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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항생제 이기는 수퍼버그, 박테리아 킬러 ‘파지’로 잡는다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김은기 인하대 교수

김은기 인하대 교수

런던 지하철 손잡이에 묻어 있는 균 53%는 여러 항생제가 듣지 않는 ‘수퍼버그(Superbug)’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대형병원 엘리베이터 버튼 등에 있는 균 57.5%는 수퍼버그다. 지난 20년간 5배 늘었다. 이런 균은 우리 손에도 묻어 있다. 그리 위험치는 않다. 문제는 이놈들이 폐렴균 등 치명적 병원균에 쉽게 내성유전자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수퍼버그 폐렴균에 감염되면 듣는 항생제가 없어 사망한다. 미국 네바다주 한 여성은 미국 내 모든 항생제 26종에 죽지 않는 수퍼버그 감염으로 사망했다. 이런 수퍼버그 사망자는 세계 병원사망환자의 2~7%다. 항생제를 많이 쓰는 인도는 13%다. 지구 최후 항생제(카파베넴)마저 듣지 않는 내성균(CRE)이 국내에서 3년 새 2배 늘었다. 인도 폐렴균 59%가 이미 CRE 내성균이고 10년 후에는 100%가 된다. 게다가 세계 항생제 사용량은 지난 16년 새 65% 증가했다. 수퍼버그는 내 목에 와 닿은 칼인가.
  

플레밍이 발견한 항생제 페니실린
러시아가 개발한 파지에 앞섰지만
잇단 내성균 출현이 치명적 약점

파지, 내성균 표면에 다리 고정
DNA 주입해 감염시켜 궤멸
신규 항생제 경제성 없는 게 문제

맞춤형 파지, 항생제 내성균 먹어치워
 
인류 멸망 가능 원인은 무얼까. 노벨상 과학 분야 수상자 50인이 답했다. 지구 온난화, 핵전쟁에 이어 전염병, 특히 수퍼버그는 3위다. 올해 4월 유엔은 “지금 상태라면 2050년 수퍼버그로 매년 천만 명이 사망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암·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은 숫자다. 유엔 수퍼버그위원회 샐리 데이비스 박사는 말한다. “우리는 절벽 끝까지 밀려와 있다. 아니, 이미 한두 명씩 떨어지고 있다.” 최첨단 과학도 수퍼버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희소식이 들려왔다. 수퍼버그 감염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15세 소녀가 주사 한 방으로 완치됐다. 주사 속에는 박테리아 전문킬러인 ‘파지(bacteriophage)’가 들어 있었다. 이게 수퍼버그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영국에서 15세 소녀가 폐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후 온몸 림프절이 부어올랐다. 수퍼버그에 감염된 거다. 병원 내 모든 항생제가 듣지 않았다. 목숨이 위태로웠다. 이 소식을 들은 미국 피츠버그 의대 해트플 교수는 본인 실험실 냉장고를 열었다. 지난 10년간 세계 120개 대학생 2만 명이 모아 놓은 1만5000개 파지 샘플이 있다. 파지는 박테리아가 있는 장소, 즉 세상 모든 곳에 있다. 하수처리장 속에는 박테리아가 ㎖당 백만 마리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바이러스인 파지는 박테리아의 10배다. 박테리아를 침입해서 수를 불려 터트리고 나온다. 그래서 이름도 파지(phage), 즉 ‘먹어 버린다’다. 1만5000종 파지 중에 영국 소녀 폐 속의 내성균을 죽이는 놈이 있을까. 세 놈을 찾았다. 이놈들은 실험실 배양접시에서는 소녀 내성균을 녹여 버렸다. 실제 중환자실 소녀를 살릴 수 있을까.  
 
세 종류 파지 칵테일을 받은 영국 의료진은 정맥주사로 파지를 소녀 몸에 주입시켰다. 6개월 후 모든 감염 증세가 사라졌다. 온갖 항생제에도 죽지 않던 놈들이 하천에서 고른 파지에 녹아난 거다(2019년 네이처 메디슨). 이 결과에 고무된 미 식품안전의약청(FDA)은 정맥주사형 파지 임상실험을 허가했다. 의료최첨단 미국에서 최초로 파지가 임상실험에 들어선 셈이다. 하지만 대단한 발견이라고 박수 치기에는 좀 멋쩍다. 러시아 남단 작은 나라인 조지아공화국에 가면 누구나 쉽게 파지를 살 수 있다. 처방전도 필요 없다. 파지는 신무기가 아니다. 이미 100년 전부터 러시아·폴란드·조지아에서는 파지로 병원균을 죽이고 있었다. 그동안 과학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17년 프랑스 과학자 데헤랄은 신기한 현상을 본다. 이질(痢疾)균에 걸려 설사를 해 대던 환자가 나을 때쯤이면 장내에 많은 파지가 발견됐다. 박테리아 천적이 바로 파지다. 파지는 생긴 모양이 달착륙선을 닮았다. 박테리아 표면에 다리들을 고정시키고 파지 DNA를 주입시킨다. 박테리아 속에서 200배로 불어난 파지는 박테리아를 터트리고 다른 놈들을 다시 감염시킨다. 순식간에 박테리아 전체가 전멸한다.  
 
