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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아세요? 책 읽는 척 해야하는 괴로운 사원 심정

기자
최인녕 사진 최인녕

[더,오래] 최인녕의 사장은 처음이라(4)

광화문 교보문고를 지나가면 누구나 한 번쯤 보는 문구가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책은 직원과 회사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효과적인 ‘독서경영’은 직원 개인에겐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경영자에겐 조직운영의 가치를 전달하는 툴을 제공한다. 심지어 책 잘 읽는 회사엔 나라에서 ‘대한민국 독서경영 우수 직장 인증’이라는 상도 주니, 이쯤 되면 그야말로 일석삼조이다.
 
J사의 독고사장은 독서경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J사는 매월 필독서를 선정해 전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책을 제공한다. J사 직원들은 월요일을 독(毒)한데이라고 부른다. J사의 전 직원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에 필독서의 정해진 양을 읽고, 요약과 소감을 사내 인트라넷에 올려야 한다.
 
J사의 사장은 독서경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매월 필독서를 선정해 전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책을 제공한다. J사 직원들에게 월요일은 독(毒)한데이다. 사진은 광화문 교보문고. [중앙포토]

J사의 사장은 독서경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매월 필독서를 선정해 전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책을 제공한다. J사 직원들에게 월요일은 독(毒)한데이다. 사진은 광화문 교보문고. [중앙포토]

 
또 매월 첫째 월요일 오전은 월례 조회 후, 전 직원이 독서 토론을 한다. 전 직원 독서 토론은 직원 중 한 명이 필독서의 내용을 발표 후, 그룹으로 나누어서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토론의 마지막 단계는 사내 인트라넷에 토의 결과를 올리는 것이다. J사에 근무하려면 독서 후 인트라넷 입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이다.
 
안대리는 피할 수 없는 독(毒)한데이에 독(毒)트라넷(직원들이 부르는 인트라넷의 애칭이다)과 마주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번 달 필독서는 ‘475페이지’, ‘1만9800원’이다. 책의 목차를 보면서 인터넷 검색을 마친 후, 독트라넷에 능숙하게 입력해 회사 숙제를 마친다. 두 아이가 있는 워킹맘 노팀장의 퇴근 후 일상은 육아와 가사노동이다.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잠자는 것이 소원이다.
 
안대리 덕분에 노팀장을 포함한 직원들은 ‘미투’ 내용의 한 줄 소감을 입력한다. 다음 주 독서 토론 발표자인 양과장은 프로젝트로 바쁜 시기인데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냈다.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을 요점 정리해 발표할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발표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커진 이유는 발표자들 사이에 은근 경쟁이 생겨 슬라이드, 동영상 등 발표 자료가 점점 더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사 5개월 차의 웹디자이너 고민나씨는 웹디자인만큼은 누구보다 더 열정적이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J사에서 계속 일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퇴근 후 시간을 내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반복해서 읽어봐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고스란히 쌓여있는 5권의 새 책들을 볼 때마다 J사의 다른 직원들에 비해 자신이 열등한 것 같다는 자책감이 들고, 입사하기 전 독서경영에 참여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할 수 없는 죄책감마저 든다.
 
디자이너 고씨는 사장에게 쉽고 재미있는 책을 필독서로 선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회사의 교육방침이기에 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씨는 결국 이직을 결심했다. [사진 pixabay]

디자이너 고씨는 사장에게 쉽고 재미있는 책을 필독서로 선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회사의 교육방침이기에 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씨는 결국 이직을 결심했다. [사진 pixabay]

 
월례 조회와 독서토론이 있는 첫 번째 월요일이 어김없이 찾아왔고, 직원들은 양과장의 현란한 발표자료를 본 후 그룹별로 자리를 이동해서 독서토론을 시작한다. 안대리의 소감을 시작으로 정다운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책 제목과 관련된 얘기, 책 두께에 관한 에피소드, 요즘 책값이 많이 오른 얘기에 이어서 노팀장의 아이들 재롱잔치 얘기 등으로 토론 시간을 보내며 ‘너도 나처럼 읽지 않았구나’ 라는 동질감과 깊은 연대감마저 느낀다. 안대리의 주도하에 토의 내용 입력을 끝으로 독서토론을 마무리하며, 이번 달 새로운 필독 도서를 받는다.
 
웹디자이너 고민나씨는 독고사장에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책을 필독서로 선정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러나, 독고사장은 책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근무시간을 할애해 독서토론을 하는 이유가 책을 통해 경영자의 생각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따라서 경영자가 선정한 필독 도서를 읽어야 하고, 이는 회사의 교육 방침이기에 다양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존 J사 직원들은 이미 독고 사장의 단호한 독서경영 방침에는 어떠한 타협이나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을 읽은 것 같이 행동하는 요령을 터득해갔다. J사에서는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은 일종의 금기어가 됐다. 결국 이런 분위기에 회의를 느낀 고민나씨는 요령을 터득하기보다는 이직을 결심했다.
 

왜 독서경영을 하는 걸까?

독서경영의 최종적인 목표는 직원의 자기계발로 조직의 역량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독서경영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사진 pixabay]

독서경영의 최종적인 목표는 직원의 자기계발로 조직의 역량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독서경영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사진 pixabay]

 
독서경영 우수 직장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직원 개개인이 자기계발을 통해 조직의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독서경영의 목표가 될 수 있다. 학습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방법의 하나인 독서경영은 경영을 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 독서 경영 그 자체가 경영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경영자는 회사를 잘 경영하기 위해서 상황에 맞게 독서경영에 변화를 주는 유연함을 발휘해야 한다. 독서경영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실행된다면, 조직문화 또한 다르게 변질될 수 있다. J사의 ‘책 읽는 문화’가 아닌 ‘책 사는 문화’나 ‘책 읽은 척하는 문화’가 그 예다.
 
또 사장의 경직된 독서경영에 맞추기 위해 바쁜 업무 중에도 휴가를 내서 ‘보여주기식 독서발표’를 준비하는 양과장의 케이스, 기계적으로 감상평을 올리고 비효율적으로 독서토론에 참석하는 직원들, 고민나씨와 같은 직원의 이탈 등은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 독서경영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서경영은 직원과 회사의 역량 강화를 위한 방법이다. 직원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다수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의 독서경영이 회사를 책 읽는 회사, 성장하는 회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INC 비즈니스 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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