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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명의 친절과 1 명의 속임수, 불가리아의 참모습은?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54) 

유럽 동쪽 끝 발칸반도에 위치한 불가리아는 서유럽만큼 부유하지도 않고 수도 소피아 역시 화려함보다 소박함이 느껴지는 도시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절하고 정이 많았다. [사진 박헌정]

유럽 동쪽 끝 발칸반도에 위치한 불가리아는 서유럽만큼 부유하지도 않고 수도 소피아 역시 화려함보다 소박함이 느껴지는 도시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절하고 정이 많았다. [사진 박헌정]

 
동유럽 여행을 앞두고 그 나라가 위험한지 안전한지 검색해보면 "치안은 괜찮다. 다만..."하며 여운을 남긴다. 대부분 역, 관광지 등의 소매치기나 구걸을 언급하는데 이곳 불가리아 소피아는 특이하게도 택시 바가지를 경고한다.
 
실제 피해사례도 많다. 10레브(1레브는 700원)에 흥정하고 탔는데 1인당 10레브를 요구하거나, 레브의 두 배인 유로였다며 돈을 더 뜯어낸다니, 거의 사기 수준이다. 여행자 사이에선 Taxime라는 앱을 사용하라거나 OK택시가 가장 안전하다는 정보를 공유한다.
 
그렇게 경계했건만 첫날 밤늦게 소피아역에 도착한 우리 역시 택시에 속았다. Taxime 앱으로 차를 부르며 ‘현재 위치’로 픽업장소를 지정하는데 우버처럼 익숙하지 않고 지도의 글씨가 너무 작아 조금 확대하려다가 픽업장소를 이동시켜 버렸다. 모르는 장소이고 키릴문자를 읽을 수도 없다. 다행히 누가 와서 도와준다며 내 전화로 취소해주었다.
 
그는 걱정하지 말고 따라오라더니 역 앞의 택시들 가운데 한 기사에게 내 목적지를 설명하며 요금을 5레브로 확인해주었다. 안심하고 탔는데 내릴 때 택시 기사는 1인당 5레브였다며 떼쓴다. 너무 전형적이라 기가 막혔지만 그냥 오케이! 하며 내주었다. 일전을 각오하던 그도 맥이 풀리는지, "큰 짐이 두 개나 되고..."하며 논점 벗어난 변명으로 자기모순을 드러냈다. 내가 그저 오케이, 오케이 하며 빨리 돈 줘서 보내려 하니 민망했는지 이번에는 "원래 10유로였어!"하며 마지막 자존심을 세워본 뒤 거칠게 떠났다.
 
소피아 택시는 기본요금이 600원도 되지 않는다. 다른 물가에 비해서 턱없이 낮으니 제대로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시내 곳곳에는 늘 많은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박헌정]

소피아 택시는 기본요금이 600원도 되지 않는다. 다른 물가에 비해서 턱없이 낮으니 제대로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시내 곳곳에는 늘 많은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박헌정]

 
"먹고 떨어져!"하는 태도로 사기를 구걸처럼 만들었지만 기분 좋을 리 없다. 금액보다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데 대한 불쾌감이다. 싸늘한 모멸감과 함께 5가 10이 되는 것, 그렇게 3000원에 바뀌는 게 이들의 삶이구나 생각하며 잊기로 했다. 궁금한 건 역에서 만난 남자다. 같은 무리일까 의심도 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곤경에 처한 외국인을 도왔다는 보람이 가득했다. 역무원이었던 것 같다.
 
며칠 후, 소피아 외곽 비토샤산에 가려고 택시 앱으로 차를 불렀다. 기사의 담배 연기를 나눠마셔 가며 목적지에 도착하니 요금이 11레브, 팁까지 넉넉하게 지불했다. 그런데 기분 좋게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가 문제였다.
 
서 있던 OK택시를 타고 비슷한 경로로 돌아왔는데 뒷자리에서 안 보이던 미터기에 55레브가 찍혔다. 말도 안 된다고 항의하자 요금표를 가리키며 뭐라고 하는데 그가 주장하는 단가(그것도 심야할증요금 같다)에 거리를 곱하니 33레브, 게다가 별도의 뭔가를 합해도 40이 안 된다. 지금까지 영어 한마디 못하던 사람이 그제야 “I was wrong”하며 40레브 달라고 한다. 타기 전에 택시를 촬영할까 생각도 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았고, 많은 사람이 그 회사는 괜찮다고 해서 믿었다. 불가리아에 대한 좋은 인상이 불쾌하게 바뀌려고 해서 속상했다.
 
