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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1000달러 준다"에 뜬 美 정치 '아싸'···공약 현실성 있나

 

[윤석만의 인간혁명]앤드류가 쏘아올린 기본소득

빌 게이츠와 일론 머스크. [중앙포토]

빌 게이츠와 일론 머스크. [중앙포토]

 

"최저임금 인상이 자동화 부추겨, 일자리 악영향"
美 정치 '아싸'의 돌풍 앤드류 양 기본소득 공약

지난 주 ‘인간혁명’에서는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주자인 앤드류 양(44)의 돌풍을 소개했습니다. '보편적 기본소득(UBI)'이 시민들의 큰 지지를 얻으면서 유력한 대권 후보인 조 바이든과 엘리자베스 워런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죠. 양은 18세 이상 모든 미국인에게 월 1000달러씩 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나중에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로 주는 게 목표고요.
 
 그는 재원 마련 방안으로 아마존과 페이스북, 구글 같은 IT 기업들에게 디지털 세금을 걷겠다고 했습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사라진 사람의 일자리만큼 돈을 내도록 한 것이죠. 아울러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대가로 ‘테크 체크(tech check)’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우리가 제공한 개인정보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도록 하자는 거죠. 대기업들이 쿠폰 몇 개 쥐어주고 개인정보를 가져다 큰돈을 버는 잘못된 프레임을 깨자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양의 주장은 과연 현실성이 있는 걸까요?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요? 오늘 ‘인간혁명’에서는 멀리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부터 최근 논의되는 로봇세의 도입까지 기본소득의 내용과 실현 방법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가장 미국적인 제도 ‘시민 배당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Photo/Andrew Harnik]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Photo/Andrew Harnik]

 양은 지난 달 TV토론회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시대 최대의 난제 중 하나는 트럼프가 어떻게 대통령이 됐는가 하는 것”이라고요. 그러면서 “(트럼프 당선의 원인은) 러스트 벨트 같은 지역에서 400만개의 일자리가 기술과 자동화로 사라진 게 주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이변이 아니라 기술혁명에 따른 사회변화의 흐름을 다른 정치인들이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양은 “미국 건국 당시부터 토마스 페인은 ‘시민 배당금’이란 제도를 주장할 만큼 UBI는 가장 미국적인 제도”라며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실제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1516년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도둑질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면 어떤 처벌도 이를 막을 순 없다”며 “끔찍한 처벌 대신 모두에게 일정 수준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해법”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방직산업이 급성장해 지주들이 소작농을 쫓아내고 양을 키우면서 큰돈을 벌었지만 서민들은 기아에 허덕였습니다. 모어는 이를 “양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말로 풍자했죠.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모어는 기본소득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앞서 앤드류 양이 언급한 미국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페인도 『토지정의』에서 토지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누려야할 공유자산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므로 토지에서 나온 지대소득 중 일부를 기금으로 마련해 성년에게 공평하게 배분하는 ‘시민 배당금’을 주장했죠.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도 『진보와 빈곤』에서 “공공재산인 토지에서 나온 소득은 모두가 공유해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역시 생전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했죠.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스위스 헌법에 기본소득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운동가들이 국민투표에 필요한 12만5000명의 서명을 확보하고 이를 기념해 2013년 10월 4일 베른에서 기본소득을 동전을 쏟아붓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6년 6월 5일 국민투표에서 76.9% 유권자들이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했다. [사진 스테판 보러]

스위스 헌법에 기본소득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운동가들이 국민투표에 필요한 12만5000명의 서명을 확보하고 이를 기념해 2013년 10월 4일 베른에서 기본소득을 동전을 쏟아붓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6년 6월 5일 국민투표에서 76.9% 유권자들이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했다. [사진 스테판 보러]

 현실에서도 기본소득은 이미 몇몇 나라에서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2016년 스위스는 정부가 매달 30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국민 다수(76.9%)의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액수를 줄이는 등의 방향으로 재논의 되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일부 지역에서 월 7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시범 실시하기 시작했고요.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구단체인 ‘어젠다 2050’은 ‘한국형 기본소득제 도입 방안’을 주제로 2017년부터 여러 차례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며 현실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별도의 부가세를 부과하는 방안, AI와 같은 로봇의 기계세를 신설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모임 대표인 김세연 의원은 “기본소득은 기술발전이 가져올 미래 사회 꼭 필요한 제도”라며 “기존에 있던 각종 복지비용을 모두 기본소득으로 일원화하기 때문에 행정비용이 크게 줄어 예산 절감 효과도 있다”고 말합니다.
 

IT 기업 오너들도 로봇세 도입 찬성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중앙포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중앙포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IT 기업의 오너들도 기본소득의 취지에 공감합니다. 특히 로봇세를 거두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모든 노동자엔 세금이 부과된다, 이들처럼 로봇에게도 세금을 매겨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소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뜻 보면 로봇세 도입 시 세금을 가장 많이 내야할 것 같은 기업인들이 긍정적 입장을 보이는 게 이상합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도 기본소득은 꼭 손해만은 아닙니다. 실직한 노동자의 임금만큼 로봇세를 내면 비용이 크게 증가하지 않죠. 또 영화 ‘공각기동대’의 미래 사회처럼 좋은 상품이 아무리 많아도 이를 구매할 소비자가 없다면 기업 활동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적절한 크기의 시장이 유지되고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은 필요합니다.  
 

