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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신구 원전(原電)의 명암… 퇴역 '고리 1호', 가동 시작 '신고리 4호'

29일 정부 ‘탈원전’ 정책의 역풍을 온몸으로 맞은 한국수력원자력의 부산ㆍ울산 원자력발전(원전) 현장을 둘러봤다. 40년 가동을 마치고 퇴역한 ‘고리 1호기’(과거)와 갓 운전을 시작한 ‘신고리 4호기(현재)’, 건설에 한창인 ‘신고리 5ㆍ6호기(미래)’다.
 

#과거. 해체 앞둔 ‘산업 역군’ 고리 1호기

1978년 4월~2017년 6월. 국내 ‘1호 원전’인 고리 1호기의 발전 역사다. 높은 철책과 허리춤에 총을 찬 청원경찰, 쓰나미를 막기 위한 10m 높이 차수벽을 거치고서야 고리 1호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퇴역(退役)했지만 이곳이 ‘1급 국가보안시설’ 원전이라는 점이 실감 났다.
2017년 6월 40년 가동을 멈춘 고리 1호기 터빈. [한수원]

2017년 6월 40년 가동을 멈춘 고리 1호기 터빈. [한수원]

원자로에서 만든 증기로 발전기를 돌리는 ‘터빈실’에 들어서자 40년 업력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점이 눈에 띄었다. 권양택 한수원 고리1호기 소장은 “원자로는 영구 정지했지만, 시설을 유지하고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냉각ㆍ전력ㆍ방사선 감시 설비 등을 그대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출력 ‘0’을 가리키는 주 제어실에 들어서자 수백개 스위치마다 ‘플라스틱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권 소장은 “작업자가 당황했을 때 누르거나 물건이 떨어져 스위치를 오작동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진 상황을 가정해 테이블도 바닥에 고정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수조에 핵연료가 담겨 있다. [한수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수조에 핵연료가 담겨 있다. [한수원]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푸른빛 물(붕산수)이 가득 담긴 수조(사용후핵연료저장소)는 이곳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수심 12m 깊이엔 사용을 마친 핵연료 485다발이 ‘수장’돼 있었다.
 

#현재. 가동 시작한 ‘최신 원전’ 신고리 4호기

한창 가동중인 신고리 3ㆍ4호기 전경. 4호기는 지난 8월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한수원]

한창 가동중인 신고리 3ㆍ4호기 전경. 4호기는 지난 8월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한수원]

원전에 ‘신생아기’가 있다면 바로 이곳 신고리 4호기일 것이다. 4호기는 지난 8월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향후 60년 가동할 토종 원전(APR1400 노형)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정부가 자국 외 최초로 설계 인증(미국 내 건설ㆍ운영 허가하는 일종의 안전 증명)한 최신 원전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도 수출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이라 숨을 멈춘 고리 1호기와 달랐다. 터빈실에 들어서자 ‘웅’하는 굉음으로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원자로에서 내뿜는 열기로 훈훈했다. 한겨울에도 30도를 유지한다고 했다. 반대로 수조는 아직 쓰고 난 핵연료가 들어차지 않아 푸른 빛 물만 비쳤다.  
 
워낙 반짝거려 ‘무균실’을 연상시키는  주제어실로 들어서자 버튼이 확 줄어든 디지털 계기판부터 한눈에 들어왔다. 한가운데 출력 전광판엔 ‘1400㎿(메가와트)’가 깜빡거렸다. 부산ㆍ울산ㆍ경남지역 전력소비량의 12%(2017년 기준)에 해당하는 전력을 이곳에서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숫자였다. 하훈권 4호기 운영실장은 “주 제어실이 화재 등으로 상주하기 어려울 경우 아래층에서 원격 조종도 할 수 있다”며 “원전의 기본인 안전에 충실하면서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접목했다”고 설명했다.
 

#미래. ‘마지막 원전’ 될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에 한창인 신고리 5ㆍ6호기. [한수원]

건설에 한창인 신고리 5ㆍ6호기. [한수원]

인근엔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이 한창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탈원전을 선언하면서 향후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원전 설계수명이 끝나면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국내 ‘마지막 원전’으로 남을 운명에 처한 현장이다.
 
아파트 24층 높이 ‘돔형’ 격납 건물을 짓기 위해 크레인 수십 대가 바삐 움직였다. 돔형으로 짓는 건 내부 압력을 고르게 분산하기 위해서다. 콘크리트 외벽 두께만 137cm, 안에 들어가는 철근은 직경 57mm다. ‘9ㆍ11테러’처럼 외부에서 항공기가 충돌하더라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일반 건설 현장과 달리 맨땅에 기반을 다지는 게 아니라 두꺼운 화강암 층이 있는 곳을 찾아 위에 콘크리트를 붓는 식으로 기초 공사를 한다. 강영철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소장은 “진도 7 규모 지진에 ‘견디는 게’ 아니라 ‘제 기능을 하는’ 정도 수준으로 짓고 있다”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이라고 소개했다. 2024년 6월 완공 예정인 원전의 미래였다.
 

해체 '장밋빛 미래'… '속도 조절' 해법 찾아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를 계기로 ‘장밋빛 미래’를 그린다. ‘블루오션’인 원전 해체 시장을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겠다고 강조한다. 지난 6월 기준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원전은 449기, 영구 정지 원전은 176기다. 영구 정지 원전 중 해체를 완료한 원전은 21기뿐이다. 미국ㆍ유럽에 몰린 노후 원전은 2020년대 중반부터 줄줄이 폐로(閉爐)할 예정이다. 한수원은 향후 100년간 세계 원전 해체시장 규모가 549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원전해체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2035년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해 세계 원전해체 시장 ‘톱5’ 국가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의욕과 달리 실제 원전을 해체한 경험이 없어 기술ㆍ인력ㆍ제도가 모두 달린다.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원전 해체 상용화 기술 58개 중 13개(22.4%)를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미확보한 13개 기술 대다수가 해체 핵심 기술로 분류된다. 성풍현 KAIS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해체 기술은 미국 대비 80%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원전 건설ㆍ수출과 달리 해체 기술이 선진국 수준에 올라서려면 최소 6~7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체 시장을 한국이 가져간다 하더라도 원전 건설ㆍ수출과 비교하면 덩치가 작다. 2017년 기준 원자력 관련 분야 기업 총매출액은 80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해체 분야 매출은 3600억원(0.45%)에 불과하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원전 문을 닫으면서 해체 산업을 키우는 건 손발이 맞지 않은 원전 산업 육성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물론 현실적으로 원전을 늘리는 건 쉽지 않다. 중국ㆍ러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는 추세라서다. 국내 ‘탈원전’ 반대론자조차 원전 확대 목소리를 내기보다 ‘속도 조절’과 이번 정부 들어 취소한 신한울 3ㆍ4호기 공사를 재개하자는 수준의 대안을 내놓는다.
 
다만 원전 기술이 뛰어난 데 비해 에너지 자원은 부족하고, 기후는 척박한 한국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유독 불리한 환경이란 특수성은 고려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업계 전문가는 “현재 운영하는 원전을 잘 관리해 최대한 가동 수명을 늘리는 게 우선”이라며 “원전 해체산업 경쟁력과 신재생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국제사회 흐름에 발맞추는 게 탈원전을 경착륙시키는 ‘출구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울산=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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