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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일 문제는 민족주의의 충돌…‘봉합 외교’ 시급”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1주년인 30일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흔들면 당신이 흔들리는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해 “일본산 부품의 국산화 등 내부에 벽을 쌓는 식의 수세적 대응보다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일본 경제에 공포감을 주는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어야 일본에 나쁜 지도자가 들어와도 함부로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며 지난 1년의 키워드를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손 원장은 “미ㆍ중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전략적 이익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일본과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일본 아베 정부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는 한 한국도 만만치 않은 나라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법원 전원합의체 강제징용 판결 1년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인터뷰
"日기업 자산 현금화 중단으로 봉합 먼저"

‘최악의 한ㆍ일 관계’의 원인은.
지금의 한ㆍ일 관계 악화는 1년 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파기 환송 등이 있었던 2012년부터 역사 갈등이 본격화했다. 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로 충돌한 뒤 정상 간 셔틀 외교도 사실상 중단됐다. 선정적으로 이를 역사 전쟁이라고 부른다면 양국은 이미 ‘7년 전쟁’을 치르는 중이고, ‘10년 전쟁’까지 간다고 본다.  
정부 성향의 문제인가.
2010년대 들어 민족주의가 부흥하는 트렌드다. 아베 총리가 2012년 선거에서 일본의 영광된 과거를 되돌리겠다는 슬로건으로 당선되며 ‘복고 민족주의’가 정치 전면에 부상했다. 이에 맞서 한국에서는 고유의 ‘저항 민족주의’가 발현했다. 한국이 진보정부인지 보수정부인지를 떠나 양국의 민족주의 간 충돌이라는 구조적 원인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정부도 초기에는 일본과 관계 개선을 꾀하다 역사 갈등 뒤 관계 악화로 마무리하는 경향이 반복됐다. 이전과 지금이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까지 한ㆍ일 역사 갈등에서는 피해자인 한국이 공세, 가해자인 일본이 수세적 입장이었다. 하지만 2015년 12ㆍ28 위안부 합의 이후 양상이 달라졌다. 특히 2017년 1월 주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세워진 것을 기점으로 일본은 ‘한국은 약속을 지키라’며 공세로 전환했다. 일본의 복고 민족주의가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입만 열면 약속을 지키라고 집요하게 공세를 벌이다 1년 전 대법원 징용 판결로 본격적인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부산에 '항일거리' 현판 설치  아베규탄부산시민행동 등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0일 오전 부산 동구 정발 장군 동상 앞에 설치된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 화단에 '항일거리' 현판을 설치 한 뒤 집회를 갖고 있다.송봉근 기자

부산에 '항일거리' 현판 설치 아베규탄부산시민행동 등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0일 오전 부산 동구 정발 장군 동상 앞에 설치된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 화단에 '항일거리' 현판을 설치 한 뒤 집회를 갖고 있다.송봉근 기자

이후 양쪽 모두 강공이다.
상대에 대해 정형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양국 모두에 있다. 일본은 한국을 희화화하고 한국을 일본을 악마화하고 있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위해 법령을 개정했지만, 실제 한국 기업에 대해 수출 승인은 다 해주고 있다. 실질적인 금수로 연결되지는 않은 것인데, 이는 한국의 불매 운동으로 놀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정치와 경제 분리라는 국제 규범을 어긴 자기모순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한국은 국제 규범과 원칙에 맞춰 행동하며 냉정을유지했어야 하는데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대응했다. 이전투구가 됐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철회를 지소미아 종료 결정 재검토의 조건으로 걸고 있다. 11월22일 밤 12시 만료되는 지소미아의 운명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전제조건이 틀렸다. 일본에게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꽃놀이패나 마찬가지다. 수출 규제 문제에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굉장히 큰 국내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데, 그러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지소미아가 종료된다면 한미동맹에 미칠 영향은.
지소미아는 한일 양자 간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질서를 새로 짜는 과정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미국으로선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이 큰 부분이고, 이를 작동하게 하는 기제가 지소미아인 셈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구상의 관점에서 한국에 ‘지소미아를 종료한다면 그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이 30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 연구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유정 기자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이 30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 연구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유정 기자

미ㆍ중 사이에서 입장을 확실히 하라는 요구가 있을 것이란 뜻인가.
그렇다. 더 힘든 숙제들이 계속 다가오고 있다. 인도태평양 구상에 대한 참여나 미ㆍ중 사이에서 한국의 정확한 위치 등 여러 측면에서 한국의 입장에 대한 확인 작업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결국 강제징용 문제가 풀려야 하는데 정상회담을 통한 톱다운식 접근법이 유효할까.
동아시아연구원 여론조사를 보면 양국 국민의 상대국 지도자에 대한 호감도가 3% 내외 수준이다. 이 정도면 서로 극혐 수준이다. 정상 간에 만나 대타협을 이루는 식의 접근은 어렵다.
현실적 해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봉합의 외교가 필요하다. 더 큰 사고가 터지기 전에 막아야 하는데, 그 선은 징용 일본 기업 자산의 매각이다. 현금화 조치는 몰수나 마찬가지이고, 일본은 제2의 경제 제재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도 이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일단 현금화까지는 가지 않게 잠정 중단(standstill) 상태를 만들고 양국 정부 간 고위급 협의 채널을 만들어 구체적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강제징용-위안부 문제 관련 사진전시회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김경록 기자

강제징용-위안부 문제 관련 사진전시회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김경록 기자

위안부 합의에서 가장 큰 하자로 지적된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징용 문제에서는 이 기준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직접 관여하는 책임 있는 고위 당국자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피해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도 올 수 있기 때문에 정부로선 상당한 정치적 자산을 써야 하는 어려운 문제다.  
유지혜ㆍ이유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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