유럽의회 "로봇은 전자인간" 

인간 노동자가 필요없는 아마존고 매장. [로이터=연합뉴스]

인간 노동자가 필요없는 아마존고 매장.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유럽의회에선 2016년 ‘로봇세’ 도입을 논의했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무산되긴 했지만 이듬해 2월 로봇에게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전자인간’이라며 법적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로봇에게 인격권을 주고 언젠가 세금을 매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둔 거죠. 과세하기 위해선 먼저 일반 사람과 같은 ‘시민격’, 기업과 같은 ‘법인격’ 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의회의 마디 델보 법제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은 “로봇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민격을 부여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기계들이 많이 생겨나는 현실을 기존 법률 체계가 따라갈 수 없어 모든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을 획득하며 큰 화제가 됐죠.  
 
 로봇세가 도입될지, 기본소득 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될지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점 한 가지는 미래의 인간은 분명히 ‘노동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때의 인간은 생존을 위한 새로운 방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 앞으로 인간은 AI와는 차별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게 될 거라는 점이죠.
 

정치 아싸 앤드류 양의 돌풍은 계속 될까?

보편적 기본소득 공약을 제안하는 앤드류 양. [로이터=연합뉴스]

보편적 기본소득 공약을 제안하는 앤드류 양. [로이터=연합뉴스]

 이와 같인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앤드류 양 이전에도 심도 있게 진행돼 왔습니다. 하지만 제도권 정치에서 기본소득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원래 양은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한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유명인과 협업해 기부금을 모으는 ‘스타기빙닷컴(stargiving.com)’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건강관리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사업가로서 경력을 쌓았죠. 최근에는 ‘벤처 포 아메리카(Venture for America, VFA)'라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청년들에게 창업 기회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당시 양은 VFA로 2025년까지 1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죠.
 
 정치 ‘아싸’였던 그를 ‘수퍼루키’로 만든 것은 UBI 공약입니다. 구체적인 데이터와 연구 보고서를 토대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했습니다. 지난 방송토론 후 10가구를 추첨해 월 1000달러씩 UBI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하자 무려 45만 가구가 신청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소셜 미디어 ‘레딧’의 공동 창업자인 IT거부 알렉시스 오하니언은 “너무 좋은 아이디어다, 양이 할 수 없다면 내가 (UBI 지급을) 하겠다”고 트윗을 날렸습니다.
 
 일론 머스크도 “나는 양을 지지한다, 그는 자신이 고스(goth)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는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고스’는 세상의 종말 등 어두운 소재를 다루는 록 음악의 한 형태로 최근에는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청년들을 일컫습니다. 이외에도 트위터의 CEO인 잭 도시, 영화배우 니컬러스 케이지 등이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죠.  
 

트럼프를 당선시킨 '노동의 종말'

도로 자율주행을 위한 로봇 플랫폼을 목표로 개발 중인 네이버 ALT 프로젝트 [네이버]

도로 자율주행을 위한 로봇 플랫폼을 목표로 개발 중인 네이버 ALT 프로젝트 [네이버]

 내년 미국 대선까지는 아직 1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트럼프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리고 각종 성추문으로 구설수에 올라도 여전히 굳건해 보입니다.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서 생계와 일자리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의 고충을 그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호 ‘인간혁명’에서 살펴본 것처럼 트럼프의 제조업 살리기 정책은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앤드류 양의 돌풍이 계속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의 감소,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가 계속될수록 트럼프의 대항마로 그를 필요로 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트럼프가 어떻게 대통령이 됐는가 하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앤드류 양뿐일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기술혁명으로 인한 ‘노동의 종말’이 어쩌면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욱 빨리 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첨단 IT 국가라는 수식어는 큰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제일 먼저 기계가 일자리를 뺏어갈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각종 취업지원 정책으로 관련 예산을 쏟아 붓고 있음에도 노인들의 단기 일자리만 늘어난 것은 불확실한 경기의 여파도 있지만, 기술혁명의 탓도 큽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자동화 부추겨, 일자리 악영향" 

 특히 지난 2년간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가뜩이나 사라져 가는 인간 일자리의 종말을 앞당겼습니다. 임금 인상 대신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자동화로 바꿔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죠. 최근 식당과 편의점에서 시급을 올리지 않고 무인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가뜩이나 ‘무인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 없는 미래’를 부추긴 겁니다.
 
 앤드류 양 또한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입니다. 인상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민주당 후보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죠. 그는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는 좋지만 중소 상공인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자동화를 부추긴다”고 지적합니다. 대신 기본소득은 구매력을 높여 소규모 사업장을 유지시키고, 일자리를 잃어도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죠.
 
 세상은 이렇게 빨리 변해 가는데 한국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다수 국민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적폐와 친일, 빨갱이 같은 이념 논쟁으로 패거리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앤드류 양과 같은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가 실제 대통령이 되는 길은 멀고 험난해 보입니다. 그러나 기술혁명과 인간의 일자리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시대정신을 깊이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월간중앙 11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만 기자는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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