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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숨은그림찾기] 31년 전 ‘신대방동 아이’ 눈에 비친 것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철학자 같은 표정의 아이, 서 있는 배경이 이런 표정의 이유를 쉽사리 말해줍니다. 왼쪽엔 신축 아파트, 오른쪽엔 무너져 내리는 판자촌, 1988년 작품으로 제목은 ‘신대방동 아이’(사진)입니다. 그림이 걸린 경기도미술관에서는 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에 대한 자료전이 한창이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지역 미술 동인들의 작업실을 돌며 준비한, 지방 미술관다운 기획이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휘날렸던 대형 걸개그림을 비롯해 공장에서, 집회 현장에서 함성을 보태며 역사가 된 이미지들도 여럿 나왔습니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마음에 담긴 것은 이런 이름난 작품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림 속 아이의 표정이었습니다.
 
신대방동 아이

신대방동 아이

수원의 미술동인 ‘새벽’ 창립전에 나왔던 이 그림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린 이주영(60)씨는 동인들과 함께 수도권의 재개발 현장을 다니던 88올림픽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서울 신대방동도 아파트 건설로 철거가 한창이었습니다.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상황이었죠. 집은 없어지고, 아이들 책상이고 가방이고 가재도구고 박살 나고 내동댕이쳐지고, 한쪽에선 울고불고하고….” 새 아파트가 있는 아래쪽과 철거가 진행 중인 언덕배기 사이에서 아이를 본 건 그때였습니다. 예닐곱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아이가 애어른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화가로 큰 이름을 얻진 못했지만 이씨는 수원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여전히 그립니다. 안성·평택·군포·제주 등지를 떠돌면서도 계속 간직한 덕분에 이 그림도 오랜만에 전시장에 걸렸습니다. 이젠 30대 후반쯤 됐을까요. 아이가 그때 보아버린 세상보다, 우리가 지나온 어떤 시절보다, 지금 그의 눈에 비칠 세상은 좀 더 나아졌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데…. 31년이 지난 지금, 아파트 평수로, 분양과 임대로 서로를 가르는 어른들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또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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