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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 덕에 돈 안 되는 일 즐겁게, 봉사하는 게 건강 비결”

김진국 기자 사진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봉두완 전 한미클럽 회장 

그는 빨간 모자를 쓰고 손을 흔들었다. 봉두완(84) 전 동양방송(TBC) 앵커. 그는 손녀가 선물한 빨간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닌다. 그는 자신을 ‘앵커맨’으로 기억해주기를 원한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을 받았고, 한센병 환자들의 성 라자로마을 돕기회 일도 49년째 하고 있다. 눈치 보지 않고 바른말을 쏟아내고, 봉사하는 생활이 그의 건강비결이다.
지난달 26일 명동성당 앞에서 만난 그는 걸음걸이가 편치 않았다. 그래선지 직접 만들어 16년째 맡아온 한미클럽 회장, 라자로마을 돕기 회장 일을 지난 연말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다. 그래도 활발한 그의 성격상 완전히 손을 떼지는 못한다.

함경도 사람은 고집 세다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지 난 몰라

까칠 앵커 멘트로 TBC서 인가
당시 이건희 이사가 방송 권유

최근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그는 최근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런 위기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있었다. 그때 그는 워싱턴 특파원 출신 언론인과 주미대사관 근무자들을 모아 한미클럽을 만들었다. 주한 미 대사관과 주한미군과 대화 통로로 기여했다.
 
박정희 땐 여당 내 야당 쭉 있었어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넘어갈 때예요. 구 경기여고 부지에 미 대사관 직원 숙소를 지으려는데 ‘양키 고 홈’이라며 시위를 했어요. 효순·미선양 사건(2002)이나 광우병 파동(2008)을 보면 (시위대가) 너무 일방적 주장을 해요. 사실은 사실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바램으로 특파원 출신들이 모인 겁니다.”
최근 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학생들이 대사관저 담을 넘었는데.
“미국은 국민이 움직이는 나라입니다. 대통령이 움직이는 줄 아는 데 아니에요. 이런 게 신문에 나면 끝입니다.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때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쫓아가서 설득하고…. 그런데 이 정부는 설득할 능력과 기능과 역량이 없어. 미국이 애치슨 라인을 동해에 긋자마자 김일성이 모스크바로 가서 승부를 걸었잖아요.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미국 아니었으면….”
대진연 학생들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미국이 더 걱정하지 않을까요.
“걱정 많이 하고 있을 거예요. 함경도 사람은 고집이 세다고 하는데, 문 대통령도 그런지 난 몰라요. 노무현 대통령은 달라. 난 노무현 대통령을 참 좋아해요. 기대와 다르게 적응을 잘하시더라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건 상상을 초월해요. 지금처럼 이렇게 험한 생각 안 하고, 상당히 순수했다고 할까….”
노 대통령은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었죠.
“이승만 대통령 때 경무대 출입기자였으니까 나는 역대 대통령들을 다 봤어요. 이만섭 동아일보 기자(전 국회의장)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이후락·김형욱(전 중앙정보부장) 쫓아내야 공화당이 삽니다’라고 말했어. 돈까스(김형욱의 별명)가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화를 냈는데, 박 대통령이 ‘이만섭만 건드리면 너 죽는 줄 알아’ 하며 막아줬어요. 밥 먹고 대화하는 걸 제일 잘못하는 게 박근혜·문재인인 거 같아. 고집들 있어, 둘 다. (이병기) 비서실장 얘기도 안 들었나 봐. 그게 무슨 대통령이야. 안돼. 월남 파병 때 서인석 공화당 대변인이 유일하게 반대했어.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칭찬했다는 거 아니야. 박정희 대통령은 대단한 분이야. 여당 내의 야당은 쭉 있었어. 지금 하고는 달라.”
봉두완 전 TBC앵커가 지난달 26일 명동성당 앞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그는 손녀가 선물한 빨간색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닌다. 신인섭 기자

봉두완 전 TBC앵커가 지난달 26일 명동성당 앞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그는 손녀가 선물한 빨간색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닌다. 신인섭 기자

