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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상 전자담배 '기기'는 공산품? 정부 대책서 핵심 빠졌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 등이 진열돼 있는 모습. [뉴스1]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 등이 진열돼 있는 모습. [뉴스1]

23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 계산대 바로 위에 ‘릴 하이브리드 특별할인 11만원→7만5000원’이라는 광고 문구가 선명했다. 그 옆에는 ‘모든 전자담배 기기 반납 시 릴 할인쿠폰 증정’이라는 광고도 있었다. 온라인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 홈페이지에는 ‘쥴 호환’ 등을 강조하며 기기 가격을 9%, 21% 할인해준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함께 팔면서 ‘스타일리시’ '남성다움' 같은 디자인 요소를 내세웠다.
 

궐련형·액상형 전자담배 모두 '기기' 필수
23일 정부 대책 발표에도 사각지대 여전
'기기 21% 할인', 디자인·액세서리 강조도

여가부 '청소년 유해물질' 고시가 유일 규제
"불량 기기 쓰면 니코틴 액상 곧바로 삼켜"
전문가들 "전자 장치도 담배처럼 규제 필요"

이날 정부는 인체 유해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미국에서 중증 폐 손상 환자가 1479명(15일 기준) 나오고 이 중 33명이 숨진 데다, 국내에서도 폐 손상 의심 환자가 한 명 나왔기 때문이다. 액상형 전자담배 규제 강화를 위한 연내 법 개정, 수입 통관 강화 등의 새로운 대책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궐련형ㆍ액상형 전자담배 등에서 공통으로 필요한 ‘전자 기기 장치’다. 이들 기기는 법 테두리 바깥에서 판촉, 할인 행사 등에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는 '청소년 대상 판매 단속 강화'나 '불법 배터리 유통 제한' 등을 빼고는 기기 규제가 특별히 언급되지 않았다.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를 21% 할인해서 판매한다는 모 담배 업체 홈페이지 화면. [인터넷 캡처]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를 21% 할인해서 판매한다는 모 담배 업체 홈페이지 화면. [인터넷 캡처]

액상형 전자담배는 핵심 장치인 전자 기기가 없으면 니코틴 액상을 활용할 수 없다. 액상과 기기가 한 묶음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 기계는 연초 뿌리나 줄기에서 추출한 니코틴 액상과 마찬가지로 담배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행 담배사업법상 담배는 연초 잎에서 추출한 니코틴 제품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흡연을 도와주는 기기는 법적으로 담배와 아예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일반 공산품이기 때문에 유통과 판매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 ‘OO% 할인’ ‘1+1 판매’ 식으로 광고하고 판매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현재 전자담배 기기에 적용되는 유일한 법적 장치는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물질’ 고시다. 2년 전 개정된 고시에 따라 ‘니코틴 용액 등 담배 성분을 흡입할 수 있는 전자장치’가 청소년 유해물질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청소년 판매ㆍ유통만 막을 수 있다. 나머지 안전, 금연 관련 규제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기기 자체에 적용되는 법률이나 주관 부처가 따로 없다. 그러다 보니 담배 업체가 화려한 디자인의 기기를 내세우면서 청소년·여성 등 새로운 흡연자를 끌어들일 위험성이 크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또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들은 기기 이상으로 니코틴 액상을 직접 흡입할 가능성이 있다. 법적 안전장치가 미비하다 보니 건강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금연 전문가는 "불량 기기를 쓰면 고농도 니코틴 액상이 흡연자 입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리킹’이 될 수 있다. 중국산 제품 등에서 막음 장치 문제가 나타나면 치사량에 가까운 니코틴 액상이 그대로 몸에 흡수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을 막으려면 액상뿐 아니라 ‘기기 장치’도 법 테두리 안에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 FDA(식품의약품안전청)는 법적 전자담배 정의에 ‘구성품’(components)을 명시했다. 배터리 등을 비롯한 일체의 전자 장치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부 규제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지난달 담배로 규정된 것 외에는 흡연용으로 팔 수 없도록 규정한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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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 주의 한 상점 점원이 전자담배를 정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뉴저지 주의 한 상점 점원이 전자담배를 정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백유진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대한금연학회장)는 “담배 정의를 바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법적인 담배 범주에 기기 장치도 포함해야 제대로 된 액상형 전자담배 규제가 가능하다”면서 "이번 기회에 전자담배 기기 표준 규격도 만들어야 한다. 업체가 억지로 기기를 개조할 수 없게 하는 식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교수는 ”이번 대책은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전자 장치 규제가 아예 빠져있어 아쉽다"면서 "액상에는 경고 그림ㆍ문구 등이 도입됐는데 사람들이 실제로 들고 다니는 기기에는 붙어 있지 않다. 새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액상 안전 문제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기기 규제는 많이 다루지 않았다"면서 "지난 5월 발표한 금연 종합대책에서 전자 장치 규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온라인 광고 규제 등은 정부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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