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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의 과학 판도라상자] 멧돼지를 위한 변명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

지난 한 달 동안 한국사회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라는 이국적인 가축전염병으로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연천과 파주와 같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돼지 열병이 강화도와 김포지역으로 확산하면서 이곳의 모든 돼지를 완전히 도살 처분하는 극약처방이 결정되었다. 이제 접경지역은 바야흐로 돼지가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무돈(無豚)지역이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광석화와 같은 질병 대응은 치사율 100%의,치료법도 없는 악명 높은 이 질병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일단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느닷없이 멧돼지라는 새로운 적이 전선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민통선 부근에서 죽은 멧돼지 사체 대여섯 마리에서 이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ASF 바이러스의 감염은 보통 물리적인 접촉이나 감염축의 분비물에 접촉하면서 일어난다. 일단 감염된 멧돼지는 심한 고열 증상이 나타나면서 활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보통 3~10 킬로미터의 활동반경을 갖는 멧돼지라도 일단 이 열병에 걸리면 이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마치 우리가 독감에 걸리면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이 멧돼지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그 자리에서 스스로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민통선에서 발견된 멧돼지들은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멧돼지의 이미지는 전혀 다르다. 도심지를 미친 듯이 활보하고 아파트 상가에 난입하여 기물을 파손하는 난동꾼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멧돼지에 대한 사살작전과 도심지역에 출몰하는 멧돼지에 대한 극단적 공포반응과 ASF의 파괴적 속성이 결합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으로 도살처분 대상이 된 멧돼지들. [사진 위키피디아]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으로 도살처분 대상이 된 멧돼지들. [사진 위키피디아]

그러나 군 저격수와 드론까지 동원된 대대적인 사살작전이 우리에게 일말의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과연 최선의 방안이었을까? 지금까지 멧돼지를 사살해서 ASF를 막아낸 사례는 없다. 만약 멧돼지가 이 열병의 매개체라면 분명 질병 발생 농가 근처에서 멧돼지의 사체나 흔적이 발견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멧돼지의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 감염위험 지역 주변의 강과 도로 등 지형지물과 멧돼지의 행동반경을 고려한 물리적 이동차단 예방 철책을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동유럽이나 중국에서도 멧돼지가 질병 확산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역학조사 결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는 농가를 드나드는 가축·사료·분뇨 차량의 이동경로를 따라 질병이 전파됐다. 심지어 불법적으로 유통된 돈육이나 오염된 사료, 태풍으로 북한에서 유입된 감염된 가축의 부산물이 질병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질병은 항상 자연으로부터 확산된다는 믿음이 뿌리 깊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급속한 도시화와 운송수단의 발달 그리고 대형화된 농장이 오히려 질병 확산의 토대가 되고 있다. ASF는 그 이름과는 다르게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질병이다. 멧돼지의 개체 수 증가는 산림복원을 위한 노력의 부산물이다. 산림녹화로 서식지가 증가했지만 동시에 도시개발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멧돼지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세계로 내려왔다. 차라리 우리의 생태계에 적합한 멧돼지 서식밀도를 갖도록 조절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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