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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에 숨어 있는 비밀 코드들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차장
 

[명상칼럼] 심청전에 숨어 있는 비밀코드들

 
 

#풍경 하나

 
심청전과 양자물리학에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왜냐고요? 둘 다 이치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청전』을 읽다 보면 참 놀랍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길이 오롯이 녹아 있으니까요. 그래서 심청전의 주인공을 ‘심청(沈淸)’이 아니라 마음 심(心)ㆍ맑을 청(淸) 해서 ‘심청(心淸)’이라 불러봅니다. 일종의 구도기이니까요.  
 
 
심청의 아버지는 심봉사입니다. 처음부터 장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황주땅 도화동의 이름난 유학자였습니다. 본명은 ‘심학규’.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병에 걸려 장님이 됐습니다. 그의 부인 곽씨는 딸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딸의 이름이 심청입니다.  
 
여기에도 구도의 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심청은 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무엇을 뜻할까요. ‘내가 온 근원’을 상실한 겁니다. 불교에서는 그걸 ‘공(空)’이라 부릅니다. 심청전에서는 심청(色)이 그만 어머니(空)를 상실하며, 근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심청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세상의 반밖에 보질 못합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세상만 봅니다. 그 너머는 보질 못합니다.  
 
현대의 양자물리학에서도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를 놓고 ‘입자인가, 파동인가’라는 궁극적 물음을 던집니다. 만약 세계가 입자라면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입자가 됩니다. 그래서 5년 전의 상처, 10년 전의 아픔은 손에 잡히는 돌멩이가 되고, 더 커지면 바윗덩어리가 됩니다. 우리는 그걸 가슴에 박은 채 살아가게 됩니다. 입자는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반면 생각도, 감정도, 눈앞의 사물도 파동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나타났다가, 작용하고, 다시 사라질 뿐입니다. 바람이 생겼다가, 불었다가, 다시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그때는 가슴에 박아둔 채 두고두고 아파할 덩어리도 없습니다. 입자라면 덩어리가 있지만, 파동이라면 비어있을 뿐이니까요. 우리가 삶에서 맛보는 이런저런 아픔과 고통의 정체는 과연 뭘까요. 입자일까요, 아니면 파동일까요. 
 
불가(佛家)에서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색(色)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그 색의 정체가 입자가 아니라고 봅니다. 돌멩이나 바윗덩어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끊임없이 생멸을 거듭하는 파동이자, 그 본질은 비어있다고 봅니다. 그럼 심청전에서는 그걸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있을까요.  
 
 
 
 

#풍경 둘

 
지팡이를 짚고 가던 심봉사는 실족해서 물에 빠집니다. 지나가던 화주승이 구해주죠. 그리고 “명월산 운심동 개법당(사찰명은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음) 부처님께 공양미 300석을 바치면 눈을 뜬다”고 일러줍니다. 심봉사는 덜컥 “그러겠다”고 약조를 합니다. 법당 이름을 눈 여겨 보세요. ‘개법당(開法堂)’. 개법, 법이 열린다, 언제 법이 열릴까요? 맞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반쪽을 찾을 때 비로소 법이 열립니다.  
 
공양미 300석 이야기를 들은 심청은 깜짝 놀랍니다. 가난한 처지에 공양미 300석은 ‘심청의 목숨’을 뜻하니까요. 뱃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팔고서야 구할 수 있는 돈이니까요. 심청은 고민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결심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기로 합니다. 아버지가 눈을 떠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깨달음의 눈을 뜨게끔 말입니다.  
 
혹자는 이런 심청을 비난합니다. “부친 시봉이 힘들어서 죽음을 택한 것 아니야?” “심청은 현실도피주의자”라고 몰아세우죠.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그걸 ‘심청의 출가(出家)’로 보기 때문입니다. 색(色)이 스스로 색(色)을 허무는 선택을 한 거니까요. ‘입자’라고 생각했던 나의 아픔이 실은 ‘파동’임을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풍경 셋

 
바다에선 풍랑이 ‘우르르!’ 몰아칩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뱃전을 ‘탕!탕!’ 칩니다. 큰 배가 휘청휘청합니다. 왜 그럴까요? 심청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심청이 틀어쥐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집착과 소망, 그리고 불안이 요동치기 시작한 겁니다. 심청은 배 위에 엎드려서 “나 죽기는 서럽지 않으나 홀로 계신 아버지는 뉘에게 의지한단 말이오?”라며 통곡을 합니다. 그리고 결심하지요. 자신을 던지기로 말입니다.  
 
