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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네 옥상텃밭엔…

안충기의 삽질일기

가을걷이가 대충 끝난 부부의 옥상엔 꽃들도 끝물이다. 한번 뽑아먹고 다시 심은 쪽파는 다시 쑥쑥 자라고 있다. 부추·라벤더·루콜라·어성초·고수... 내년 봄이면 다시 화분 여기저기서 싹이 틀 테다.

가을걷이가 대충 끝난 부부의 옥상엔 꽃들도 끝물이다. 한번 뽑아먹고 다시 심은 쪽파는 다시 쑥쑥 자라고 있다. 부추·라벤더·루콜라·어성초·고수... 내년 봄이면 다시 화분 여기저기서 싹이 틀 테다.

전국 여기저기 흙이 모인 텃밭이 있다. 해남·고흥·횡성·대진에서 왔다. 텃밭은 8가구가 사는 4층 주택 옥상에 있다. 남자는 차 뒤에 삽을 싣고 다니며 흙을 퍼 나른다. 여자는 그 흙으로 꽃과 채소를 키워낸다. 남자와 여자는 4층에 산다. 계단을 몇 개 올라가면 옥상 텃밭이다. 텃밭 옆에는 물탱크를 치우고 만든 옥탑방이 있다. 서가에는 책들이 꽂혀있고 한쪽에는 각종 캠핑 장비가 쌓여있다. 남자와 여자가 그냥 좋아서 가꾸는 옥상에 주택 사람들은 수시로 오르내리며 논다.
 
-숨을 못 쉴 정도로 울었다.
-너무 울어서 옆에 모르는 여자분이 휴지 챙겨주시고 그분이랑 대성통곡을 하고 나왔네요.
-남자인데 여친보다 더 울었어요.
 
미녀와 야수. 화분에서 꽃을 꺾어 하나씩 쥐여주었다. 부끄러우니 모영씨 사진만 나왔으면 좋겠어요,라고 혜경씨가 청탁성 압력 카톡을 보내왔다. 그럴수는 없지. 조금의 긴장과 수줍음과 즐거움이 섞인 표정이다.

미녀와 야수. 화분에서 꽃을 꺾어 하나씩 쥐여주었다. 부끄러우니 모영씨 사진만 나왔으면 좋겠어요,라고 혜경씨가 청탁성 압력 카톡을 보내왔다. 그럴수는 없지. 조금의 긴장과 수줍음과 즐거움이 섞인 표정이다.

480만 명이 본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감상평은 대개 이렇다. 인생영화라는 평도 많다. 76년을 함께 한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 얘기다. 다큐멘터리 사상 최다관객 기록을 세웠다. 나처럼 낯짝 두껍고 뻔뻔한 아저씨도 울었다. 나이 들면 여성호르몬 분비가 많아지고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지만 콧물까지 흘리며 울었다. 데면데면하며 멀찌감치 떨어져서 들어간 부부가 손을 꼭 잡고 나오고, 괜히 핸드폰 바탕화면에 배우자 사진을 박아 넣고, 청춘들은 눈을 서로 들여다보며 손가락 도장을 찍었다.
  
전국의 흙을 옥상으로 퍼 나른 연장.

전국의 흙을 옥상으로 퍼 나른 연장.

모영, 이 다큐를 찍은 감독이자 옥상에서 삽질하는 남자다. 김혜경, 이 다큐를 만든 ‘영화사님아’의 대표이자 옥상에서 채소를 키우는 여자다. 진모영과 김혜경은 부부다. 호스피스로 일하던 아내가 영화사에 합류한 뒤 둘은 자석처럼 붙어 다닌다. 둘 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도시 학교에 다녀 흙을 만져본 적은 없다.
 
2008년 지금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옥상은 휑했다. 어린이날,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화분 두 개를 샀다. 요거는 아들 거, 요거는 딸 거, 이름을 붙여 옥상에 놓고 물을 주며 돌봤다. 화분이 매년 몇 개씩 늘어났다. 동네 사람들이 버리려고 내놓은 화분들을 낑낑대며 끌고 왔다. 채소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네 신문에 난 마포도시농부학교 기사를 보고 등록했다. 구청에서 소개하는 텃밭 두 이랑을 얻어 실전경험을 쌓았다. 밭에 오가는 일이 번거로웠다.  
 
옥상 텃밭 황금기. 뒤에 보이는 화분들은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버린 것을 가져 왔다. 티끌 모아 꽃밭이랄까. 평상 위 화분은 꽃사과다.

옥상 텃밭 황금기. 뒤에 보이는 화분들은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버린 것을 가져 왔다. 티끌 모아 꽃밭이랄까. 평상 위 화분은 꽃사과다.

