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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먼저 살려야 하나, 고통스러운 응급실의 햄릿

기자
조용수 사진 조용수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31)

연탄가스 중독으로 두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다. 누구를 먼저 치료할지 정해야하는 상황, 고민은 시작됐다. [중앙포토]

연탄가스 중독으로 두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다. 누구를 먼저 치료할지 정해야하는 상황, 고민은 시작됐다. [중앙포토]

 
할머니와 손녀가 연탄가스에 중독됐다. 둘 다 고압산소치료가 필요했지만, 기계엔 1번에 1명씩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명은 꽤 긴 시간을 대기해야만 상황. 나는 치료의 우선순위를 고민했다.
 
상태로 보면 할머니 쪽이 훨씬 심각했다. 원래 고령의 환자는 질병에 취약하다. 위급도 순으로 보면 당연히 할머니가 먼저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연탄가스는 후유증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멀쩡히 퇴원한 이후에도 치매, 경련, 중풍 등이 생길 수 있다. 치료를 빨리하면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후유증도 줄일 수 있다.
 
할머니는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급했다. 손녀는 치료가 조금 늦어져도 괜찮았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에 장애가 남을 가능성이 있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할머니를 먼저 살리고 손녀도 후유증 없이 일어나는 것이고,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할머니 목숨을 잃고 손녀마저 후유증이 남는 것이었다.
 
보호자들은 설명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할머니의 자식이자 손녀의 부모였다. 둘 다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들은 딸의 치료를 먼저 요구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부모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식의 미래였으니까. 할머니 마음도 똑같았으리라.
 
사람의 목숨값은 모두 같지 않다. 동일한 조건이면 노인보다 아이의 생명이 우선이다. 일반적으로 아이는 클수록 가치가 높아져 청년 때 정점을 찍고, 그 이후엔 나이가 들수록 값어치가 떨어진다. 가족을 잃었을 때 슬픔의 강도도 이와 비슷하다. 갓난아이보다 클 만큼 큰 학생을 잃었을 때 더 힘들어하고, 반대로 노인의 사망은 비교적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전 국민이 세월호 사건을 잊지 못하는 이유에는, 인생에 꽃을 피워야 할 시기에 목숨을 잃었다는 점도 있다.
 
위에 언급한 사례처럼 그나마 가족이면 판단이 쉽다. 하지만 생판 남남이 동시에 들이닥치면 그때는 정말로 난감해진다. 20대 남녀 4명이 모텔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실려 온 적이 있었다.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사이였다. 소식을 듣고 부모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들은 아이 상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자기 아이가 이럴 리 없다며, 나쁜 꾐에 넘어간 거라고 다른 셋에게 분노했다. 그리곤 자기 아이부터 치료해주길 요구했다. 다른 부모들 반응 또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응급실에서는 매일매일이 고민의 연속이다.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당한다. [사진 pixabay]

응급실에서는 매일매일이 고민의 연속이다.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당한다. [사진 pixabay]

 
나는 혼란에 빠졌다.
동전이라도 던져서 순번을 정해줘야 하나?
 
응급실에서 나는 밥 먹듯이 햄릿의 고뇌에 빠진다. 경운기에 깔린 노인이 피를 쏟아내고 있고,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숨을 못 쉬어 파랗게 질려가며, 두 생명을 안고 있는 임산부가 배를 움켜쥐고 쓰러진다. 이 중에서 누구에게 먼저 손을 돌릴지. 선택을 끊임없이 강요당한다. To be or not to be.
 
타이타닉 같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재난 상황이면 냉정하게 목숨값을 계산해 순번을 정해도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아이의 창창한 미래를 위해 기꺼이 내 목숨을 내려놓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응급실에선 다르다. 저마다 각각의 이유로 병원을 찾는다. 얼마나 심각한지, 어떤 상황인지는 자신들만 알고 있다. 상대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서로 알 길이 없다. 내 감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알아도, 옆자리 노인의 심근경색은 알지 못한다. 필연적으로 나부터 봐달라고 소리치게 된다.
 
일단 하나만 먼저 말해두자면, 내게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목숨이 없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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