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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전에도 빛났던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광기어린 연기사

15일 개봉 2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조커'. 사진은 주연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으로 회자되는 장면으로, 광대 아서 플렉이 자유롭게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5일 개봉 2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조커'. 사진은 주연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으로 회자되는 장면으로, 광대 아서 플렉이 자유롭게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지난달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대상)을 차지하며 코믹스 기반 영화 최초 세계 3대 영화제 수상 신기록을 세우더니, 흥행도 거침없다. DC 코믹스의 영웅 배트맨의 숙적이자, 악당 조커의 기원을 그린 영화 ‘조커’(2일 개봉, 감독 토드 필립스) 얘기다. 북미를 비롯한 세계 각지 극장가 1위에 올랐다. 한국에선 개봉 2주 만인 15일, 401만 관객을 돌파했다. 히스 레저가 조커를 연기했던 ‘다크 나이트’(2008)의 417만 관객을 넘어 역대 조커 출연 영화 최고 흥행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400만 돌파 영화 '조커' 호아킨 피닉스
악당의 탄생 기원 공감 가게 다뤄 호평
'마스터' 등 전작서도 망가진 영혼 열연
내년 아카데미서 생애 첫 수상 이룰까

"조커가 만들길 원했을 영화"

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등의 감독들이 재해석한 기존 ‘배트맨’ 시리즈에서 이보다 더 악랄할 수 없었던 조커가 이 영화에선 좀 다르게 그려진다.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련한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어떻게 조커가 되고 말았는지, 분노한 폭동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됐는지, 영화를 보노라면 그 비참한 감정에 빨려들고 만다. 관객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담시의 최악 테러리스트 조커를 연민할 날이 오다니 세상에,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일이 있을까. “조커가 만들길 원했을 바로 그런 영화다.” 미국 영화 매체 ‘인디와이어’의 평가였다.
비운의 광대 아서 플렉을 "굶주린 늑대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호아킨 피닉스는 하루 한 알의 사과만 먹고 23kg을 감량해 깡마른 모습을 완성했다. 그는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없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비운의 광대 아서 플렉을 "굶주린 늑대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호아킨 피닉스는 하루 한 알의 사과만 먹고 23kg을 감량해 깡마른 모습을 완성했다. 그는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없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 폭력적 영향력이 걱정될 만큼 이 영화가 관객의 몰입을 이끈 저력의 8할은 주연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 있다. 그는 비쩍 마른 갈비뼈까지 자신의 온몸을 악기 삼아 완전히 새로운 조커를 탄생시켰다.  
 

망가진 영혼을 연기하는 장인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광포한 로마 황제 코모두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광포한 로마 황제 코모두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그의 이런 열연은 사실 꽤 뿌리가 깊다. 특히나 망가진 영혼을 연기하는 데는 장인급이랄까. 아역부터 출발한 그가 재발견된 영화로 평가받는 ‘글래디에이터’(2000)를 떠올려 보라. 입가를 이죽대며 시기심에 사로잡힌 폭군 황제 코모두스의 비뚤어진 영혼까지 완벽히 표현한 게 벌써 19년 전의 일이다. 이 영화를 비롯해 그가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호명된 ‘앙코르’(2005) ‘마스터’(2012) 그리고 2년 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너는 여기에 없었다’까지, 그가 호평받은 연기엔 대부분 음울한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이레셔널 맨’(2015)에서 살인을 저지르며 잃어버렸던 삶의 활력을 되찾는 철학 교수 에이브를 그보다 더 감칠맛 나게 연기해낼 배우가 있었을까. 여기에 살얼음을 밟는 듯한 불안정한 내면과, 이를 애써 누르는 듯한 자조적인 웃음까지.  
영화 '조커'에서 아서 플렉이 어릴 적 뇌손상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웃음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조커'에서 아서 플렉이 어릴 적 뇌손상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웃음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가 전작에서 맡은 캐릭터들은 마치 이번 조커의 탄생을 향해 온 우주가 놓은 징검다리처럼 느껴진다. 특히 영화 ‘마스터’ 속 괴팍한 사내 프레디 퀠은 샴쌍둥이라 해도 좋을 만큼 이번 조커와 닮은 점이 많다. 오죽하면 ‘조커’ 티저 예고편이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1950년대의 프레디 퀠이 나이를 먹어 1970년대 아서 플렉이 된 듯하다”(프리시네마나우)는 반응이 나왔을까. 미국에선 두 영화의 예고편을 마치 한 작품인 것처럼 편집한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목하야 ‘마스터(Master‧주인) 조커’다.
 

