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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강제할인 갑질 없애겠다 vs 차라리 세일 안하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백화점 등의 반대에도 유통산업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심사지침을 고친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이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백화점 등의 반대에도 유통산업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심사지침을 고친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이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유통 산업 규제를 강화하는 취지로 제도를 개정한다. 하지만 백화점·아울렛 등 유통기업은 ‘탁상행정 규제’라고 하소연한다.

납품사가 책임지던 할인판촉비
내달부터 백화점 절반 부담해야
“개정안 시행 땐 물건 팔수록 손실”
유통업체 ‘탁상행정 규제’ 하소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30일 대규모유통사업자의 판매·촉진비(판촉비) 부담을 규정한 ‘대규모유통업법 11조’ 심사지침 개정안을 발표한다. 대규모유통업자는 매장 면적이 3000㎡ 이상이거나 연매출이 1000억원 이상인 유통기업이다. 백화점·아울렛·대형마트가 대표적이다. 대규모유통업법 11조는 유통기업이 납품회사에 판촉비를 전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11조1항). 예컨대 백화점에서 정기세일을 한다면, 판촉 행사 비용의 절반 이상을 유통기업이 지불해야 한다(11조4항).
 
쟁점은 ‘판촉비’의 정의다. 지금까지 제품 할인에 따른 가격 인하분은 통상 납품회사가 책임졌다. 납품기업이 자발적으로 유통기업에게 요청했거나 상호협의했다면, 판촉비를 분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규정 때문이다(11조5항).
 
팽팽하게 맞선 공정위와 유통업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팽팽하게 맞선 공정위와 유통업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예컨대 A납품기업이 정상가 12만9000원인 하프집업티셔츠를 B백화점 매장에서 판매한다고 가정하자. B백화점 가을 정기세일에 A 제조사가 이 티셔츠를 할인가(7만7000원)에 판매하고 싶다면, 가격 인하분(5만2000원)은 A사가 감수하는 게 관례였다는 뜻이다.
 
대신 백화점은 납품업체를 배려해서 수수료를 다소 깎아줬다. 백화점 매장에서 소비자가 이 티셔츠를 정상가격(12만9000원)에 사면, B백화점은 판매가의 27%(3만4830원)를 수수료 명목으로 챙긴다. 그런데 제품을 할인 판매한 만큼 백화점 수수료율을 다소 낮춰주는 관행이 있었다(할인가의 25%·1만9250원).
 
백화점 의류 판매·유통 사례. 그래픽=차준홍 기자.

백화점 의류 판매·유통 사례. 그래픽=차준홍 기자.

 
하지만 30일 공정위가 예외조항(11조5항) 개정을 발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백화점업계는 벌집 쑤신 분위기다. 개정안의 핵심은 예외조항을 보다 까다롭고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할인판매 가격차이도 일종의 판촉비로 봐야 한다는 게 공정위 생각이다. 쉽게 말해서, 사례의 티셔츠 할인액(5만2000원) 중 절반(2만6000원)을 제조사가, 나머지 절반(2만6000원)을 백화점이 분담하라는 말이다.
  
온라인쇼핑 활성화로 ‘갑을 관계’ 뒤집혀
 
공정위가 규제를 강화하는 이유는 속칭 ‘갑질’ 근절이다. 쉽게 말해 백화점이 납품업체의 팔을 꺾어 강제로 할인행사에 동참하도록 강요한다고 본다. 특히 정기할인행사는 납품기업이 원치 않아도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납품업자가 서류상 요건을 충족한 뒤 부당하게 할인행사에 동원된다고 본다. 이번 지침을 개정해 예외규정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이유다.
 
유통업계도 이와 같은 거래 방식의 구조적 한계점과 정부의 취지를 인정한다. 하지만 공정위가 제시한 해법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볼멘소리다.
 
유통업계는 일단 정부 해법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상기 사례에서 정상 수수료율(27%)을 적용할 때 티셔츠 한장당 B백화점은 2만790원을 번다. 그런데 지침 개정 이후 여기서 2만6000원을 납품업체에 지불해야 한다. 결국 백화점은 매장을 빌려주고 돈을 벌기는커녕 티셔츠가 팔릴 때마다 한장당 5210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다.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델라라나 매장에 선보인 캐시미어 니트와 여성 정장. [사진 신세계백화점]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델라라나 매장에 선보인 캐시미어 니트와 여성 정장. [사진 신세계백화점]

 
제도상 허점도 이들의 걱정거리다. 현행법상 어떤 제품을 할인하고 얼마나 할인할지는 전적으로 제조사가 결정한다. 예컨대 B백화점이 가을 할인행사를 고지하면, A 제조사는 공문을 보내 참가 의사를 밝힌다. 이때 ‘정상가 12만9000원인 하프집업티셔츠를 특별가 7만7000원에 판매하겠다’는 식으로 행사상품·할인율을 기재한다. 그런데 시행지침이 개정하면 상품의 제조비용·이윤구조를 알지 못하는 백화점은 제품이 팔릴 때마다 납품기업에 돈을 줘야 한다.
 
이런 제도는 악용의 소지가 있다. 예컨대 12만9000원인 하프집업티셔츠의 정상가를 2배(25만8000원)로 책정한 다음, 특별가(7만7000원)에 판매한다고 A사가 결정한다면, B백화점은 졸지에 티셔츠 한장당 9만500원을 A사에게 지급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상가·할인가 책정 과정에서 백화점이 간섭하면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야경. [사진 신세계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본점 야경. [사진 신세계백화점]

  
공정위 “적용시점 내달 1일서 달라질 수도”
 
물론 과거에는 백화점이 절대 ‘갑’의 지위에 있던 시절이 존재했다. 하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이커머스(e-commerce) 등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하면서 유통산업 구조가 뒤집어졌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 시장규모(110조원)는 백화점(30조원)의 3.6배다.
 
한 백화점 고위 관계자는 “납품업체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손쉽게 온라인 매출처를 찾을 수 있게 된 이후 백화점이 함부로 부당한 할인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한 시대”라며 “규제가 시작되면 연 4회 정기세일(1월·4월·7월·10월) 폐지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동열 공정위 유통거래과장은 “백화점이 할인행사를 진행하면 납품기업의 수익은 감소하지만, 백화점은 집객효과로 수수료매출이 증가한다”며 “백화점은 싫어하겠지만, 돈 버는 사람이 비용도 더 책임지는 것이 공평하고 공정한 자세”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다음달 1일 코리아세일페스타 개막과 맞물려 시행지침 적용 시점이 다소 달라질 가능성은 있겠지만, 갑질을 근절한다는 원칙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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