아무 때나 들여다볼 수 있는 옥상에 눈이 갔다. 고향 흙을 담아오고, ‘님아’를 찍은 횡성 흙을 퍼오고, ‘올드 마린보이’를 찍은 대진 항구 흙도 가져왔다. 흙은 제가 살던 동네의 씨앗들을 품고 왔다. 봄이면 화분마다 다른 풀들이 고개를 내민다. 옥상 한쪽에서는 시골방앗간에서 가져온 깻묵을 삭힌다. 화분에 쓸 거름이다.
 
담벼락엔 옥수수가 흔들리고 오이 덩굴은 옥탑방도서실 벽을 타고 오른다.

담벼락엔 옥수수가 흔들리고 오이 덩굴은 옥탑방도서실 벽을 타고 오른다.

아내는 가는 곳마다 꽃씨를 받는다. 얼마 전엔 경주에 가서 노랑 채송화씨를 얻었다. 해외영화제에 나가서는 그곳의 꽃씨를 담아온다. 동네 마실 다니며 빈 땅을 봐뒀다가 밤에 나가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 올해는 할머니를 뵈러 횡성에 다녀오며 농협 앞 5일 장터에서 옥수수 모종을 구했다. 가장자리 담벼락에 심으니 바람에 잎들이 부딪치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좋다.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며 열리는 오이도 꽤 따먹었다. 오늘은 얼마나 컸을까, 더위는 먹지 않았나, 목이 마르지는 않을까…. 손전등을 들고 밤중에도 올라가 본다. 출장을 갈 때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아이들이나 이웃들이 돌봐주지만 자꾸 눈에 밟힌다.
 
화분에서 꺾은 꽃으로 단장한 텃밭 오이.

화분에서 꺾은 꽃으로 단장한 텃밭 오이.

아래층에 불이 날 뻔한 일이 있었다. 공동주택이라 남의 일이 아니었다. 집을 오가며 모임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텃밭이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옥상 가운데 널찍한 평상을 만들었다. 동네 초등학교 수영장 공사를 할 때 나온 나무로 짰다. 평상은 사랑방이 됐다.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웃들은 틈만 나면 평상에 앉아 논다. 함께 고기를 굽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떤다. 여름이면 수박을 쪼개고, 호박이며 파 송송 썰어 전을 부쳐 번개를 친다. 아래층에 사는 셰프는 밭에서 나온 재료로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낸다. 말복을 앞두고는 닭백숙을 하고 닭죽을 끓여 둘러앉았다. 날이 싸늘해지면 참나무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운다. 십여 년을 어울리며 컸으니 아이들은 형제처럼 지낸다. 옥상에 텐트를 치고 함께 잔다. 엄마·아빠가 출근한 아랫집에 내려가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애들 손님이 오는데 시끄러우면 어쩌지요, 신경 쓰지 말고 맘껏 놀라고 해요. 편하게 지내니 층간소음 문제로 다툴 일이 없다.
 
어느 여름밤 이웃들이 옥상에 둘러앉았다. (부부 사진만 빼고 모두 혜경씨가 찍었다. 사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색감이 뛰어나다.)

어느 여름밤 이웃들이 옥상에 둘러앉았다. (부부 사진만 빼고 모두 혜경씨가 찍었다. 사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색감이 뛰어나다.)

공동공간인 옥상을 양보해준 이웃들이 고맙다. 부부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집집이 현관 손잡이에 채소 봉지를 걸어둔다. 내려보낸 부추가 전이 돼서 돌아오고, 복숭아 봉지가 올라오고, 김치를 담가오기도 한다.
  
상 텃밭은 도심의 녹색 점이다. 점들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도시가 녹색 모자를 쓰면 그 안에 사는 이들 마음도 녹색으로 물들지 않을까. 파프리카와 피망은 어떻게 달라? 작두콩이 얼마나 큰 줄 아십니꺼? 파전 부칠 때 콩기름이 좋아, 카놀라유가 좋아? 형님네 큰애는 여친이 그렇게 착하다면서유? 동생이 3년 전에 담근 매실주는 언제 개봉하는겨? 동네 평상에 모여 앉아 소곤소곤 얘기하다 보면, 결론도 안 나는 정치 얘기가 발 불일 틈이 없겠지. 넘치는 채소는 동네 수퍼에 가져가서 콩나물로 바꾸고, 가게 한쪽에선 삽과 호미를 팔면 되겠구나. 동네마다 텃밭을 만들어 노인들 놀이터를 만들면, 유튜브 가짜뉴스에 넘어갈 일 없을 테고 병원 출입도 줄어들 테다. 옥상에 텃밭 만드는 집은 시에서 수도세 팍팍 깎아주고. 동네 자투리땅을 보면, 잡동사니 뒹구는 건물 옥상을 보면 텃밭 생각이 먼저 난다.
 
이미 그렇게 사는 진모영·김혜경 부부에게 삼삼칠 박수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그림·사진·글=안충기 아트전문기자 newnew9@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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