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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환영받는 삶 사는 묘약 있다

기자
한익종 사진 한익종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34)

“불붙는데 부채질, 호박에다 말뚝 박고, 우는 애기 발가락 빨리고, 똥 누는 놈 주저앉히고, 제주병에 오줌 싸고, 새 망건 편자 끊고.” 흥부전에 나오는 놀부의 심술 대목이다. 이걸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작태에 비유해 보자.
 
“피곤한 젊은이 버스에서 일으켜 세우고, 아무 데나 가래침 뱉고, 왕년 찾으며 고래고래 고함치고, 담배꽁초 아무 데나 버리고, 산에 가서 술 먹고 갈팡질팡, 전철에서 두 자리 차지하고 길게 눕고, 줄 선 데서 새치기하고, 식당에서 맨발 벗고, 셋만 모이면 남 험담하고.”
 
한 중년 사내가 집안을 기웃거리더니 담배꽁초를 마당에 버리고 간다. 둘러보면 어른들이 철부지 아이만도 못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사진 pixabay]

한 중년 사내가 집안을 기웃거리더니 담배꽁초를 마당에 버리고 간다. 둘러보면 어른들이 철부지 아이만도 못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사진 pixabay]

 
창밖을 보니 낯선 중년의 사내가 내 집안을 기웃거린다. 잠시 기웃거리더니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집 마당에 휙 버리고 가는 게 아닌가? 하도 기가 막혀 나가서 따졌다. 말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표정은 그럴 수도 있지다.
 
기가 막혀도 한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주위를 보면 베풀고, 나누고, 지켜야 할 것을 알만한 어른들이 철부지 아이만도 못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놀부가 따로 있나? 지켜야 할 사회 보편적 통념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놀부다. 이런 사람들에게 넌지시 충고 아닌 충고를 건네면 돌아오는 소리가 딱 이렇다. “아놔, 나 이렇게 살다 갈래.” 문제는 본인만 그렇게 살다 가면 되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고, 이런 사람들의 공통적 결말은 자신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미치게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필연적으로 ‘함께 더 오래 잘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만이 잘살아야 한다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자신만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그를 거리낌 없이 행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자.
 
하나는 자신이 이 세상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양 성장해 온 사람과 또 하나는 유청년시절 남으로부터 손해를 봤다는 피해의식에서 어떤 보상을 요구하고자 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런데 두 유형의 공통점은 나만을 위한다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졌다는 점이다. 소위 ‘나쁜 O(나뿐~)’이다. ‘남에게 베풀고, 남을 배려하고, 설상 내게 조금 손해가 되더라도 대의를 위한 일이라면’하는 사람들은 절대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더 오래 산다는 건 이제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됐다, 굳이 불로장생을 꿈꾸며 동방으로 서방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사람을 보냈던 진시황이 아니더라도 진시황 이상으로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의학자들 간에 다소 이견은 있지만 인간이 100세 이상을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더 오래, 더 잘 살 수 있느냐’다.
 
습관적으로 마음에서 기어 나오는 지독한 이기주의를 버리는 방법은 봉사이다. '사회에 이웃에 가족에 봉사하라.' 내가 스스로에게 주문하는 주문이다. [사진 pxhere]

습관적으로 마음에서 기어 나오는 지독한 이기주의를 버리는 방법은 봉사이다. '사회에 이웃에 가족에 봉사하라.' 내가 스스로에게 주문하는 주문이다. [사진 pxhere]

 
100세 이상을 살더라도 병마에 시달리며 산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세상이다. 거기다 하나 더 붙여 보자.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외톨이가 된 채로 산다면 삶이 비록 100세를 넘어선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이제 인생을 1, 2막으로 나누던 논리는 구세대 논리가 됐다.
 
이제는 인생을 1,2,3막으로 해석하면서 은퇴 이후의 삶은 제3세대다. 제3의 세대라 일컬어지는 인생 후반부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인생후반부는 모든 면에서 하향곡선을 그리는 시간이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는 다른 이들로부터,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 소외되고 평가절하되는 시간을 살게 된다.
 
가만있어도 필요성(?)이 떨어지고, 달갑게 받아 주는 이가 적어지는 인생후반부에 놀부 심보로 가득한 삶을 산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이야말로 명약관화한 일 아닌가. 젊은 날에 대한 보상심리건 평생을 남에게 군림하는 자세로 살았던 습관에 따른 일이건 그건 그야말로 왕년으로 흘려보내야 한다.
 
이제는 습관에서,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나만 잘살면 된다는 지독한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 그 방법은 봉사다. 사회에, 이웃에, 심지어는 가족에 봉사하라. 그게 내가 내게 주문하는 주문이다. 봉사는 내게서 나오는 이기주의와 못된 놀부 심보를 억누르는 유일한 방법이며 주위나 가족으로부터 환영받는 삶을 살게 하는 묘약이다.
 
AARP(미국은퇴자협회) 회장이자 『나이 듦, 그 편견을 넘어서기』의 저자 죠 앤 젠킨스는 자신이 쌓아 온 경험, 능력, 지식과 부단한 공부를 바탕으로 사회활동과 봉사를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앙코르캐리어, 갭이어를 통해 제2의 직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생후반부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여기서 주안점을 둔 것이 노후에도 사회적 활동을 지속해서 이어가는 것인데, 사회활동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봉사다.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함으로써 존경받는 노후, 환영받는 인생 후반부를 살 것인가 아니면 왕년만을 찾으며 놀부 심보나 부리는 뒷방 노인네로 살 것인가는 본인이 선택할 일이다. 내가 봉사를 강조하면서 ‘알아야 어른이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면 참 어른이 아니다. 참 어른이 돼서도 베풀지 않으면 도로 어린애다’라고 하는 이유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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