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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루저 게임’…정상끼리 풀 골든타임 얼마 안 남아

최익재의 글로벌 이슈 되짚기

1일 일본 도쿄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일·일한의원연맹 합동총회에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연합뉴스]

1일 일본 도쿄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일·일한의원연맹 합동총회에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연합뉴스]

지난달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 참석차 이낙연 국무총리가 방일한 이후에도 한·일 관계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 등은 “이 총리를 통해 조기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받았지만 일본 정부는 11월엔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방침을 굳혔다”고 전했다.
 

아베, 문 대통령 친서 받고도 강경
민족주의, 외교 전략 겹겹이 충돌
높아진 한국 위상 견제 심리 작용

국내 정치 활용 자제, 확산 막아야
갈등 오래 갈수록 기회비용 눈덩이

당초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등 외교 무대에서 양국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기대됐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얘기다.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회담을 마지막으로 1년 넘게 열리지 않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오는 23일 종료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양국 정상에 남겨진 ‘골든타임’은 결코 많지 않다. 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일본의 수출 규제, 지소미아 종료 등 당면 현안들에 대한 양국의 간극은 여전히 큰 상태다.
 
한·일 갈등의 주된 요인은 무엇인가.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외교 전략에서의 마찰이다. 둘째는 양국 국민에게 내재된, 특히 최근의 관계 악화를 통해 부각된 민족주의 정서가 상대에 대한 이해보다는 배타적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국의 위상 변화와 관계 재정립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이다. 이 같은 갈등 요인이 양국을 과거사 문제에서도 양보 없는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아베 정부가 현재 표방하고 있는 외교 전략의 핵심은 국제 질서를 앞세워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1965년 한·일 협정 준수를 요구하면서 한국을 비난하는 것도 이에 근거한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나라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국제 규범을 잘 따르고 있는데 비해 한국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 같은 아베 정부의 외교 기조는 아베 개인이 갖고 있는 수정주의적 역사관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대내적으로는 일본 내 중도보수층의 지지 확보를 통한 정치적 입지 강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베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전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다. 우선 북한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시각차다. 일본 정부는 ‘재팬 패싱’을 우려하면서 지속적인 대북 압박이 유효한 정책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대북 유화정책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하는 게 합리적 해결 방안이란 입장이다.
 
또한 아베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협력을 통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구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최우선시하면서 새로운 북방·남방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미·일이 원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에 한국은 중국을 의식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 같은 한·일 간 이견과 비협조는 역내에서 각자의 입지 강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양국은 민족주의적 측면에서도 충돌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재도약을 위해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는 구호를 앞세우고 있는데, 이는 한·일 갈등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전성기 때의 번영을 되찾겠다는 아베의 ‘회귀적 민족주의’가 한국인들에게 내재된 ‘저항적 민족주의’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최전성기가 한민족이 자존을 위해 가장 극렬하게 저항을 했던 시기였던 만큼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귀결되는 아베 정부의 ‘보통국가론’은 자연스레 한국인에겐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게 한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두 나라의 위상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과거와는 달라진 양국 입지에 따른 자연스런 관계 재정립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으로 보는 시각이다. 사실 1965년 한·일 협정은 냉전 시대의 산물로도 볼 수 있다. 합리적인 전후 처리보다는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한 일본 활용에 방점을 뒀다는 점에서다. 국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한국 입장에서도 거부하기 힘든 카드였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공산 진영 붕괴에 따른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와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은 한·일 양국에 또 다른 과제를 던졌다. 동등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일본 정부 입장에선 한국의 성장이 달가울 리만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높아진 한국 위상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65년 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관계 정립 필요성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한·일 갈등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을 한·일 정상회담으로 꼽고 있다. 특히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해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현금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이럴 경우 한·일 관계는 지난 7년간의 갈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한·일 갈등의 국내 정치 활용을 자제하고 비정치 분야로의 갈등 확산을 차단하는 조치도 요구된다. 한·일 갈등이 지속될 경우 양국이 치러야 할 기회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결국 승자 없는 패자만 낳게 되리란 것은 불문가지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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