러시아가 최초로 파지를 감염치료제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2차 대전이 터졌다. 영국의 플레밍이 발견한 항생제 페니실린이 부상병 감염치료에 위력을 발휘했다. 전쟁 중 서구는 페니실린을, 동구는 파지를 감염 치료제로 사용했다. 페니실린이 훨씬 우세했다. 이후 새로운 항생제가 속속 개발되었다. 의약시장에서 항생제가 승승장구하는 반면 파지는 뒷방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만능치료제인 항생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내성균이 나타난 것이다. 놀라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페니실린 발견자 플레밍이다.
 
플레밍은 1945년 노벨상 수상 자리에서 경고했다. “너무 많이 쓰면 페니실린 내성균이 나타날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바로 페니실린 내성균이 나타났다. 이후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되자마자 바로 내성균들이 출현했다. 이렇게 항생제 개발-내성균 출현의 ‘장군 멍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왜 항생제 내성균이 생길까.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항생제 때문이다. 항생제는 다른 균을 죽이는 물질로 땅속 균들이 만든다. 다른 균들도 살기 위해 상대방 항생제를 무력화할 방법을 가지도록 진화했다. 즉, 내성균은 이미 땅속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인간들이 항생제를 많이 써서 땅속에서 잠자고 있는 내성균들을 깨워 세상으로 불러낸 셈이다. 땅속 무덤에 들어 있던 놈들 중에는 영화 속 좀비도 있다.
 
영화 ‘월드워 Z(2013년 미국)’ 속에서 좀비가 전 세계로 퍼지는 과정은 소름 끼친다. 인기배우 브래트 피트 연기도 흥행에 한몫했다. 영화를 보면서 필자 직업병이 발동했다. 좀비와 수퍼버그는 닮은 점이 무얼까. 좀비가 물면 정상인이 좀비가 된다. 균이 전달되어서다. 수퍼버그도 정상균(비내성균)을 ‘키스’ 한 번으로 내성균으로 만든다. 올해 ‘사이언스’ 학술지 동영상은 좀비영화보다 더 으스스하다. 항생제를 주입하면 비내성균은 거의 죽어 간다. 하지만 주위에 항생제 내성균이 한 놈이라도 있으면 이놈이 죽어 가는 비내성균들에게 내성유전자를 쑥 집어넣는다. 항생제 주입 3시간 만에 거의 죽어 가던 비내성균 70%가 내성균으로 돌변했다. 결국 항생제를 쓰는 한, 내성균 출현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항생제 말고 전염병 박테리아를 죽일 다른 대안은 없는 걸까.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이이제이(以夷第夷)가 정답이다. 박테리아 킬러인 파지가 해결사다. 효능은 입증됐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형 제약사는 새 항생제 개발 ‘나몰라라’
 
파지는 박테리아 짝꿍이 있다. 짝꿍을 잘 골라야 성공한다. 파지 공격에 박테리아도 변화할 수 있다. 이런 기술적 어려움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경제성이다. 현재 대형 제약회사는 신규 항생제 개발에 관심이 없다. 15년 이상 수조원을 투자해서 신규 항생제를 만들어도 그 항생제 내성균이 생기면 도루묵이다. 만약 그 병원균이 완전치료 된다면 그 항생제 시장도 사라진다. 제약사로서는 구미가 안 당긴다.  
 
오히려 항암제·콜레스테롤·당뇨 등 만성질병 치료제가 안정적 수입원이다. 지구촌 차원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유엔 총회에서 건강 문제를 다룬 건 단 4번이다. 수퍼버그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다. 수퍼버그는 국경이 없다. 지금 당장 쓸 항생제가 없다면 수술도 못 한다. 손에 난 상처도 스스로 아물기를 바라야 한다. 현재 최선책은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는 일이다. 항생제가 원래 기능을 찾을 동안 수퍼버그를 잡아야 한다. 파지가 새로운 해결책이 되기를 바란다.
 
수퍼버그 가장 많은 곳은 병원, 입원 기간에 비례해 늘어나
병원

병원

에볼라가 서아프리카를 휩쓸 당시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에볼라 환자들이 격리된 우간다 병원에 도둑이 들어와 환자의 휴대폰을 훔쳐 갔다. 휴대폰을 추적한 경찰이 도둑을 잡았다. 도둑은 감방 대신 그 병원에 감금됐다. 훔친 휴대폰에 묻어 있던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병원균이 많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이다. 수퍼버그도 가장 많다. 건강인은 수퍼버그가 몸속에 들어오면 면역이 죽인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병원 환자들은 수퍼버그 번식에는 최고 장소다. 게다가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므로 오히려 더 독한 수퍼버그를 선발한다.  
 
실제로 국내 병원, 요양시설에서 발견되는 균 57%는 수퍼버그다. 또한 입원 환자는 입원 기간에 비례해서 피부 수퍼버그 숫자가 늘어난다(2019년 미 임상전염병학회). 병원에서 병에 걸릴 수 있는 이유다. 소아·노약자는 병원 면회를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외출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서울대 졸업. 미국 조지아공대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사업단장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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