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순탄한 일상
![2017년 12월 완공했지만 주민 반대로 가동하지 못한 나주 고형폐기물(SRF) 열병합발전소 전경. [한국지역난방공사]](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03/8e3107bf-0268-4f29-a147-914ce046ee56.jpg)
2017년 12월 완공했지만 주민 반대로 가동하지 못한 나주 고형폐기물(SRF) 열병합발전소 전경. [한국지역난방공사]
지난 1월 발령받은 신재생사업부는 사내 ‘별동대’로 통한다. 전통 화석 연료가 아닌 태양광·지열·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다루는 부서라서다. 총 발전설비 용량 500㎿(메가와트) 이상 가진 발전사업자는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의무 발전해야 한다. 12월 완공 예정인 나주 SRF 발전소도 그중 하나였다. SRF 발전소는 가연성 생활 폐기물, 즉 태울 수 있는 쓰레기를 고체 연료로 만들어 에너지를 만드는 곳이다. ‘의무 방어’만 하면 되는 날이 이어졌다.
6월. 뜻밖의 제안
“올해 말이면 SRF 발전소를 준공하지 않습니까. 준공하기 전 민원 예방 차원에서 주민 설명회를 가졌으면 좋겠는데요.”
일리 있는 얘기였다. 지금껏 별다른 민원 없이 조용했지만, 발전소를 실제 가동하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거부감이 심한 ‘소각장’ 대신 저감 시설을 구축한 친환경 발전소를 지어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취지를 설명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난방공사가 직접 짓는 SRF 발전소는 처음이라 선례로 잘 만들면 ‘성과’도 될 것 같았다. 나주시 협조를 받아 발전소 인근 5㎞ 내 읍·면·동을 대상으로 순회 설명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설명회를 열면 열수록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공감하는 주민보다 목소리가 큰 건 머리띠를 둘러매고 ‘결사반대’를 외치는 쪽이었다.
9월. 설상가상
![나주시청 앞에서 SRF 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한국지역난방공사]](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03/8a4b8549-70b1-46e8-9f62-10c4f6f8962b.jpg)
나주시청 앞에서 SRF 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은연중 각종 지원책을 요구한 기존 지역 주민들과 결이 달랐다. 일체 보상을 거부하고 오직 발전소 폐쇄만 주장하니 답답했다. 같은 공기업 직원끼리 너무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리 최신 설비로 만들어 환경 위험이 없고, 발전소를 짓지 않으면 대체시설로 소각장을 신설해야 한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시나브로 시간은 흘러 발전소는 12월 완공됐다.
2018년 8월. 지루한 ‘팩트체크’의 시간
집집이 방문해 “대기환경 보전법상 배출 허용기준 대비 강화한 기준을 적용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악취 배출 저감 시설을 설치해 악취가 나지 않는다” “(경제성은 없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공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짓는 발전소”라고 설명했다.
2018년 12월. 스킨십, 또 스킨십
![현장 근무가 많아 모처럼 만에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오세진 한국지역난방공사 신재생사업부장. [난방공사]](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03/5f1baa86-81d3-46c7-9a81-f74e0f6cd869.jpg)
현장 근무가 많아 모처럼 만에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오세진 한국지역난방공사 신재생사업부장. [난방공사]
터무니없는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상을 직접, 개인에게 할 순 없었다. 대중목욕탕을 짓거나 청소ㆍ경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식의 ‘마을 숙원사업’을 해결해주겠다는 쪽으로 풀어갔다. 1억원을 들여 만든 100쪽짜리 팩트체크 자료보다 마을 이장님, 청년회 대표와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게 실감 났다. 어찌 됐든 주민이 거부감을 느끼는 시설을 주변에 들여놓으려면 교감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날이 늘어갔다.
2019년 1월. 줄 건 주되, 지킬 건 지킨다
범대위는 환경영향 평가는 반대하면서 주민 수용성 조사는 밀어붙였다. 공사로선 이미 법적 절차를 거쳐 2865억원을 들여 건설한 발전소 가동 여부를 두고 주민 찬반 투표를 요구하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결단의 시간이 찾아왔다. 주민 수용성 조사를 받아들이기 위한 선결 조건을 내걸었다. 만약 주민이 반대해 발전소를 폐쇄할 경우 발생할 수천억원대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0번 넘게 회의가 이어졌다.
9월. 미완의 합의
돌아오는 길, 불 꺼진 채 열기를 내뿜을 날만 기다리는 발전소가 을씨년스러웠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