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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기밀이 새요"···요즘 흥신소, 스파이도 잡는다

 
#1. 경기 용인시에 사는 한 모(55) 씨는 딸(20)이 지난해 연말 갑자기 실종됐다. 한 씨는 “딸이 대학 입학 후 부쩍 귀가 시간이 늦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집에 오지 않고 전화 연결도 안 됐다”고 말했다. 실종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가출로 판단했고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한 달간 딸을 찾는다는 실종 전단을 뿌리던 한 씨는 결국 흥신소(이하 탐정업체)를 찾아갔다. 탐정업체는 주변 친구 탐문을 시작으로 딸의 행적을 추적했고 3주 만에 딸이 사이비 종교단체의 기도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 씨는 “포교 활동을 하던 청년들과 어울리다가 사실상 감금상태에 놓여있었다”며 “찾아줘서 고맙다고 우는 딸에게 탐정이 큰 은인이 됐다”고 말했다.

커지는 탐정의 세계
의뢰 1위는 불륜 아닌 사람찾기
업체만 3000곳 1800억대 시장
교수·금융전문가도 탐정업 진출
OECD국 중 한국만 입법 안돼

탐정, 이런 것까지 한다
민간조사사 자격증 4299명
작년에만 628명 신규 취득
불법·합법 경계 모호 서비스업

 
#2. 중소기업 대표인 박 모(60) 씨는 올해 자꾸 기업 정보가 유출되는 일이 생겨 한 탐정업체에 기밀 유출자 색출을 의뢰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박 씨는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으면 골치 아픈 일이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렸을 텐데, 적은 비용으로 탐정이 한 달 만에 증거 수집에 법적인 조치까지 처리해줬다”고 말했다. 이후 박 씨는 아예 해당 탐정업체와 연간 계약을 맺었다. 회사 규모가 작아 별도의 법률팀을 두기 어려운 박 씨는 탐정업체에 계약서 법률 자문부터 투자계획 검토, 불공정 거래에 대한 분쟁 조정, 자산관리 컨설팅까지 맡긴다. 박 씨는 “얼마 전 납품 계약 전에 상대 회사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더니 재무 상태가 부실한 곳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예전에 ‘불륜 뒷조사’ 위주였던 국내 탐정 산업의 영역이 급속히 넓어지고 있다. 제한된 경찰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다양한 사회적 수요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경찰인력은 11만8600여명으로, 1인당 담당 인구수는 437명이다.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수사기관의 세밀한 도움을 받기 쉽지 않다. 강태영 경찰청 수사기획과 경정은 “경찰은 형사 사건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어 민사사건의 경우 범죄 연관성이 별로 없으면 수사기관이 일일이 매달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한성 가천대 WCP최고위과정 주임교수는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수사기관에만 의존하기에는 갈등의 양상이 너무 복잡해졌다”며 “탐정이라는 직업 자체에 흥미를 갖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탐정 자격증(민간조사사) 취득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늘어나는 탐정 자격증(민간조사사) 취득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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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에 따르면 대표적 탐정 관련 민간 자격증인 ‘PIA민간조사사’ 자격증의 연간 취득자는 2008년 122명에서 지난해 628명으로 늘었다. 10년 만에 5배 증가했다. PIA민간조사사 자격증 보유자(4299명)의 전‧현직을 분석해보면 경찰(14.5%), 경비업(8.6%), 군인(6.4%) 등 수사‧보안 관련 업계 종사자가 29.5%를 차지한다. 하지만 최근 자영업(9.4%)이나 회사원(8.1%), 교직(6.4%), 학생(6.3%), 언론·출판(5.3%), 금융업(3.7%), 대학교수(3.0%)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탐정업 진출이 늘고 있다. 자격증 취득자 10명 중 9명은 남성이다. 연령별로는 40대(24%)와 50대(27%)가 많았다.
 
민간조사사 자격증 취득자 전·현직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민간조사사 자격증 취득자 전·현직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요즘 탐정업체를 찾는 가장 큰 목적은 ‘사람 찾기’다.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대한민간조사협회에 접수된 의뢰 상담(112건) 내용을 분석해 보니 실종자 소재 파악이 21.4%로 가장 많았다. 잃어버린 자녀나 오래전에 헤어진 부모‧형제를 찾아달라는 요청이다. 배우자의 외도나 자녀 가출 같은 가정 문제(18.8%)가 뒤를 이었다.
 
부동산 거래나 인수‧합병 등에 앞서 채권‧채무조사(8.9%)를 맡기거나 기업 부정 비리(8.0%)를 조사해달라는 의뢰도 적지 않다. 주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이다. 도·감청, 몰래카메라 탐지 조사(4.5%)나 유전자 감식 조사(4.5%) 같이 탐정이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의뢰도 있다. 손상철 대한민국탐정협회 회장은 “이런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건 불법이기 때문에 관련 업체를 소개해주는 식으로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각종 소송과 관련된 증거 자료 수집(4.5%)이나 보이스피싱‧해킹 같은 사이버 피해 조사(3.6%), 지식재산권 피해 조사(2.7%), 보험사기 피해 조사(1.8%) 같은 의뢰도 있다.
 