 ‘장미의 나라’답게 장미향수, 장미비누, 장미잼 등에 사용되는 장미유를 많이 생산한다. 곳곳에서 예쁘게 가꾼 장미를 보면 장미의 나라라는 말이 이해된다. [사진 박헌정]

‘장미의 나라’답게 장미향수, 장미비누, 장미잼 등에 사용되는 장미유를 많이 생산한다. 곳곳에서 예쁘게 가꾼 장미를 보면 장미의 나라라는 말이 이해된다. [사진 박헌정]

 
이웃 루마니아에서는 일반택시와 우버가 공존하고 어느 걸 타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니 기사 개개인을 탓하기보다 택시정책을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생계를 위한 적정수입은 보장되어야 하고 적정수입은 적정요금에서 비롯된다. 적정요금은 그게 상급 교통수단인지, 일반 대중교통수단인지 사회적인 개념부터 정리되어야 한다.
 
택시요금이 비싼 동경이나 런던에서 택시는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때 이용하는 것이다. 방콕처럼 네 명이 전철 타는 것보다 택시가 더 싼 사회에서는 택시 서비스에 한계가 있다. 불가리아 택시의 기본요금은 600원이 채 안 되고 택시는 너무 많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비록 택시에 두 번이나 당했지만 내가 본 불가리아 사람들은 무척 정이 많고 친절하고 순박했다. 집주인, 상점 종업원, 거리에서 눈인사 나누는 시민들… 모두 잘 웃고 인정미와 여유가 느껴졌다. 뭔가 곤란해하는 걸 보면 가던 발길을 멈추었고, 가르쳐준 대로 잘 가는지 한참을 걱정스레 지켜보고, 말은 안 통해도 열심히 설명해준다. 그러니 동양인이 거의 없는 도시이지만 이방인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느껴져 불편한 느낌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잉글랜드와의 축구경기에서 일부 팬이 나치식 경례를 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혔다. 나라 전체가 당황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서 연일 뉴스와 특집방송에서 반복 보도했다. [사진 박헌정]

잉글랜드와의 축구경기에서 일부 팬이 나치식 경례를 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혔다. 나라 전체가 당황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서 연일 뉴스와 특집방송에서 반복 보도했다. [사진 박헌정]

 
그런데 마침 큰 사건이 터졌다. 불가리아와 잉글랜드의 유로 2020 예선전에서 불가리아 일부 응원단이 영국 흑인선수에게 원숭이에 빗댄 인종차별적 조롱과 나치식 경례를 해서 경기가 중단되고,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다.
 
그날 경기장에 가려다가 너무 늦은 밤(9시 45분)에 시작한다고 해서 TV로 보면서도 경기중단 이유를 모르다가 이튿날 인터넷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곳곳에서 당황스러움과 개탄이 넘치고 결국 불가리아 총리의 불호령에 축구협회장이 경질되었다.
 
한 요구르트 광고 때문에 불가리아가 장수국가처럼 느껴지지만 불가리아의 평균 수명이 특별히 높지는 않다. 그러나 요구르트는 불가리아인이 자랑스러워하는 중요한 음식이고, 마트마다 수많은 종류가 있다. [사진 박헌정]

한 요구르트 광고 때문에 불가리아가 장수국가처럼 느껴지지만 불가리아의 평균 수명이 특별히 높지는 않다. 그러나 요구르트는 불가리아인이 자랑스러워하는 중요한 음식이고, 마트마다 수많은 종류가 있다. [사진 박헌정]

 
이미지는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불가리아 이미지는 모 요구르트 이름과 결부되어 ‘장수국가’인데 통계를 보면 불가리아인 평균수명은 낮은 편이고 국가 순위로는 뒤쪽에 더 가깝다. 특정 지역 장수마을과 상업광고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한 나라의 이미지는 큰 사건에 영향 받기도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될 수도 있다. 이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유지되면 좋겠다. [사진 박헌정]

한 나라의 이미지는 큰 사건에 영향 받기도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될 수도 있다. 이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유지되면 좋겠다. [사진 박헌정]

 
이처럼 나라 이미지가 어떤 한순간, 어떤 한 사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보면 참 아슬아슬한 일이다. 그렇게 다반사로 외국인을 속이는 택시 기사들, 불가리아 국가 이미지 차원에서 보면 정말 위태로운 주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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