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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풀꽃 시인 나태주…"사람은 늘그막에 빛 보는 게 가장 좋다"

등단 50주년 기념 산문집을 펴낸 나태주 시인. 김경록 기자

등단 50주년 기념 산문집을 펴낸 나태주 시인. 김경록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풀꽃 1)
'기죽지 말고 살아봐 / 꽃 피워 봐 / 참 좋아.' (풀꽃 3)
 
내년은 '풀꽃 시인' 나태주(74) 작가가 등단한 지 햇수로 50년 되는 해다. 반세기의 세월 동안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았다. 나태주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1973년 첫 시집을 출간한 뒤 지난 2월에 나온 『마음이 살짝 기운다』까지 총 41권의 창작시집을 출간했다. 이밖에 10여권의 산문집과 여러 권의 동화집과 시화집을 펴내며 지치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기념해야 한다"

 
새로 나온 산문집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열림원)는 나태주 시인의 등단 50주년을 미리 기념하는 책이다. 그간 펴냈던 산문집에서 골라 뽑은 산문과 미발표 산문 등 약 70개의 글을 수록했다. 짧은 시로는 담아내지 못한 그의 일상과 인간적인 고뇌를 기록한 글들이다. 학교 선생님으로서, 부족한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노인으로서, 엄중한 병을 이겨낸 환자로서 겪어낸 시간이 담겨 있다.   
 
15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나태주 시인은 50년 소회를 묻는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산문을 다시 모아 보면서 과거의 내가 낯설었다.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며 "50년이면 나무가 자라서 늙고 쓰러지고, 벽에 박힌 못이 빠지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기록한 글을 통해 나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기록'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디지털화되면서 문서도 전자우편으로 대체되고 너무 쉽게 버리고 지우는 세상이다. 세상이 우리를 기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신을 자꾸 버리려 한다. 하지만 자신을 기록하고 자신을 세우고 자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기념해야 한다. 그래야 그다음에도 잘 살 수 있다."
 

우연히 맺은 풀꽃과의 인연 

 
나태주는 '풀꽃 시인'으로 유명하다. 풀꽃 연작시로 유명해졌을 뿐 아니라 풀꽃 그림을 많이 그려 책으로 펴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현판으로 내걸린 시 '풀꽃 1'은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2014년 공주 풀꽃문학관을 건립해 현재까지 풀꽃문학상을 제정ㆍ운영하고 있다. 
 
풀꽃 시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에 대해 그는 "풀꽃 시를 자세히 읽어보면, 풀꽃은 한눈에 감탄할 만큼 예쁘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풀꽃이라는 이름 또한 우리가 편의대로 부르는 이름일 뿐 제각각 이름을 갖고 있다"며 "많은 사람이 자신을 풀꽃처럼 눈에 띄게 아름답지 않은 존재, 마이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마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가 풀꽃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시가 써지지 않는 날이면 주변에 있는 풀꽃을 들여다봤다. 그러다 마음의 잡념을 없애기 위해 풀꽃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나태주는 그때를 회고하며 "연필을 잡고 종이 위에 풀꽃이라도 열심히 그리면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이 틔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기대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무아경에 빠지고, 사물의 본질에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닿았다 되돌아오곤 한다"고 책에 적었다.
 
나태주 시인은 "자신을 기록하고, 자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나태주 시인은 "자신을 기록하고, 자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시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야 한다" 

 
'풀꽃 3'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따로 있다. '시'라는 제목의 시다. 그는 여기에 '시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써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을 담았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 지구 한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 꽃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 지구 한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 지구 한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 지구 한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 아름다워졌습니다.)
 
책에는 앞서 살아간 사람으로서의 쓴소리도 담겨 있다.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그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지나친 경쟁'을 꼽았다(나태주는 1964년부터 2007년까지 43년간 초등학교 교단에서 일했으며 정년퇴임 때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그는 "우리나라는 경쟁이 지나치고 급하게 성과를 내어야만 하는 분위기인데, 사람은 늘그막에 빛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며 "시간의 축복, 세월의 축복을 받은 뒤 빛을 보아야 별 탈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노름 끝판에 돈을 따는 게 좋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이키며, 말을 덧붙였다. "2007년 급성췌장염에 걸려 5개월 동안 사경을 헤매다 기적처럼 살아난 뒤로는 내가 사는 곳이 천국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천사라고 생각하며 산다. 나보다 앞서 성공을 거두고 뛰어났던 친구들은 지금 거의 다 죽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는 이유는 모자라기 때문일 거다. 결국에 우리가 모이는 곳은 죽음뿐인데 느리더라도 천천히, 게으르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편이 낫다."
 
나태주 시인은 어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경록 기자

나태주 시인은 어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경록 기자

나태주 시인은 어른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자신보다 뒤따라오는 사람, 아래에 있는 사람, 젊은 사람, 힘없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세상 모든 생명체에는 제 나름대로 몫이 있게 마련이고, 목숨의 몫만큼 살 권리가 있게 마련이라, 모든 목숨을 가진 존재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며 부디 ‘나처럼 살지 말고 너처럼 살라’고 등 두드려 각자의 방식대로 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내년에는 그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시선집이 나올 예정이다. 매년 1~2권의 시집을 내는 그는 왕성한 창작 활동도 계속할 계획이다. 창작의 원동력은 생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호기심'에서 나온다고 했다. 나태주는 "예전에는 10년을 주기로 목표를 세웠지만, 이제는 5년 정도 목표만 세워놨다"며 "80살이 되면 지금처럼 활기차게 살지 못하겠지만, 2년에 한 권이라도 책을 낼 수 있다면 축복으로 삼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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