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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은 승리한다…전두환 설득해 외교인재 66명 구해

노신영 1930~2019 

노신영 전 총리는 전두환 정권에서 민간인 출신 공직자의 간판이었다. [연합뉴스]

노신영 전 총리는 전두환 정권에서 민간인 출신 공직자의 간판이었다. [연합뉴스]

노신영은 모범이다. 그의 삶은 반듯하다. 그는 직업 외교관으로 출발했다. 주 제네바 대사를 거쳐 5공 전두환 정권의 외무장관·안기부장·국무총리를 지냈다. 5공 권력은 군부에서 나왔다. 그는 그 속에서 민간인 출신의 간판이었다. 모범은 틀 속에 머무른다. 하지만 노신영의 모범생 드라마는 긴박하다. 그 속에는 파격과 도전, 교훈과 흥미가 넘친다.
 

장관·안기부장·총리 32년 공직
그가 구한 사람들, 한국외교 이끌어

안기부장 땐 북한 구호물자 받아
역발상으로 김정일 허 찔러
반기문 유엔총장 되자 “청출어람”

고인의 외무장관 취임은 1980년 9월. 그 시절은 10·26, 12·12, 5·18로 이어진 격동이었다. 그는 전 대통령과의 첫 대면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신이 노신영이오. 정보보고를 보니 괜찮다고 해서 장관을 시켰소.” 그에게 주어진 핵심 과제는 두 가지. 밖으로는 5공 정권의 정통성 확보, 안으로는 외교관 숙정(肅正) 작업이다.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외무부에 할당된 퇴출 인원은 69명.
 
모범의 덕목은 신중하면서 지혜롭다. 그는 반전(反轉)의 기회를 모색했다. 번복 시도는 권력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수 있다. 설득의 언어를 다듬었다. “직업외교관 대량 해임은 크나큰 국가적 소실이다.” 그는 실적을 쌓았다.
 
1985년 노신영 국무총리가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1985년 노신영 국무총리가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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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해 2월 전두환의 미국 방문은 성공이었다. 그는 숙정 변경의 최적 순간을 낚아챘다. 전두환은 노신영의 재고 요청을 수용했다. 모범이 승리하는 장면이다. 그의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축출 대상 거의 전부(66명)가 살아 나중에 한국 외교의 중책을 맡았다. 외교부 위상은 높아졌다. 그런 풍광은 지금 외교부 처지에선 상상하기 힘들다.
 
모범은 평범하지 않다. 1984년 9월 안기부장(지금 국정원장) 때다.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피해가 상당했다. 북한은 이재민 구호를 제안했다. 북한은 한국 정부가 거부할 것으로 믿었다. 노신영은 절묘한 파격을 선택했다. “국제사회는 한국의 경제력이 북한보다 월등함을 안다. 북한 제의를 수용해도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다. 허(虛)를 찔러야 한다.”
 
정부는 구호품을 받기로 했다. 북한은 당황했다. 북한 경제난은 심각했다. 물품 대량 조달은 생고생이었다. 국민은 북한의 실상을 실감했다. 구호 제안은 김정일의 기습적 발상이었다. 노신영의 역발상은 통쾌한 역습이었다. 그것은 전두환 대 김일성의 대결이기도 했다.
 
87년 2월 유럽 순방에 나선 노 총리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알현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87년 2월 유럽 순방에 나선 노 총리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알현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노신영은 총리였다(1985년). 언론 소개는 이랬다. “군고구마를 팔며 자수성가한 청년이 재상이 됐다.” 그의 위치는 절대권력자 아래. 그는 역할 공간을 조심스레 조정했다.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함께 ‘노-노 체제’를 구축했다. 그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주목을 끌었다. 전두환 정권의 후계자 대열에 오르기도 했다.
 
1987년 5월, 총리직에서 물러날 무렵 ‘박종철 고문 축소 조작’으로 나라가 흔들렸다. 그는 정치·도의적 책임을 졌다. 32년의 공직생활 마감이다(58세).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아 산재 외국인 근로자와 소년·소녀 가장을 지원했다. 공직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 결별은 모범생의 오기와 자부심이었다.
 
고인은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났다(1930년생). 평양 제2공립중학(평양고보 후신)의 수재였다. 서울법대에 입학했다.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취임 때다. 그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즐거움을 표시했다. 대학 동기동창과 결혼했다. 10년 전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떴다. 에머슨의 시(‘무엇이 성공인가’)에 대한 그의 애착은 커졌다.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박보균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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