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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염갈량과 매니저, 염경엽과 장정석

염경엽(51) SK 와이번스 감독은 더그아웃 난간에 양팔을 기대고 있었다. 그의 구부린 상체는 그라운드를 향해 있었다. 평소라면 꼿꼿이 서 있었겠지만 이날은 많이 달랐다. 그라운드로 뛰어나가 뭐라도 하고 싶은, 그러나 감독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3시간 동안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지난 17일 플레이오프 3차전을 치른 염경엽 SK 감독. 그는 경기 내내 이 자세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뉴스1]

지난 17일 플레이오프 3차전을 치른 염경엽 SK 감독. 그는 경기 내내 이 자세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뉴스1]

장정석(46) 키움 히어로즈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편안한, 혹은 편안하게 보이는 몸짓과 표정으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득점한 선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어깨를 맞댔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그라운드를 내려보듯 응시했다. 그에게는 정규시즌 경기보다 SK와의 플레이오프가 더 쉬워 보였다.
 
반대편 더그아웃의 키움 장정석 감독은 벤치에서 냉정하고 편안하게 플레이를 지켜봤다. [뉴스1]

반대편 더그아웃의 키움 장정석 감독은 벤치에서 냉정하고 편안하게 플레이를 지켜봤다. [뉴스1]

키움의 완승으로 끝난 플레이오프에서 두 감독은 극적으로 엇갈렸다. 키움은 1차전 연장 접전 끝에 이겼고, 2차전에서 짜릿하게 역전했다. 3차전은 일방적인 압박 끝에 10-1로 대승했다. 작은 차이가 큰 격차를 만들고, 승장과 패자를 운명처럼 갈라놓은 시리즈였다.
 
염 감독은 넥센(현 키움) 사령탑 시절부터 '염갈량(염경엽+제갈량)'이라 불렸다. 현대 유니콘스와 LG 트윈스 운영팀장을 지냈고, 코치가 되어 현장 경험도 쌓은 그가 2013년 넥센 감독이 됐을 때 야구인들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명석하고 수완이 좋은 그가 언젠가 감독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명 내야수였던 염경엽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 박진만에게 주전 유격수 자리를 내준 뒤 대부분의 시간을 벤치에서 보냈다.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지도 않았다. 더그아웃에서 야구를 보며 공부했다. 여느 선수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가 그에게는 지도자·관리자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염경엽의 야구 인생은 다시 시작됐다. 선수 시절 쓴 노트를 기반으로 팀을 운영했다. 그는 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스카우트·운영팀장 경험에서 나오는 그의 직관도 훌륭한 무기였다. 선수들은 합리적인 리더 염 감독을 잘 따랐다. 몇몇 코치들은 그의 극성 탓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후문도 들렸다.
 
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넥센은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넥센 선수들은 무섭게 성장했다. 강정호·박병호가 차례로 메이저리그로 빠져나가 꼴찌 후보로 꼽혔던 2016년에도 넥센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뛰어난 성과를 올린 염 감독은 이장석 전 사장과 갈등하다가 스스로 팀을 떠났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이가 장정석 감독이다. 염경엽이 넥센 감독이 됐을 때 장정석 직책은 '매니저'였다. 감독을 칭하는 매니저가 아니라 한국식 매니저, 즉 감독을 보좌하고 선수단 살림을 챙기는 역할이었다. 감독 옆에서 고된 잡무를 하는 게 매니저의 역할이다. 
 
장정석이 운영팀장으로 승진했어도 둘의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운영팀장의 역할은 현장(감독과 선수단) 지원이기 때문이다. 야구 선배이자 선수단의 수장인 염경엽 감독을 장정석은 가장 가까이서 보고 겪었다. 염경엽이 팀을 떠날 때 장정석은 따라가지 않았다.
 