의뢰비는 대개 하루 8시간 기준으로 40만~80만원 수준이다. 가령 잠복해야 할 장소가 정확하고 차량 미행만 한다면 40만~50만원이면 되지만, 까다로운 도보 미행을 해야 하거나 동선이 들쭉날쭉한 자영업 종사자를 미행해야 한다면 금액은 80만원까지 올라간다.
 
민간조사사 자격증 누가 취득하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민간조사사 자격증 누가 취득하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의뢰 기간은 평균 일주일이다. 일단 의뢰를 맡기면 평균 400만원(60만원×7일)은 든다는 의미다. 최환욱 더서치 민간조사기업 대표는 “2인 1조로 움직이기 때문에 2명 일당에 기름값·식사비·숙박비는 물론 포섭이 필요할 경우 쓰는 비용까지 다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사람을 찾는 비용은 계산 방식이 다르다. 찾는 데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찾았을 때 성공보수를 받는 식이다. 예컨대 불법 체류자 소재를 파악하면 300만원, 본국에 송환이 되면 30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하지만 탐정 산업은 여전히 ‘음지 산업’이다. 탐정은 별도의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탐정제도가 없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흔히 흥신소로 불리는 탐정업체들은 서비스업으로 등록한 경우가 많지만, 활동에 한계가 많다.
 
관련 제도가 없어 불법과 합법의 경계도 모호한 게 문제다. 가령 ‘신용정보 이용·보호법’(40조)엔 ‘신용정보회사 등이 아니면 특정인의 소재 및 연락처를 알아내거나 금융거래 등 상거래관계 외의 사생활 등을 조사하는 일을 업으로 하거나 정보원‧탐정 그 밖에 이와 비슷한 명칭을 사용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됐다. 이에 따르면 탐정업체의 ‘사람 찾기’는 불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탐정업체가 이 규정 때문에 실제로 처벌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탐정 찾는 이유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탐정 찾는 이유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탐정 업무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행도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놓여있다. 개방된 장소에서 사람을 쫓아가거나 자주 가는 곳에 잠복하는 것만으로 처벌은 어렵지만, 경범죄처벌법상 스토킹으로 신고당할 수 있다. 탐정이 해당 주소의 거주자를 확인하기 위해 우편물을 뜯어보면 ‘비밀침해죄’에 해당하지만, 우편물표지만 보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하금석 대한민간조사협회 회장은 “개인정보보호법, 통신비밀보호법 등 현행법을 준수하며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논란이 되는 사생활침해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되레 국민에게 더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탐정업이 제도권 밖에 있는 업종이다 보니 불량 업체에 의한 피해도 작지 않다. 가장 흔한 피해는 돈만 받는 ‘먹튀’다. 대개 전체 비용의 50%를 먼저 계약금으로 내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머지 50%를 지불하는 관행을 악용해 계약금만 받고 연락을 끊는 식이다. 대상자에게 의뢰 사실을 알려 의뢰인과 대상자 모두에게 돈을 받기도 하고 ‘대상자에게 의뢰 내용을 알리겠다’며 되레 의뢰인을 협박하기도 한다.
 
회사원 신 모 씨(36)는 지난 2월 곗돈을 가지고 사라진 지인을 찾기 위해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을 보고 탐정업체에 전화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커피숍에 만난 업체 직원은 계약금으로 250만원을 요구했고 입금한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신 씨는 “하루에 수십번씩 전화했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 없는 번호라고 하더라”며 “흥신소에 의뢰했다고 경찰에 말했다가 나까지 처벌받을 것 같아 신고도 못 했다”고 말했다.
 
탐정업체가 전국적으로 몇곳이나 되는지도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서비스업 등록업체 집계도 쉽지 않을뿐더러 아예 등록조차 않고 불법적으로 운영하는 업체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불법 운영 업체까지 포함할 경우 3000곳이 넘는 업체에 6000~7000명이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강동욱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3000개 업체의 월 매출을 500만원만 잡아도 연간 1800억원 수준”이라며 “외국 탐정업체가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적잖은 수익을 챙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하루빨리 탐정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명확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탐정 관련 민간자격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탐정 관련 민간자격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도 탐정업에 대해 전향적으로 입장이 바뀌고 있다. ‘사실 조사를 지원하는 공인탐정제도 도입 추진’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연초까지 탐정 관련 민간 자격증은 민간조사사와 ‘여론정보분석사’ 뿐이었지만, 정부는 지난 6월 ‘탐정학술지도사’, ‘실종자소재분석사’, ‘탐문학술지도사’ 등 8개 자격증을 추가로 허가했다. 공인탐정제 도입을 위한 기반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강태영 경정은 “피해에 대한 조사 등 수사기관이 인력난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 탐정이 도움될 수 있어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 소장도 “지금처럼 아무나 하게 두지 말고 공식적으로 자격을 부여해 관리하는 것이 국민 생활 안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탐사보도팀=최현주·문현경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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