여러 가지 일을 하셨는데, 어떤 일을 가장 좋아합니까.
“앵커맨이지 뭐.”
그는 ‘○○○○년 ○월 ○일, TBC 뉴스전망대에서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로 시작하는 앵커 멘트로 청취율이 43%까지 치솟는 인기를 누렸다. 뉴스는 아나운서가 읽어주기만 하던 시절 첫 앵커다운 앵커였다. 까칠한 앵커 멘트와 기자들의 직접 출연은 파격이었다.
“1970년부터 80년까지 딱 10년 했는데, 내가 뭐 방송을 해봤어요. 말더듬인데. 이건희 중앙일보 이사가 나를 만나 방송을 하겠느냐고 물었어요. 당시는 방송이 신문보다 인기가 없을 때니까 안 가려고 했는데, 홍라희 여사와 친한 내 아내가 자꾸 가재. 결국 이 이사와 안양 CC 4번 홀에서 장타 내기에 져서 옮기기로 한 거야.”
당시 기준으로는 방송용 말투도 아닌데 어떻게 앵커맨이 되셨죠.
“앵커도 이건희 이사가 시켰어. 아나운서실이 다 들고 일어났어요. 내가 뺏어온 거로 알고. 이 이사는 미국 CBS의 월터 크롱카이트를 제일 좋아했어. ‘크롱카이트처럼 하세요’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내 별명이 ‘봉카이트’가 된 거야.”
그는 직설적인 비판을 밉지 않게 한다. 진지한 이야기도 유머를 섞어 풀어낸다. 이날 인터뷰도 그랬다. 어눌한 듯한 말투로 아픈 곳을 푹 찔러 시청자는 시원한데, 권력자가 정색하기는 곤란하게 했다. 최근 많은 앵커가 그의 스타일을 따라 하고 있다.
방송 상태가 안 좋을 때 “이거 도청하는 거 아냐”라거나 “이런 말 하면 잡아가 두들겨 패려나”라고 정보정치를 비꼬기도 했다. 3선 개헌에 대해서도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깜깜합니다. 밤이니까요”라고 재치있는 멘트를 날렸다. 이런 멘트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무척 불편하셨겠어요.
“나는 이 주둥아리 때문에 위기를 많이 겪었어요. 하루는 육영수 여사가 불러 갔더니 처음에는 칭찬하시다 ‘왜 그렇게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느냐’고 혼을 내요. 그리고는 박 대통령 가족과 식사를 했죠. 박 대통령은 ‘근혜야, 640㎑에 빨간 줄 그어놔라’고 해서, 화장실에서도 내 방송을 들으셨다고 해요.”
그는 90년대 들어 맡았던 MBC ‘여성시대’, KBS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 등도 모두 중도에 하차했다.
봉두완 성라자로마을돕기회 전 회장이 2016년 경기 의왕시 성라자로 마을에서 박현배 원장 신부(왼쪽 두번째), 마을 주민들, 최 라자로 수녀(오른쪽)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른쪽 뒤로는 봉씨와 한센인의 인연을 맺어준 초대 라자로마을 원장 고 이경재 신부의 흉상이 있다. [중앙포토]

봉두완 성라자로마을돕기회 전 회장이 2016년 경기 의왕시 성라자로 마을에서 박현배 원장 신부(왼쪽 두번째), 마을 주민들, 최 라자로 수녀(오른쪽)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른쪽 뒤로는 봉씨와 한센인의 인연을 맺어준 초대 라자로마을 원장 고 이경재 신부의 흉상이 있다. [중앙포토]

 
양심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돼 
라자로마을돕기회장을 20년간 맡으셨죠.
“창립멤버로 참여해 내년이 50년째입니다. 황해도 우리 동네 분인 이경재 신부님을 미국에서 만나 그분이 70년 다시 라자로마을 원장으로 돌아오셨을 때 돕기회에 참여했습니다. 회장은 작년 말 넘겨줬지만 계속 돕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국·일본·독일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세계 14개 나라에 있는 마을들에 돈을 보내요.”
예술의 전당에서 자선음악회를 열어 후원금을 만든다고 한다. 그는 소외된 약자를 도우러 가서 오히려 사랑을 받고, 진정한 위안과 행복을 얻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그에 대해 “평생 적십자 봉사, 나환자 돕기, 장애인 돕기, 천주교 한민족돕기회 회장과 꾸르실료세계협의회장 등 온갖 돈 안 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천성 때문”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TBC가 사라지게 되자 ‘뉴스전망대’에서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1980년 11월 29일, TBC 뉴스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늘의 세계, 저는 더 이상 더듬지 않을 겁니다.”

영원한 앵커로서 이 시대에 한마디 하신다면?
“나는 보수적이니까 문재인을 안 좋아해. 그건 분명해. 노무현은 좋아해. 그리고 나는 이북에서 와서 공산당 싫어해. 현직 대통령이니까 소리 내서 욕은 안 하려고 해. 어차피 이 정권은 오래 못 가요. 양심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돼요.”
TBC 시절 '안녕하십니까?봉두완입니다'를 진행한 봉두완 전 앵커(왼쪽). [중앙포토]

TBC 시절 '안녕하십니까?봉두완입니다'를 진행한 봉두완 전 앵커(왼쪽). [중앙포토]

한국 최초의 실질적 뉴스 앵커
봉두완 전 한미클럽 회장은 황해도 수안에서 태어나 6살 때 전북 부안으로 이사했다. 경복고,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아메리칸대에서 신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화통신 기자와 한국일보 주미 특파원을 거쳐 10년간 TBC 뉴스전망대 앵커로 활약했다.
 
전두환 정부 때 민정당 대변인, 11, 12대 국회의원(마포·용산)으로 국회 외무위원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정주영 씨의 국민당에도 참여했고,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광운대 석좌교수, 원음방송 명예회장 대한적십자회 부회장을 맡아 봉사활동을 했고, 2000년에는 대한적십자 대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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