주당 총선기획단 첫 회의가 열린 5일 이해찬 대표와 윤호중 단장(앞줄 왼쪽 둘째부터)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임현동 기자

19대 대선 길목에서 치러진 20대 총선은 19대 총선의 흐름과 유사했다. 당초 여당(새누리당)의 완승이 점쳐졌다. 새누리당이 과반에서 최대 180석가량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달아 나왔다. 그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공천권이 주어졌다.  
 
당내 기득권으로 지목된 친노ㆍ친문ㆍ86그룹 등 ‘운동권’ 이미지를 약화할 수 있는 인사들이 이때 대거 영입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영입 1호’라는 별칭을 얻은 표창원 경찰대 교수를 비롯해 게임업계의 성공한 CEO 김병관, 유명 어학원을 운영하는 박정, JTBC ‘썰전’ 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정치평론가 이철희 등의 비문계 인사들이 대폭 충원됐다.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 임원에 오르며 ‘유리천장’을 깬 양향자 당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도 주목받은 인사였다.
2016년 4월 6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는 표창원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4월 6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는 표창원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중앙포토]

또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진영 의원 등 박근혜 정부 및 친박계에서 ‘팽’ 당한 인사들도 합류시켜 전력을 확충했다. 
 
20대 총선 역시 예상을 뒤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 압승 및 부산·경남에서의 약진을 바탕으로 123석을 얻으며 원내 1당으로 올라섰다. 
 

黃의 영입 전략 메시지는?

지난 4일 한국당 총선기획단 출범식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황교안 대표와 박맹우 단장(오른쪽 넷째부터). 임현동 기자

지난 4일 한국당 총선기획단 출범식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황교안 대표와 박맹우 단장(오른쪽 넷째부터). 임현동 기자

황 대표는 5일 박 전 대장 영입과 관련, “국민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사실상 영입 철회를 시사했다. 영입방정식이 정교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당 중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혁신적 인물로 당에 새 바람을 넣어야 하는데, 황 대표의 이번 인재영입은 '초록이 동색'처럼 비슷한 성향의 사람만 모으지 않았나. 신선감이 전혀 없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삼청교육대 발언에서 보듯 박 전 대장의 시대 감각은 많이 뒤처져 있다"며 "그런 사람을 삼고초려로 데리고 오려 한 황 대표의 정치적 안목만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전반기 소상공인 정책평가' 대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전반기 소상공인 정책평가' 대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대결 기능이 약하고, 중앙당이 강력한 한국 정치에서 외부 영입이나 공천은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대선의 전초기지를 마련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상향식 공천인 미국이나 가문세습이 작동하는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의 독특한 정치 시스템"이라며 "따라서 어떤 인물을 내세우느냐에 따라 정당의 약점을 커버하고 중도층을 확보해 외연을 넓힐 수도 있다. 한국 정치에서는 중요한 정치 행위"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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