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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일본 입장 변화 없다” 판단…대통령 방일 접고 이낙연 파견

이낙연 방일 막전막후와 한일 관계 전망

일왕 즉위식 축하사절로 일본을 방문 중인 이낙연 총리가 오늘 오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난다. 1년 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기 시작한 이후 이래 이뤄진 양국 간 최고위급 대화다. 과연 이낙연-아베의 만남을 계기로 양국 간 갈등을 푸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까. 이낙연 방일 이후의 한·일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양국 관계의 내막에 밝은 정부 관계자 및 정치권 인사, 전문가들로부터 이낙연 방일의 막전막후와 전망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아베 신임 두터운 기타무라 발탁 후
정의용 대신 서훈 라인 가동 시작
총리 방일에도 획기적 진전 힘들어
금전배상 포기 방안 지지 확산중

도쿄에서의 화과자 해프닝
 
이낙연 국무총리(왼쪽)가 2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회담한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이낙연 총리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4차 동방경제포럼 참석 중 아베 총리와 만나는 장면.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왼쪽)가 2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회담한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이낙연 총리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4차 동방경제포럼 참석 중 아베 총리와 만나는 장면. [연합뉴스]

21일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 국정감사. 여권 중진인 박병석(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한 공식 비공식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비중 있는 장관급의 비공개 접촉이 있었죠”라고 물었다. 강경화 외무장관은 “확인해 드릴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접촉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공식 외교 경로를 통한 접촉 이외에도 고위급 물밑 접촉이 한·일 간에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비중 있는 장관급 인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힌트는 그보다 2주 전인 10월 4일 도쿄의 주일대사관에서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찾을 수 있다. 외통위원장인 윤상현(자유한국당) 의원이 “전날 저녁 투숙한 호텔에 들어가 보니 화과자(和菓子)가 있었는데 서훈 국정원장이 보낸 것이었다”고 발언한 것이다. 서울에 돌아온 윤 의원에게 구체적인 정황을 물어보니 “그날 국감장에서도 국정원 출신인 정무2공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서 원장이 도쿄에 와 있구나란 생각이 들어 화과자 얘기를 하게 된 것”이라 말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원장이 비공개 출장을 가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라며 “서 원장이 (화과자 해프닝 이후) 비서실 직원들을 질책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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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도 굳이 서 원장의 동선을 노출시키는 행동을 한 이유는 석연치 않다. 이 때문에 “이제부터 한·일관계는 서 원장이 나서서 챙기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이 위안부 협상을 비롯한 한·일 관계를 관장한 적이 있다.
 
윤상현 위원장은 “서 원장과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S) 국장의 라인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하며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전 NSS 국장 라인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발동 이후 정의용-야치 라인이 가동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강제징용 해법에 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는 게 일본 주간 아에라의 보도다.
 
기타무라는 지난달 퇴임한 야치의 후임이다. 엘리트 경찰 간부 출신인 기타무라는 주로 외사(外事) 분야를 담당하며 아베 총리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을 처리했다. 경찰 출신으로는 처음 NSS 국장으로 발탁될 만큼 아베의 신임이 두텁다. 그는 총리 직속 내각정보관으로 일하는 동안 카운터파트 관계에 있는 서훈 원장과 북한 문제 등에서 업무적으로 협조할 일이 많았다. 이런 인연으로 서훈-기타무라 라인이 구원투수 격으로 등판하게 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문 대통령 친서에 정상회담 의사 피력 가능성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연철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연철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이낙연 총리의 방일이 확정된 것은 서훈의 방일 이후다. 내막을 알만한 위치에 있는 인사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렇게 전했다. “일본 측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오기를 원한다는 의사 표시가 있었다. 대통령 참모들 중에서도 이웃 나라의 경사인 일왕 즉위식에 직접 참석해 축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관계를 풀자는 메시지 전달이 된다는 의견을 갖고 대통령 방일을 건의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과의 접촉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본 결과 문 대통령이 가더라도 일본의 완강한 입장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아무런 성과 없이 갔다 오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총리가 참석하는 것으로 절충안이 나오게 된 것이다. ”
 
‘일본의 완강한 입장’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 현재 한·일 간의 쟁점은 ▶강제징용 판결 해법▶일본의 수출규제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의 세 가지다. 이낙연 총리가 밝힌 대로 일본은 수출규제를 풀고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함으로써 상황을 7월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은 뒤 양국 협의를 통해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해법이 선결과제라며 강경 입장에서 물러설 기색이 없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한·일은 각자의 원칙적 입장에서 변화가 없고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도 거의 없다. 고위급 접촉과 외교차관 채널 등 공식 협의를 거듭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판단을 거쳐 이낙연 총리의 방일로 가닥이 잡히게 됐다. 대신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기로 했다. 친서에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 실현을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아베 총리의 분명한 답변을 듣고 오게 될지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낙연 방일을 둘러싼 기대치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일본 정부의 한 인사가 최근 한국 측 지인에게 “한국은 왜 이렇게 총리 방일에 기대를 많이 거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데서 온도 차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도쿄에 간 이낙연 총리 본인부터 기대 수위를 낮추고 있다.
 
이 총리는 22일 즉위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상황이 어떤지를 이미 다 알고 왔으니 무슨 드라마틱하게 말 몇 마디로 되는 것이 아니잖느냐”며 “최대한 대화가 더 촉진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또 “아베 총리와의 면담에서 구체적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선을 그었다. 구체적 이야기를 하기에는 이낙연-아베의 만남에 할당된 시간 자체가 10분으로 너무 짧다. 아베 총리가 즉위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급 인사 50여명 이상을 만나야 하는 일정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일본의 소극적인 자세를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금전적 배상 요구 않겠다’ 방안 부상
 
하지만 아베-이낙연 만남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는 않다. 만일 아베 총리로부터 정상회담 의사를 받아온다면 최선의 결과가 될 것이다. 11월에 아세안+한·중·일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 정상회의, 12월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린다. 그러니 연말쯤으로 예상되는 일본 기업 압류 자산의 현금화 조치 이전에 아직도 기회는 남아 있는 셈이다. 설령 아베 총리로부터 답변을 받아내지 못한다 해도 더 이상의 상황 악화는 서로 자제하자는 ‘휴전’ 합의라도 이뤄내야 한다.
 
결국 문제는 그사이 강제징용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제안했다가 일본으로부터 거절당한‘1+1(한국 기업+일본 기업)’ 방안과, 이를 수정해 한국 정부가 피해자 구제에 참여하는 ‘1+1+α’ 방안 등 다양한 견해가 나와 있지만 한·일 양측 모두 “바로 이것!”이라 무릎을 칠만한 ‘신의 한 수’는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최근에는 한국이 금전적 배상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방안이 제기됐다. 강제징용에 관한 경제적 방식의 배상을 더는 일본에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자존심과 도덕적 우위를 지키자는 방안이다. 이 방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론 주도층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21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도 박주선(바른미래당) 의원, 윤상현 의원 등이 이 방안을 지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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