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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대통령 사과 없인 조국 후유증 수습 안된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조국이 법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났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고 그를 치하했다. 두달여 동안 나라를 뒤흔든 최악의 인사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느닷없이 언론의 성찰과 자기개혁을 들고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조국 수사 배제’를 시도했던 법무부 간부들을 불러 신속한 검찰개혁을 요구했다. 모든 것은 언론과 검찰의 탓이 됐다.
 

집권세력 누구 하나 책임 안져
내편이라 용서? 국민 무시한 것
깡패의 정의와 무엇이 다른가
언론·검찰 탓으로는 해결 안된다

어쩐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의 느낌이 든다. 순서는 이렇다. 조국 일가의 상상을 초월한 탈법·편법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나쁜 사람을 임명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할 수는 없다. 검찰이 흘려준 대로 언론이 가짜 기사를 쓴 결과라고 합리화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그래서 언론도 개혁 대상에 추가된 것이 아닐까.
 
과연 언론의 가짜뉴스로 사태가 촉발됐을까. 공분의 기폭제가 된 것은 고교생 딸의 의학논문 제1 저자 등재다.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들은 검찰과는 무관하게 취재해 특종 보도했다. 황성호 기자는 조국 딸이 인터넷에 올린 “단국대 의료원 의과학연구소 소속 인턴십의 성과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으며”라고 쓴 문장이 실마리가 됐다고 했다. 보도는 사실이었고, 해당 학회는 논문을 취소했다. 무엇이 잘못인가.
 
물론 두 달여의 보도 가운데는 한쪽에 치우치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전체를 매도하는 건 부당하다. 기자는 사익이 소용돌이치는 세계에서 외롭게 서 있는 공익의 수호자이고, 사실관계 확인에 목숨을 거는 예외적 존재다.
 
고위 공직자 인사·재산 검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부터다. 중앙일보는 그해 재산 검증 기사를 처음 보도했다. 훗날 대통령이 된 정치인을 포함해 국회의원 세 사람의 불·탈법을 알렸다. 관보를 통해 공개된 재산등록 사항을 토대로 허위·누락·직무를 이용한 투기 여부를 확인하는 초유의 취재유형이었다.
 
전 언론사가 취재경쟁에 가세했다. 국회의장과 대법원장, 장·차관, 고위 법조인, 경찰 총수가 언론의 검증을 받고 퇴출됐다. 필자는 당시 시경캡이라고 불리는 사회부 사건팀의 책임자로 취재의 전 과정을 지휘했다. 사내외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았다. 늘 소송을 각오해야 했고, 격무와 수면부족에 시달렸지만 쉴새 없이 파고들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조국을 감싼 문재인 대통령과는 완전히 달랐다. 언론이 불·탈법을 보도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사표를 받았다. "부정 축재하면 나라 일을 맡을 수 없다”는 공직윤리가 이때 확립됐다. 민심을 읽을 줄 알았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90%를 넘어섰다.
 
1974년 닉슨 미국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과 얼마 전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76세의 현역 언론인인 그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나쁜 악마들이 뭘 숨기고 있을까를 생각한다”고 했다. 저절로 공감의 미소가 나왔다. 이렇게 기자는 진실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단순한 존재다.
 
문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달리 조국의 실체를 밝힌 언론을 몰아세우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공공재인 언론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이렇게 하대(下待)해도 되는 것일까.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약화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했다. 언론을 위축시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집권세력의 민심 불감증은 심각하다. 조국 사태 이후 어느 누구도 대통령에게 자기 자리를 걸고 “아니되옵니다”라고 직언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 편이면 다 용서하겠다는 것이다. 깡패의 정의와 무엇이 다른가.  
 
어느 대학의 학생운동권 출신 단톡방에서는 조국을 감싸는 분위기가 싫어서 가입자 절반이 탈퇴했다. 이젠 진보 진영에서도 집권세력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조국이 대통령의 사표 수리 22분 만에 팩스로 서울대 교수 복직 신청을 한 것 아닌가.
 
마크 트웨인은 “인간은 얼굴을 붉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했다. 타자의 눈에 비친 나를 의식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윤리적 존재라는 것이다. 집권세력은 상처입은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지금처럼 욕을 먹는다면 20년이 아니라 200년을 집권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 대통령은 선의를 가진 예외적 정치인이다. 여기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눈과 귀를 가린 ‘가짜 진보’를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검찰과 언론의 개혁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조국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서 법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해야 한다. 일체의 수사 방해·지연 행위를 사라지게 해야 한다. 어떻게든 헌법 11조가 규정한 ‘법 앞의 평등’을 실증해야만 한다. 그래야 임계점에 달한 분노지수를 낮추고 민심에 다가설 수 있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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