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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도 벤치마킹 오는 민사고…정부가 숨통 끊어”

한만위 민사고 교장은 28일 ’일반고 전환되면 폐교를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만위 민사고 교장은 28일 ’일반고 전환되면 폐교를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폐교가 눈앞에 있다. 고통스럽다.”
 

한만위 민족사관고 교장 인터뷰
횡성 허허벌판에 학교만 있어
전국서 모집 전교생 450명 유지
일반고 되면 학생 못채워 폐교할 판
1년 예산 140억도 정부 메워주겠나

한국의 ‘원조 자사고’로 꼽히는 민족사관고(민사고) 한만위 교장의 말이다. 2025년 전국 모든 자사고·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민사고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1996년 개교한 민사고는 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92)이 사재 1000억여원을 들여 세웠다.
 
한 교장은 “일반고로 전환되면 신입생 모집부터 교육과정 운영까지 모두 어렵게 된다”며 “대안학교 전환까지 검토했지만 이마저 힘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폐교 수순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다. 그는 “외국에서 영재교육의 모범 사례로 꼽는 민사고를 정치 논리로 문 닫게 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8일 중앙일보사에서 한 교장을 인터뷰했다.
 
폐교라니 무슨 얘긴가.
“민사고에 와 봤나. 강원도 횡성의 허허벌판에 학교만 있다. 이제껏 전국 각지에서 모집해 전교생 450명이 유지됐다. 자사고 지위가 박탈돼 지역 일반고가 되면 (강원도에서만 뽑아야 하니) 학교를 채울 수 없다. 12층짜리 기숙사엔 거미줄만 가득하고 교실도 비게 될 거다.”
 
한 교장은 강원도교육청이 1993년 설립을 허가한 공문을 꺼냈다. ‘강원도 학생 감소로 학교 신설이 필요 없다’ ‘학생 모집 지역이 전국이라 설립을 검토했다’고 기록됐다. 전국 모집이 아니면 학교가 들어설 자리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옥을 본뜬 민사고 건물. [중앙포토]

한옥을 본뜬 민사고 건물. [중앙포토]

일반고가 되면 정부 지원 받을 수 있는데.
“학교 1년 예산이 140억원이다. 이 정도 예산을 세금으로 메워줄까. 일반고 수준만 지원하면서 학교 특유의 커리큘럼은 포기하게 할 거다. 그렇다면 학교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독점해 일반고가 황폐해졌다’고 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민사고는 설립 목적이 ‘민족주체성을 가진 영재 양성’이다. 그래서 영재성을 갖춘 학생을 뽑아 한복을 입히고 한국을 가르치며 영재교육을 한다. 사립학교가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하는 게 문제인가.”
 
일반고 황폐화의 진짜 원인은.
“대학의 서열화, 직업 격차 같은 한국의 사회 구조다. 서열이 높은 대학,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 자사고를 없애 해결한다는 것은 허구이자 판타지다.”
 
고교학점제(2025년 시행)를 위해 자사고 폐지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 주장인데.
“민사고는 개교 때부터 고교학점제와 교과교실제를 시행했다. 전교생 450명인데 매 학기 개설 강좌가 200개가 넘는다. 학년·계열에 관계없이 원하는 수업을 들어 학생마다 시간표가 다르다. 국내는 물론 외국 고교에서도 찾아와 벤치마킹해갔다.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정책의 성공 모델인데도 굳이 무너뜨리겠다는 거다.”
 
민사고는 교육여건이 탁월하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6명, 학생 1인당 도서관 장서는 93.5권에 이른다. 기숙사 이용을 포함한 연 학비가 2700만원으로 ‘특권학교’란 비판도 받는다.
 
교사는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만 채용하고, 교사자격증이 없어도 강의 능력이 있으면 교사와 동일한 대우를 한다. 농학박사인 한 교장은 농업과학기술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1년부터 민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교 모임(G20 하이스쿨)의 멤버로 중국·싱가포르·카자흐스탄 등에서 민사고를 배우려 방문한다”며 “민사고를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할 생각 없이 없애려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한때 영재학교 전환도 고려한 적이 있다.
“2000년 과학기술부에서 ‘1호 영재학교’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민사고의 목표는 인문·사회·과학·예술을 아우르는 영재였으나 과기부는 수학·과학 영재에만 관심 있었다. 그래서 무산됐다.”
 
정말 폐교를 피할 수 없을까.
“백방으로 알아봤다. 대안학교 전환도 검토했는데 이마저 쉽지 않더라. 제도권에 있던 학교가 대안학교가 된 전례가 없다. 일단 폐교했다가 대안학교로 다시 문을 열라고 하던데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한번 문을 닫으면 학교 재산이 국가에 귀속된다. 학교 자산이 공중분해돼 학교 설립이 불가능하다.”
 
학교 분위기는.
“이대로 가면 민사고 폐교가 현실이 될거란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정부가 엘리트교육의 숨통을 끊은 셈이다.”
 
학교 이름을 바꾸려 한다던데.
“‘민족주체고’로 바꾸려 한다. 설립자가 애초 원했던 이름인데 ‘주체’라는 단어가 북한을 연상시켜 쓰지 않았다. 통일이 되면 바꾸려 했는데 학교가 문 닫을 수 있는 상황이 오니, ‘민족주체고라는 학교가 있었다’는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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