'조커' 전에 '마스터'가 있었다

영화 '마스터'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유증에 시달리는 주인공 프레디 퀠. [사진 영화사 진진]

영화 '마스터'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유증에 시달리는 주인공 프레디 퀠. [사진 영화사 진진]

‘마스터’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실존하는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시자를 모델로 각본을 겸한 작품이다. ‘조커’의 무대인 고담시가 베트남전 종전 이후 뉴욕을 토대로 했다면, 이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다.  
젊은 군인 프레디는 사회로 돌아와 백화점 사진사로 일하지만 욱하는 기질을 제어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위험한 액체들을 섞어 직접 제조한 술에 의존하던 그는 잔뜩 취해 유람선에서 난동을 피우고, 이날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코즈’ 연합회의 마스터 랭케스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를 알게 되면서 그의 실험대상이자, 조력자이자, 친구로서 그의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러나 위태롭던 두 남자의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 '마스터'의 첫 장면은 프레디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시절 해변에서 동료 군인들과 모래로 만든 여성의 신체에 외설스러운 행동을 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영화사 진진]

영화 '마스터'의 첫 장면은 프레디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시절 해변에서 동료 군인들과 모래로 만든 여성의 신체에 외설스러운 행동을 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영화사 진진]

군인 시절 프레디가 눈부신 바다를 향해 마른 등을 활처럼 둥글린 채 혼자 욕구를 해소하는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 증세를 털어놓을 때 오른쪽 눈썹을 한껏 찡그려 울 것 같은 눈빛을 감추고, 입만 웃으며 애써 말을 이어가는 그의 얼굴에선 ‘조커’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던 아서의 표정이 여지없이 떠오른다. 아서가 전쟁에 참여했다는 설정은 없지만, 희망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릴 적 어떤 사건의 후유증인 발작적인 웃음 증세를 고통스레 떠안고 방황하는 그의 심경은 프레디와 놀랍도록 겹쳐진다. 
 

등으로도 연기하는 배우

'마스터'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할리우드까지 번진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시자를 모델로 빚어낸 남자 랭케스터(왼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실험대상이자 친구로서 그에게 의지하게 되는 프레디(호아킨 피닉스)의 모습. [사진 영화사 진진]

'마스터'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할리우드까지 번진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시자를 모델로 빚어낸 남자 랭케스터(왼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실험대상이자 친구로서 그에게 의지하게 되는 프레디(호아킨 피닉스)의 모습. [사진 영화사 진진]

전적으로 의지하던 랭케스터에게 조금씩 반발심을 느끼게 될 때마다 프레디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간다. 오른편보다 왼편이 살짝 기울어진 듯한 눈썹과 코, 갈라진 입술까지 호아킨 피닉스의 두드러진 비대칭 얼굴은 이럴 때 빛을 발한다. 프레디가 폭발할 듯한 분노에 사로잡힌 순간, 어깨 끝을 앞으로 굽히고 등을 바깥으로 팽창하듯 구부린 기이한 자세는 ‘조커’의 아서에게서도 목격된다. 감정이 최고조에 달한 장면에서 즉흥연기를 한 것도 두 영화가 같다. ‘조커’에서 냉장고에 들어가는 장면이었다면, ‘마스터’에선 해변에서 외설스런 잡담을 뱉어내던 첫 장면 대사, 랭케스터와 구치소에 수감된 순간 프레디가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그랬다. 이 구치소 장면은 단 한 테이크만에 촬영했단다.   
'마스터'에서 프레디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사진사로 일하기 시작하지만 안정을 찾지 못한다. [사진 영화사 진진]

'마스터'에서 프레디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사진사로 일하기 시작하지만 안정을 찾지 못한다. [사진 영화사 진진]

“그의 연기는 용감하면서도 연약하다. 최고의 배우면서 겁이 없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이 말은 ‘마스터’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한국에선 ‘조커’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3만여 관객에 그쳤지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선 올해 황금사자상에 7년 앞서 이 영화로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기기도 했다. 그해 베니스에서 ‘마스터’는 2등상인 은사자상(그 해 황금사자상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받았다)과 또 다른 주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공동 남우주연상까지 3관왕에 올랐다.  
 

'조커' 속편 "호아킨 피닉스가 원한다면" 

'조커'에서 아서 플렉은 서서히 자기 안의 분노에 눈뜨기 시작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조커'에서 아서 플렉은 서서히 자기 안의 분노에 눈뜨기 시작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 모두가 없었던 일일지 모른다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은 것도 두 영화가 닮았다. 다만, ‘마스터’는 프레디에 대한 묘사에 있어 ‘조커’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자신을 움켜쥔 운명에 옴짝달싹 못 하던 그가 사람들을 장악하는 힘을 갖춘 위협적인 인물로 거듭나는 모습까지 그려낸다. 마치, 우리가 지금껏 알아온 악당 조커처럼.
영국 영화지 ‘토탈필름’ 인터뷰에서 ‘조커’의 속편에 대해 토드 필립스 감독은 “호아킨 피닉스가 원한다면”이라 여지를 남겼다. 이 천재적인 배우가 ‘조커’로서 보여줄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걸 잘 안다는 듯이 말이다. 오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이 영화로 생애 첫 남우주연상에 불린다면 속편 가능성은 더 커지지 않을까. 이를 계기로 ‘조커’ 이전에도 이미 훌륭했던 그의 전작 속 연기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발견된다면 그 또한 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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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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