치마를 둘러쓰고 뱃전으로 달려가 인당수로 ‘훌~쩍’ 뛰어내리죠. 판소리에서는 이 모습을 ‘기러기 낙수격~’이라고 묘사합니다. 저는 그걸 심청의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자나 되는 장대 위에서 한걸음 내딛는 일)라고 봅니다. 심청의 몸도, 마음도 그렇게 바다에 떨어집니다. ‘푸웅~덩!’
 
그 순간, 요동치던 바다가 ‘촤~악’하고 가라앉습니다. 바다가 왜 갑자기 가라앉았을까요? 색(色)이 색(色)을 허물었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상(相)이 상(相)이 아닐 때 여래(如來)를 보리라”고 했습니다. 현대 양자물리학의 최첨단 용어로 풀면 이쯤 되지 않을까요. “입자가 입자가 아닐 때 마음의 평화를 보리라.” 심청이 인당수에 ‘풍덩!’ 빠지는 순간, 거대한 고요가 드러납니다. 왜냐고요? 바람도, 파도도, 심청의 집착과 불안도 원래 ‘입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당수에 몸이 떨어지는 순간, 심청이 그걸 깨닫는 겁니다. 그래서 울부짖던 파도가 거짓말처럼 잠이 듭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바닷속으로 들어간 심청은 용궁을 찾아갑니다. 그렇다고 심청이 용궁에서 영원히 살진 않습니다. 다시 이 세상으로 나옵니다. 이번에는 연꽃을 타고 물 위로 올라옵니다. 왜 연꽃을 탔느냐고요? 색(色)이 공(空)을 찾았으니 더 이상 물에 젖지 않는 겁니다. 입자와 파동이 실은 하나임을 깨달은 겁니다. 여차저차해서 왕을 만난 심청은 왕후가 됩니다.  
 

#풍경 넷

 
그사이에 꼬박 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심청은 아버지 심봉사를 찾고자 애를 씁니다. 그래서 전국의 맹인들을 초청해 맹인잔치를 엽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심봉사는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다 잔치 마지막날 심봉사가 잔치에 나타납니다. 아버지를 본 심청은 버선발로 달려나갑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이 살아왔다는 말을 듣고 심봉사는 눈을 ‘번쩍!’ 뜹니다.  
 
'심청전'을 마당놀이로 무대에 올린 극단 미추의 공연에서 전국의 봉사들이 맹인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다. [사진 극단미추]

'심청전'을 마당놀이로 무대에 올린 극단 미추의 공연에서 전국의 봉사들이 맹인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다. [사진 극단미추]

 
여기서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습니다. 심봉사가 눈을 뜰 때, 맹인 잔치에 왔던 다른 봉사들도 모두 눈을 뜹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도 깨달음의 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내가 눈 뜰 때, 세상이 눈을 뜨죠. 내 안에 있는 ‘공(空)’을 찾을 때, 이 세상에 깃든 ‘공(空)’도 함께 드러납니다. 우리도 ‘나만의 인당수’를 향해 한걸음씩 내딛다 보면 눈을 뜨게 되겠지요. 그러니 『심청전』이 얼마나 값진가요. 눈 뜨는 법, 그 핵심 중의 핵심을 일러주니까요.
 
그런데 맹인 잔치에서 눈을 못 뜬 봉사가 딱 한 명 있었습니다. 심봉사를 버리고 뺑덕이네와 도망을 쳤던 황봉사입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키며 “이런 천하 몹쓸 놈을, 살려두어 쓸데 없소. 당장 목숨을 끊어주오”라며 참회합니다. 그러자 황후가 된 심청은 “네 죄를 아는고로 살리로나. 어서 눈을 떠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황봉사도 번쩍 눈을 뜨게 됩니다. 죄(色)가 공(空)이 될 때 우리도 눈을 뜹니다.
 
 
심청전은 한 마디로 ‘구도기’입니다. 심청은 구도자입니다. 종교의 수행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입으로 전해오던 구전 설화를 판소리로 기록한 게 심청가입니다. 이걸 판소리 가락으로 만들었다는 게 참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심청가를 들을 때마다 뿌듯해집니다. 우리 민족이 도(道)와 이치와 깨달음을 그만큼 사랑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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