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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어디] 독서의 계절, 춘천·옥천으로 문학 여행

1939년 개통한 경춘선 신남역이 김유정역(구역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1939년 개통한 경춘선 신남역이 김유정역(구역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작가는 떠나도, 그들의 이야기가 남는 곳들이 있다. 춘천에는 소설가 김유정이, 옥천에는 시인 정지용이 우리를 기다린다. 소설 속 주인공이 그려지는 장소를 직접 밟아볼 수도 있고, 작가의 인생을 깊숙히 들여다볼 수도 있다.
 
10월, 독서가 떠오르는 계절에 우리나라 내로라는 작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도 추천한 한국 문학을 되돌아보게 하는 곳, 옥천과 춘천으로 떠나보자. 
 

전철 타고 떠나는 이야기 마을, 춘천 김유정문학촌
 
서른 해를 채 살지 못하고, 가난과 폐결핵에 시달리다 떠난 소설가 김유정이 남긴 단편소설 30여 편은 살아 있는 우리말의 보물 창고다. 점순이와 머슴, 들병이처럼 어딘가 부족하고 못난 인생이 펼치는 이야기가 지금도 독자를 울리고 웃긴다. 김유정이 태어난 춘천 실레마을의 김유정문학촌 곳곳에서 그 이야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수도권 전철 경춘선을 타고 가도 되니 도로가 막히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김유정문학촌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너른 잔디밭에 자리 잡은 다양한 캐릭터가 손님을 반긴다. 김유정의 대표작 ‘봄 봄’에 나오는 주인공이 저마다 생생한 표정과 몸짓으로 소설 속 장면을 연출한다. 빙장어른(다른 사람의 장인을 높여 부르는 말인데,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장인을 빙장어른이라 부른다)이 점순이와 혼례를 미끼(?)로 예비 데릴사위를 부려 먹는 장면, 점순이의 작은 키를 핑계 삼아 혼인을 차일피일 미루는 장면, 결국 못 참고 폭발한 예비 데릴사위가 빙장어른 ‘거시기’를 잡고 흔드는 장면이 이어진다.

 
‘ㅁ’자 모양의 김유정 생가

‘ㅁ’자 모양의 김유정 생가


이야기를 따라 걷다 보면 김유정이 태어난 집이 보인다. 실레마을 제일 가는 지주 집안이던 김유정의 생가는 웬만한 기와집보다 크고 번듯한 한옥인데, 지붕에 초가를 올렸다. 당시 초가 일색이던 마을에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라고 한다. 중부지방에서 보기 힘든 ‘ㅁ 자형’으로 만든 것도 집안 모습을 바깥에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다. 네모난 하늘이 보이는 중정 툇마루에서 문화해설사가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준다.
 
생가 앞에는 아담한 연못과 그림 같은 정자가 있고, 닭싸움을 붙이는 소녀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김유정의 조각상이 눈에 띈다. ‘동백꽃’의 한 장면이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닭싸움을 붙이는 소녀와 그걸 보는 김유정 조각상

닭싸움을 붙이는 소녀와 그걸 보는 김유정 조각상


실제로 김유정의 많은 작품이 이곳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쓰였다. 덕분에 김유정문학촌 곳곳에는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근식이가 자기 집 솥 훔치던 한숨길’ 등 이름만 들어도 재미난 실레이야기길 열여섯 마당이 펼쳐진다.

김유정생가 길 건너편에 커다란 솥 모양 벤치가 보이고, 그 옆으로 단편 ‘솟(솥)’의 마지막 장면이 실물 크기 동상으로 재현된다. 들병이와 바람이 나서 집안 재산목록 1호인 솥단지를 훔친 근식이와 솥을 찾으러 달려온 아내, 아기 업은 들병이와 그 남편까지 어우러진다. 이들은 김유정의 다른 작품 속 주인공처럼 선악도, 미추도 구분하기 힘든 팍팍한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낸다. 김유정은 도덕적 잣대나 미학적 기교 없이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슬프고 웃기고 답답하고 때론 즐겁게 그린다.

소설 ‘솟(솥)’의 마지막 장면

소설 ‘솟(솥)’의 마지막 장면


만석꾼 집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다가 폐결핵과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한 김유정도 그렇다. 어려서 경성으로 간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당대 명창이자 명기 박녹주를 쫓아다니느라 결석이 잦아 제적된다.

낙향해 야학을 열었다가 다시 상경, ‘산골 나그네’로 등단하면서 소설가로 이름을 알린다. 이 과정에서 집안이 점점 기울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김유정은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다…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그래야 내가 다시 살 것이다”라는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스물아홉 한창 나이에 세상을 버린다. 김유정의 삶과 작품 이야기는 생가 옆 김유정기념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옛 고향을 찾아가는 길, 옥천 정지용문학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생가의 방 안 모습

정지용 생가의 방 안 모습


중년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불러봤을 노래 ‘향수’는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였다. 이 노래 덕분에 정지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 반열에 올라섰고, 잊히고 사라진 고향 풍경이 우리 마음 속에 다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옥천에 있는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마치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옥천 구읍의 실개천 앞에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다.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 곳은 옥천 구읍이다. 예전에는 옥천의 중심지였지만, 1905년 금구리 일대에 경부선 옥천역이 들어서며 시나브로 쇠락해 구읍이라 불린다.

구읍에 들어서면 가게는 낡았지만, 정지용의 시어를 사용한 세련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담배 가게에는 ‘오월 소식’ 중 ‘모초롬 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란 구절을 간판처럼 걸었다.

향수 시비가 서 있는 정지용 생가 앞

향수 시비가 서 있는 정지용 생가 앞


실개천 옆에 자리한 초가지붕이 정지용 생가다. 생가 앞에는 ‘향수’ 시비가 있다.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자 세 칸 초가와 창고가 마주 본다. 소박한 마루에 앉아 ‘향수’를 떠올리니, 정지용의 늙은 아버지가 방 안에 누워 있을 것만 같다.

안방에는 동시 ‘호수’가 걸려 있다. 정지용의 많은 시 중에 동시는 짧고 아름다운 시어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호수’는 절창이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생가 바로 옆에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방향으로 나오면 긴 돌이 보인다. ‘청석교’라 부르는 이 돌에 얽힌 사연이 깊다. 이 돌은 1940년대 축향국민학교에 있던 황국신민서사비로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학생들은 조회 시간마다 이 구절을 외쳤다고 한다.

 
정지용문학관 앞에 서 있는 정지용 동상

정지용문학관 앞에 서 있는 정지용 동상


아픈 역사가 담긴 비석을 꾹 밟고 지나가면 커다란 정지용 동상이 반긴다.

단층 건물인 정지용문학관은 크게 전시실과 문학 체험 공간으로 나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소곳이 앉은 정지용 밀랍인형이 보인다. 정지용과 기념 촬영할 수 있는 포토 존이다.
 
전시실로 들어서니 붓글씨로 ‘향수’를 적은 액자가 눈에 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볼수록 고향의 전경이 떠오른다.

‘정지용 시인과 그의 시대’ 안내판은 정지용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지용은 1902년에 태어나 열두 살에 결혼했고,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시샤 대학을 졸업했다.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향수’ ‘고향’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내놓으며 조선 문단의 대표 시인으로 떠올랐다.
 
권지예 기자 kwon.jiye@joongang.co.kr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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