염경엽 사퇴 후 넥센은 장정석 팀장을 감독으로 전격 발탁했다. 염경엽만큼 무명선수였던, 하물며 코치 경험조차 없는 그가 감독이 된다는 뉴스는 매우 놀라웠다. 팬들은 장정석이 실권 없는 '바지 사장'과 비슷하다며 그를 '바지 감독'이라고 불렀다.
 
넥센을 떠난 염경엽 감독은 SK 단장으로 부임했다. 현장 경험만큼 프런트 경력이 많은 그에게 잘 어울리는 자리였다. 그는 단장으로서 2018년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봤다. '염갈량의 시대'가 열린 것 같았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염경엽은 미국으로 돌아간 트레이 힐만 대신 SK 감독으로 취임했다. 3년 총액 25억원(계약금 4억, 연봉 7억)을 받는 특급 대우였다. 그가 새로 이끌게 된 선수들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챔피언이었다. SK가 정규시즌에서 선두를 달리는 건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SK의 가을, 염경엽의 가을 야구는 잔혹했다. 2위와 최대 9경기 승차를 벌렸다가 정규시즌 막판 두산 베어스에 우승을 빼앗겼다. 이때 SK 선수단과 염 감독의 스트레스는 이미 극에 달했다.
 
따 놓은 당상 같았던 우승을 놓친 순간부터 SK는 붕괴하고 있었다.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것 자체가 힘겨운 상황에서 염경엽은 장정석을 적장으로 만났다. 불과 3년 전까지 자신의 부하였던 장정석이 염 감독 반대편 더그아웃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다. 젊고 투지 넘치는 키움 선수들을 이끌고서.
 
플레이오프에 앞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 장정석 감독과 염경엽 감독이 나란히 서 있다. [연합뉴스]

플레이오프에 앞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 장정석 감독과 염경엽 감독이 나란히 서 있다. [연합뉴스]

염경엽에게는 피하고 싶은 승부, 피할 수 없다면 꼭 이겨야 하는 시리즈였다. 그걸 장정석이 모를 리 없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장정석 감독은 "염 감독님을 뒤에서 보면서 많이 배웠다. 감독이 되어 그때 배운 점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뒤에서 보고 배웠다"는 말에 염경엽 감독의 뒷덜미는 서늘했을 것이다. 지도자 경력, 선수단 연봉, 팀 전력, 무엇보다 두 사람의 관계 등을 따지면 염경엽 감독에게는 '이겨야 본전', '진다면 굴욕'의 승부였다. 지도자로서 처음 서본 탑독(top dog)의 자리. 염경엽 감독이 느꼈을 심리적 압박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장정석 감독은 과거 염경엽 감독처럼 차분하고 냉정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건곤일척의 승부수는 대부분 적중했다. 계산이 빗나가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특히 과감하고 폭넓은 불펜 운영은 가뜩이나 무력했던 SK 타선의 숨통을 끊었다.
 
SK는 완패했다. 염경엽의 무표정에는 고통이 담겨있었다. 
 
키움은 완승했다. 장정석의 무표정에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야구는 역전의 반복,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다. 굴곡 많은 야구 인생을 통해 그걸 잘 아는 두 감독에게 이번 플레이오프가 특히 그랬다.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상대는 있어도, 지지 않는 승부는 없다. 기필코 이기고 싶은 상대는 있을지언정, 항상 이길 수는 없다. 염경엽과 장정석은 앞으로도 수없이 이기고 질 것이다. 둘의 여정은 아직 많이 남았다.
 
SK의 정규시즌이 허망하게 끝난 다음 날, 염경엽 감독은 선수들과 4시간의 면담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야구는 끝난 게 아니다. 이번 포스트시즌도 중요하지만 내년 야구는 더 중요하다. 더 나은 팀이 될 방법을 같이 고민해 보자." 
 
주저앉아 실망만 할 게 아니라 다시 일어나 함께 뛰자고 한 것이다.
 
SK의 가을야구가 아쉽게 끝난 다음 날, 염경엽 감독 자신에게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그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선수들에게 말한 것처럼, 성공의 기록에 오답노트를 덧대는 것이다.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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