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칼·망치 들고 목판 앞에 서는 장인, 각자장이 하는 일은?

기자
이정은 사진 이정은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18)

나무 등에 글자나 문양을 새기는 전통공예 각자장 장인 김각한씨 [사진 이정은]

나무 등에 글자나 문양을 새기는 전통공예 각자장 장인 김각한씨 [사진 이정은]

 
이번 한글날을 맞이해 김각한 각자장(64)을 찾았다. 각자란 돌, 쇠, 옥, 나무 등에 글자나 문양을 새기는 전통 공예를 가리킨다. 원래는 돌이나 나무, 쇠 등에 글자를 새기는 일 모두를 각자라고 했다. 그러다가 점차 석각과 금속 각이 분리되면서 이제는 불교 경판, 유교 책판, 각종 건물의 현판이나 기문, 기둥에 그리는 주련처럼 나무판에 글자 혹은 문양을 새기는 것만 가리킨다.
 
각자장이란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목판 인쇄술이 발전하고, 특별한 공간 이외에선 보기 어렵지만 예로부터 인쇄를 목적으로 글자를 좌우 바꾸어 새기는 반서각과 공공건물이나 사찰에 거는 현판용으로 글자를 목판에 그대로 붙여 새기는 정서각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36년간 각자장 맥잇는 김각한 장인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목판본은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만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 석가탑 속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국보 126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장)로 지정됐다. 닥종이 12장을 이어붙인 두루마리 형태로 각 행에 7~9자의 글자를 새긴 소형 목판본이다.
 
신라의 목판 인쇄술을 바탕으로 고려 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경전이나 고승들의 문집과 저술의 출판에 목판 인쇄가 꽃을 피웠다. 조선 시대에도 고려의 목판 인쇄술이 그대로 전래해 훈민정음을 비롯한 많은 목판 인쇄물이 간행됐다.
 
장인의 공방 모습.

장인의 공방 모습.

 
1984년부터 36년 동안 꿋꿋하게 각자장의 맥을 잇고 있는 김각한 장인을 있게 해준 배경 뒤에는 스승 한 분이 있다.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된 각자장 고 오옥진 장인이다. 충북 청원 출신인 오 장인은 한국전쟁 중에 수류탄 파편으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20세에 아버지와 함께 도장 파는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칼을 만지게 되었다. 오 장인의 칼과 망치로 하는 전통적 수공 기법을 그대로 계승한 이수자가 많다.
 
김 장인이 각자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스승을 만난 후지만 20대부터 소목이나 목공 일을 해 나무와 친숙했다. 각자를 하다 보니 서예를 배우게 되고, 한문을 공부하면서 중어중문학과로 진학했다.
 
각자의 목재 재료는 산벚나무가 가장 많이 쓰인다. 팔만대장경 역시 70% 이상 산벚나무다. 내구성이 좋고, 물을 먹어도  나무가 늘어나지 않는다. 겉 재목과 속 재목의 구분이 뚜렷하지만, 나이테가 분명하지 않으며 나뭇결이 곱고 아름답다. 옛날 책의 겉표지에 문양을 넣을 때 찍는 목판의 일종인 능화판 제작에 적합하다.
 
각자는 도안하고, 나무를 고르며, 서고에 적합한 크기로 잘라 대패질을 해 판재를 준비하는 연판 작업을 거친 후 판재에 붙이는 배자를 하고 각자(새김질)를 한 뒤 마지막으로 채색하는 과정을 밟는다. 이때 나뭇결을 삭히는 연판 과정을 거치는데 바닷물에 수년 동안 담가 진을 빼 삭힌 다음 음지에서 말린 뒤 각자를 한다.
 
장인이 목판에 새김질을 하는 모습.

장인이 목판에 새김질을 하는 모습.

 
이중 목판 새김질 순서는 최소 5~6년 동안 건조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판하본을 붙인 뒤 기름칠을 하고 새기면서 홈을 파 마구리(손잡이)를 끼우고 시험 인출을 하기 위해 먹칠을 하고 1~2회 교정한 다음 최종 인출을 한다.
 
각자의 기법은 현판은 양각을 주로 하고 기둥에 그리는 주련은 음양각을 많이 한다. 글 내용과 나무 형편에 따라 양각(튀어나오는 모양)과 음각(글자가 들어가는 모양)은 선택사항이다. 각자장의 기량은 각질의 흔적, 글자체의 균형, 잘못된 글자나 글자 획이 빠진 것 등으로 가늠할 수 있다.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1970년대 말 서양식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서고 한옥이 많이 줄어든 요즘이다. 자연 각자장에 대한 수요가 감소할 수밖에. 제자 양성이 궁금했다. “젊은 사람들이 배우는 걸 꺼려요. 생활이 전혀 안 되기 때문에요. 월급을 줘야 배우는데 저희 일은 사실상 돈을 주고 배워야 하니까 취미로 많이 공방으로 와요. 취미로 하는 제자 중 40대가 간혹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50대 퇴직자가 배우러 오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까지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 뭐냐고 물었다. “2003년에 사실 고 오옥진 스승은 이수자였던 큰아들을 병으로 잃는 바람에 작업을 그만뒀지요. 아들과 함께 박물관을 짓겠다는 꿈도 버린 거죠. 결국 중요 작품들은 민속박물관에 기증했어요. 2008년 숭례문이 불탔을 때 스승의 감독 아래 대전 문화재 연구소와 현재 작업실에서 복원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2008년 불탄 숭례문 복원에 참여  

숭례문 복원 작업 중인 김각한 장인. [사진 이정은]

숭례문 복원 작업 중인 김각한 장인. [사진 이정은]

 
현재 경제 사정이 어떤지 궁금했다. “이수자 때엔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했었는데, 문화재 보유자가 된 뒤, 작업의 양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인간문화재가 된 뒤 타이틀에 책임이 더 붙으니 아무 작업이나 못하게 되죠. 각자장은 비활성화 취약 종목으로 전승이 어려운 공예 분야라 전승지원금이 조금 더 나오긴 하는데,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긴 좀 부족하죠. 그러나 먹고는 살고 있어요. 작업하는 사람은 작업만 해야지 장사꾼이 못돼요. 각자에 몰입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작업이 다 끝나고 흥정하고 돈 받는 게 가장 어려워요.” 
 
향후 계획에 관해 물었다. “복원 작업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고 몇 년에 한번 있습니다. 목판으로 복원하는 것을 더 하고 싶어요. 사후에도 2대 각자장으로서 귀감 되는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예전에는 각자장, 새기는장, 인출장, 배첩장의 역할이 다 있고, 모두 분업화돼 있었습니다. 이제는 혼자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하죠.”
 
경북 안동시와 경북유교문화원은 지난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해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복각 책판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 김 장인은 지난해 5월 6.25 전쟁 당시 화재로 유실된 훈민정음 목각판을 3년의 작업 끝에 복원한 장본인이다. 그는 우리 민족 최대의 발명이자 기록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은 훈민정음 목각판을 복원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김 장인은 각자가 앞으로 10~20년 이내에 사라질 것이란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서예가가 예술 작품으로 작업 하기 가장 어려운 게 한글이라고 말한다. 깊어가는 가을, 컴퓨터보다는 펜을 다시 들고, 패드보다는 책을 들고, 타자를 다시 쳐보는 것의 감성이 그립다. 많은 사람이 각자장의 노고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채율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